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비어버린 서낭나무 아래 부부가 나란히 섰다. 합장을 하고 난 뒤 남편은 무릎을 꿇고 부인은 잔에 술을 따른다. 그리고 맨 땅에서 삼배를 한다. 서낭할머니에게 드리는 마지막 예를 올리는 것이다.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335번지에는 화가 부부가 산다. 남편도 부인도 모두 화가이다. 하지만 생활을 하기 위해 남편이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장작가마에 구워내는 도자기의 색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품위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도자기를 구워 팔아도 생활이 되지 않는다. 주변에서는 생활자기를 만들라고 조언을 해보지만, 굳건히 자신의 길을 지켜간다.

 

단종이 울며 지나던 길 가에 선 서낭나무

 

이 부부가 사는 집은 상교리 중에서는 맨 끝 집이다. 이 집을 해우재라고 부른다. 해우재는 남편인 김원주(54)의 호이다. 아래채는 도자기 전시관과 손님맞이 방으로 사용을 한다. 20여 년 전 부부는 어린아이 하나를 데리고 이곳에 정착을 했다. 그리고 이곳에 터전을 내리면서 자연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삶이 이 부부가 우리 것들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갖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집에서 흙길을 따라 뒤편으로 돌아가면 여주 고달사지로 나가는 길이다.

 

그 길가 구부러진 곳에 6.25 한국동란 때 폭탄이 떨어져 한 편이 잘려나간 고목이 한 그루 서 있다. 속은 텅 비었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늘 잎을 달고 있다. 이 나무가 바로 서낭할머니로 불리는 나무이다. 나무의 밑동으로 보아 수령이 수백 년은 족히 되었을 것 같다. 이 나무가 서 있는 길은, 예전 단종임금이 노산군으로 강등이 되어 울면서 영월로 향하던 소로 길이라고 한다.

 

 

이포에서 배를 내린 단종임금은 지금 여주시 대신면 상구리에 소재한 블로헤런 CC 안에 자리한 어수정에서 목을 축인 후, 북내면 소재 고달사지 곁을 지나 이 좁고 낮은 고개를 넘어 서원리로 행했다는 것이다. 그 때도 이 서낭나무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고속도로 공사로 나무를 자른다고

 

이곳이 제2영동고속도로 부지로 들어갔단다. 13일 이른 시간부터 굉음을 내는 중장비들이 일대를 시끄럽게 만든다. 전날 모임이 있었기 때문에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들을 하느라 늦잠이 들었다. 하지만 이른 시간부터 중장비 소음이 잠을 깨운다. 다시 잠을 청해보지만, 집이 울리는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 밖으로 나가보니 7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주변에 중장비들이 여기저기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서낭할머니 나무는 상교리 주민들이 위하는 나무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김원주 부부가 사는 집에 사시던 할머니 한 분이 이 서낭나무를 지극히 위했다고. 하지만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반이 잘려나간 후 마을의 섬김이 끊어진 듯하다. 서낭나무 뒤편에는 옛날 제를 올리던 제단 터의 흔적이 보인다.

 

우여~ 서낭할머니 이제 떠나신다.

 

이제 고속도로 공사로 인해 이 서낭할머니 나무가 잘려나간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제를 올렸다고 하지만, 이 부부의 마음은 아직도 편치 않은 듯하다. 그 서낭할머니 나무에 대해 늘 마음속으로 정성을 들여왔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은 후 빗방울이 떨어진다. 막걸리 한 통과 북어 한 마리를 들고 서낭나무를 찾아갔다.

 

 

마침 이 집에 모임 때문에 들린 스님 한 분이, 서낭할머니께 마지막 축원을 해준다고 자청을 한다. 막걸리를 따르고 삼배를 한 후, 스님의 독경이 시작되었다. 서낭할머니를 마음속으로 떠나보내는 절차이다. 폭탄을 맞고도 살아남은 서낭할머니는 고속도로로 인해 댕강 잘리게 되었다.

 

스님의 독경이 끝 난 후 막걸리 잔을 손에 든 김원주의 피 토하는 소리가 즘골을 울린다. 통곡의 소리이다. 일제 때는 문화말살 정책으로, 그리고 그 뒤에는 우상이라고 떠들어 대는 광신도들에 의해, 그리고 새마을운동 때 무수히 잘려나간 서낭나무들이다. 이제 고속도로 공사 때문에 잘려나갈 상교리 즘골 서낭할머니. 마지막으로 막걸리를 늙은 나뭇가지 위로 냅다 쏟아낸다.

