몸은 늙어가고, 답사는 끝이 안보이고

 

문화재 답사를 하다가 보면, 상상 외의 것들을 만날 수가 있다. 가끔은 그런 문화재를 만나게 되면 당황한다. 한 마디로 잘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문화재를 만날 때마다 참 그동안 무엇을 했나하는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경주 서악동 태종 무열왕릉 옆에 있는 마을로 들어가면, 뒷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이 산은 선도산으로 오르는 길인데, 마을 끝에서 우측 길로 보면 고분이 몇 기 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 삼층석탑이 보이는데, 일반적인 탑과는 다른 형태를 하고 있어 특이하다.

 

주사위 모양의 돌로 쌓은 기단

 

서악동 산 92-1에 소재한 보물 제65호 서악리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때의 석탑이다. 화강암으로 축조된 이 탑은 일반적인 형태의 탑과는 다르게 모전석탑형이다. 밑에 있는 바닥 돌 위에 화강암으로 네모지게 만든 커다란 돌 8개를 이층으로 엇갈리게 쌓아 기단을 만들어놓았다.

 

서악리 삼층석탑의 기단은 주사위 모양의 커다란 돌덩이 8개를, 2단으로 쌓은 독특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 윗면에는 1층의 몸돌을 받치기 위한 1장의 평평한 돌이 끼워져 있는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1장의 돌로 되어 있고, 1층 몸돌에는 큼직한 네모꼴의 불상을 모셔두는 감실을 얇게 파서 문을 표시하였다.

 

 

 

그 위에는 3단의 몸체를 쌓았는데, 1층 몸돌 남쪽 문틀 양편에는 인왕상을 돋을새김을 하였다. 인왕상은 그 동안 심하게 마모가 되어 알아보기가 힘들다. 몸돌 위에 올린 지붕돌은 하나의 돌에 밑받침과 윗면의 층급을 표시해 놓았다. 전체적으로 기단에 비해 몸돌이 갑자기 작아져 있는 형태이다. 석탑의 부분은 그동안 여기저기 떨어져 나가기는 했지만, 아직도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퇴화하는 석탑

 

높이 5.07m, 기단 폭이 2.34m인 서악리 삼층석탑은 돌을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의 형태로, 이런 유형의 석탑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비교적 투박하게 화강암을 다듬어 쌓은 탑으로, 색다른 느낌을 준다.

 

문의 좌우에는 1구씩의 인왕상이 문을 향해 조각되어 있다. 지붕돌은 하나의 돌에 밑받침과 윗면의 층급을 표시하였으며, 처마는 평행을 이루고 있다. 통일신라 후기의 퇴화되는 과정에서 성립된 석탑으로 추측된다. 각 층의 몸돌에 비하여 지붕돌이 커서 균형이 맞지 않고 둔중한 느낌을 준다.

 

아직도 제대로 공부도 못했는데, 몸은 늙어가

 

그동안 매번 이야기를 하는 것이, 벌써 20년 넘는 세월을 답사를 하러 다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20년 동안 내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만난 문화재는 이제 겨우 20% 정도일 것으로 추산한다. 아직 보고 싶은 것들도 많고, 가고 싶은 곳들도 많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했음을 늘 탓하고 살아야만 한다.

 

 

 

오늘 서악산 삼층석탑을 보면서,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이 삼층석탑이 보물로 지정이 되어 부러운 것이 아니다. 천년 세월, 그렇게 변함없이 서 있는 모습이 부러운 것이다. 사람도 저렇게 버틸 수만 있다면, 좀 더 여유를 갖고 답사를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마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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