 

서낭 할머니 편히 가시오. 아무쪼록 무지한 것들이 할머니의 몸을 잘라도, 사고나 없게 해주시오.”

국보 제198호는 단양 적성비다. 중앙고속도로 단양 휴게소에서 보면 뒤편에 성곽이 보인다. 신라 때 쌓은 단양적성이다. 그 성곽 위편 산봉우리 쪽으로 올라가면 적성비각이 있고, 그 안에 국보 제198호인 적성비가 있다. 그리 크지 않은 위편이 떨어져 나간 돌에는, 촘촘히 글이 새겨져 있다.

 

적성비에는 신라가 삼국시대에 죽령을 넘어 고구려 영토였던 적성을 빼앗은 후, 이곳의 백성들을 선무한 표적으로 세운 것이다. 선무란 자국의 국민이나 점령지 백성들에게 본국의 시책을 이해시키고, 민심을 안정시키는 일을 말한다.

 

 

점령지역을 선무한 비석

 

당시 진흥왕이 명하여 신라의 척정(국경 개척)을 돕고, 충성을 바친 적성사람 야이치의 공훈을 표창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더불어 이와 같이 신라에 충성을 바치는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포상을 하겠다는 정책의 포고 내용이다.

 

이 적성비에는 국왕의 명령을 받은 고관들 10명의 이름이 나오고 있는데, 그 중 진흥왕 때 많은 공을 세운 이사부, 비차부, 무력 등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 비는 신라 진흥왕 5~11년인 545~550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알지 못하면 참 답답하다. 그 동안 이 적성비를 보려고 몇 번이나 마음을 먹었다. 비를 찾아가려고 단양군 단성면으로 들어가니 비탈길이 장난이 아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아예 올라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런데 찾아갈 때마다 비가오거나 눈이 날린다. 결국엔 몇 번을 찾아갔지만 허탕을 치고 말았는데, 이번에 오르고 보니 고속도로 휴게소에 나가는 통로가 있다. 왜 진작 몰랐을까? 허탈한 웃음만 나온다. 참 무지는 어쩔 수가 없는가 보다.

 

“이게 국보야, 무슨 국보가 머 이래”

 

돌로 된 길을 따라 오르려니 발가락에 통증이 심하다. 날마다 무리를 해서 걷고 또 걸었기 때문인가 보다. 적성 안내판을 지나 계단을 오른다. 저만큼 적성비가 보인다. 비각 안에 있는 적성비. 방학이라 부모를 따라 온 아이들이 적성비를 들여다보고 있다.

 

한 아이가 “에게 이게 국보야? 무슨 국보가 이래“ 아이는 국보라고 하니 대단한 것인 줄 알았나보다. 곁에서 보던 부모들은 할 말이 없는지 당황한 눈치다. 국보를 보자고 데리고 올라왔는데, 아이가 보기에는 작은 돌 하나에 글씨만 있으니 실망도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이 어디 문화재의 가치 등에 대해 알려주고는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 문화재의 현실에 가슴이 미어진다. 

 

“국보는 크다고 지정하는 것이 아니란다. 그것이 아무리 작고 볼품이 없어도, 그 가치가 중요하면 국보로 지정을 하는 것이지”

 

좁은 식견이나마 아이에게 이해를 시켜주고 싶었다. 아이를 붙들고 그늘에 앉아 찬찬히 설명을 해주었다. 어느새 부모님들도 곁에 와 앉았다. 아이에게 적성비가 왜 소중한 것인지. 그리고 문화재를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하나하나 설명을 하다가 보니 아이도 깨닫는 바가 있는 모양이다.

 

 

말을 마치고 적성을 돌아보려고 내려오려니 부모님들이 고맙다고 한다. 아이에게 문화재를 보여주려고 올라왔는데, 막상 설명을 하려고 하니, 아는 바가 없더라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다. 전문가가 아니고, 우리 것에 대해 애착이 없다면 그저 구경만 하고 돌아선다. 그것이 당연하니까 말이다.

 

적성을 여기저기 돌아보면서 신라인들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한다. 잠시 돌아본 듯한 시간이 벌써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돌아갈 길이 바쁘다. 이번 겨울에는 눈 쌓인 적성을 한 바퀴 돌아보아야겠다. 아주 편한 길로 말이다.

밀려오는 통증으로 인해 고집을 피우다가 병원을 향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통증이다. 이제 누구 말마따나 연식이 오래되어 폐차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늘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넘기고는 한다. 그런데 심각할 정도로 통증이 온다. 할 수 없이 병원 신세를 지는 수밖에.

원래 병원하고는 담을 싼 사람이다. 째지고 깨어져도 대층 넘어가는 판인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병원을 찾아 가는 길이다. 가면서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병원이라는 곳을 다녀왔는데도 다시 통증이 있다면, 이젠 정말로 농담삼아 하는 몸을 바꾸는 수밖에'. 이런 생각을 하면서 혼지 실실 웃어도 본다 . 아픔을 조금이나마 잊어보려고. 그런데 뒷 자리에서 아이 하나가 심하게 울어댄다. 이제 10개월이라는데 엄마가 진땀을 흘린다.

어린 엄마는 더 울고 싶을 것

뒤돌아보니 아이엄마가 진땀을 흘리고 있다. 아이는 무엇이 그리 불편한 것인지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몸도 안좋은데 아이까지 쉴 새 없이 울어대니 솔직히 짜증도 난다. 그런데 아이가 을어대는 것이 엄마의 잘못은 아니지 않을까. 아이 엄마의 나이가 이제 갓 스물이나 넘겼을 것만 같다.

곁에 탄 할머니 한 분이 아이를 추스려보지만 그것도 허사.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도대체 아이가 무엇이 불편한 것일까? 그러고 보니 차 안이 덥다. 요즈음 일기가 다시 여름이 오는 것인지 며칠 간 여름날씨로 돌아간다고 이야기를 할 지경이었으니. 기사분에게 에어컨을 좀 틀어달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를 않는다. 아이엄마도 옆 할머니도 감당할 수 없는가보다. 

내리라는 사람, '너나 내려라'

두 시간 정도를 가는 버스이다. 고속도로에서 나이 어린 아이엄마는 울고 싶을 것만 같다. 그런데 버스에 함께 탄 누군가 한 마디 한다.

"아줌마 아이 데리고 내려요. 듣기 싫어 어디 사람이 살겠소. 자가용 타고 다니든지"

아이를 데리고 내리란다. 여기 고속도로인데 아이를 데리고 어디서 내리라고. 아이엄마는 그 소리를 듣고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런 말에 사람들이 모두 동조를 하는 표정이다. 하긴 버스 안에서 아이가 한 시간이 넘게 울고 있으니, 짜증들이 날 만도 하다. 그렇다고 고속도로 인데 내리라니.

"아저씨 여기 고속도로인데 어딜 내리라고 해요"
"당신은 듣기 싫지도 않소?"
"나도 듣기는 싫죠. 그렇다고 일부러 울리는 것도 아닌데. 고속도로에서 내리라고 하면 되나요"


그런데 이 양반 바로 육두문자가 나온다. 결국 어린 아이엄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얼마나 미안했을까? 그리고 얼마나 당황했을까? 옆에 탄 할머니께서 이제는 아이가 아니고 엄마를 달래고 있다.

"아저씨 세상 얼마나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무엇이라 할 일이요. 아이가 우는 것이 엄마 탓도 아니고. 그런 당신이 자가용 타고 다니면 되지"

말이 험해지니 이 양반 바로 꼬릴 내린다.
 
"듣기 싫으니까 그러죠" 
"듣기 싫은 것은 나도 마찬가지인데, 그렇다고 고속도로에서 내리라고 하면 되겠소. 그렇게 능력이 좋으면 당신이 내리쇼. 차 없어 버스 타는 것도 서러운데 별 소릴 다하네"

사람들이 조용해진다. 차 없는 것이 무슨 죄인가? 아이 엄마를 보니, 아이아빠도 이제 나이를 먹었다고 해도 20대 중반일텐데. 차 없는 것을 나무라다니. 어쩌다가 세상이 이리 되었는지. 없는 사람들은 이래저래 살기가 힘들다. 그렇게 아이는 두 시간이 넘게 울었다. 어디가 불편했는지, 아니면 아팠는지. 아이엄마에게 병원을 가보라고 이야기를 한다. 눈물을 닦을 생각도 없이 고맙다고 말하는 어린 엄마. 우리 며눌아이도 차 없어 혹 이런 일을 당하지는 않았을까?             
 
하늘을 본다. 가을 하늘이 참 높다. 어쩌다가 이 어린 사람이 엄마가 되어서 곤욕을 치루나. 세상이 조금만 이해를 하면 될 것을. 이렇게 야박해야만 하는 것일까? 따듯한 사람들이 그립다.


문화민족이라고 한다. 그리고 문화대국이라고 한다. 무엇이 문화대국이고, 무엇이 문화민족인지 잘 모르겠다. 문화재 답사를 하면서도 왜 우리가 문화민족이고, 문화대국인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적어도 문화대국이라면 기본적인 문화의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행동의 문화,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다,

문화의 가장 기본은 사회예의 범절이다. 그러나 그 예의조차 모르고 있다면, 그것이 과연 문화민족이고 문화대국일까? 공중도덕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문화민족, 문화대국을 따진다는 것이 부끄럽다. 기본적인 한글조차 깨우치지 못한 사람들이 어찌 문화를 따질 것인가?


담배꽁초, 마시다 남은 커피 등을 버리지 말아달라는 안내판과, 앞에 버려진 꽁초와 커피흔적(휴대폰으로 촬영해 화질이 좋지가 않다)

한글도 깨우치지 못한 사람들?

답사를 다니다가 보면 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어느 지역을 간 후 그곳에서 다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한다, 그러다가 보니 좀 멀리 나갈 때는 고속버스가 제격이다. 한 번 답사를 나갈 때마다 몇 번씩을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그것도 답사를 하면서 재미로 삼고 다닌다.

여주 쪽의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음성휴게소를 들렸다.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는데, 우연히 화단을 보게 되었다. 그곳에는 입간판이 하나 서 있고, 이런 글씨가 적혀 있었다. ‘꽃은 싫어해요. 커피, 담배꽁초 등 이물질을 버리지 마세요.‘ 라는 글귀이다.

그런데 주변을 보니 화단 주위에 쏟은 커피며 담배꽁초, 심지어는 먹다 남은 커피를 담은 종이컵을 그대로 버려두었다. 바로 옆에는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분류수거 통이 있는데도, 그냥 꽁초를 버리고 커피를 버린 것이다. 흡사 그 글을 보고 일부로 그렇게 흘리고 버린 듯하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담배꽁초며 커피를 마시다가 버렸기에, 이런 글까지 적어 놓았을까?

기본적인 규범도 안 지키면서 문화국민이라니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는 기본적인 질서라는 것이 있다. 이 질서는 규범을 지키기를 요구한다. 그런 규범이란 사람이 지키지 못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지킬 수가 있고, 약간의 행동을 억제할 뿐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공공연하게 어기면서 사는 사람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앞에는 커피나 담배꽁초를 버리지 말아달라고 적어 놓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버젓이 꽁초를 버리고, 커피를 흘려놓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조차 힘들었을까? 이런 글을 적어 놓는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그 문구 앞에 담배꽁초가 널려있고, 쏟은 커피 자국이 지저분하다. 그런데도 우리가 과연 문화대국이고 문화국민일까?


마시다 남은 커피잔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주변은 커피를 버린 흔적으로 더럽게 얼룩이져 있다. 그 바로 옆에는 쓰레기 분류 통이 있었다.

이런 무관심이 문화재 훼손도 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기본적인 사회질서도 지키지 않는 사람들. 전국에 있는 문화재를 훼손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문화재 주변에 쓰레기를 버리고, 낙서를 하고, 단단한 끌 같은 것으로 파 놓고. 거기다가 심지어는 문화재를 훼파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행동을 우리는 내 것이 아니니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아무런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이런 모습을 아이들이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언젠가 문화재 답사를 하다가 이런 일이 있었다. 문화재 옆에 버려진 쓰레기를 들고, 조소에 찬 비웃음을 흘리며 사진을 찍는 외국인을 본 적이 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날이었다. 물론 우리나라에만 그런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때의 심정이란 정말 딱 ‘부끄러워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는 것이 말 그대로였다.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가 먼저 솔선수범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이런 문구를 써 붙였다는 것이 부끄럽다. 제발 조금만 움직이면 해결 할 수 있는 일을,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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