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쇼핑몰이 자난 달 27일 문을 열었다. 그동안 수원시상인연합회(회장 최극렬)와 갈등을 빚었으나 타협점을 찾고 영업을 시작한 것이다. 롯데쇼핑몰이 문을 열고 난후, 팔달문 앞 시장들로 주말과 휴일이면 몰려들던 손님들의 숫자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물론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탓도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주말과 휴일 장을 찾아오던 손님들의 발길이 줄었습니다. 눈에 띠게 표시가 나는 것 같아요. 물론 날씨가 추워진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롯데쇼핑몰이 개점을 하면서 그곳으로 발길을 돌린 듯합니다.”

 

팔달문시장상인회 조정호 회장은 주말과 휴일 팔달문시장을 찾아오던 사람들이 표가 나게 줄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런 현상이 앞으로 점점 심화될 것이라고 하면서, 이제는 전통시장이 경쟁력 있게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문화 관광객들을 유치할 수 있어야

 

전통시장을 이용하는 손님들 중 다문화 가정의 사람들이 상당수를 차지합니다. 아무래도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보다 전통시장이 물건 값이 저렴하기 때문이죠. 이제는 그들 다문화가정이나 외국인 관광객들을 시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성 행사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고요.”

 

다문화가정이나 외국 관광객들을 상대로 발길을 붙잡는 것도 전통시장이 피해를 줄이는 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한다. 또한 다문화 가정들을 위한 이벤트 행사를 열어, 그들이 전통시장을 더 친근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또한 시장 내의 일부 점포를 외국인들이 점포를 운영하게 만들어, 자연스럽게 외국인들이 시장을 찾아오게 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손님들의 발길이 한 곳에서 구매하기가 수월한 백화점으로 옮겨갈 것입니다. 그런 발길을 붙들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죠. 문화센터의 활용 등 사람들이 전통시장을 떠나지 않도록 하고, 시장을 특화시장으로 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전통시장의 기억할 수 있는 특화된 상품도 개벌해야 하고요.”

 

 

전통시장의 공격적인 홍보체계 갖추어야

 

수원시의 22개 전통시장 중에는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시장도 있다. 하지만 홈페이지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곳은 많지가 않다. 실질적으로 홈페이지 자체가 제대로 사람들에게 홍보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요즈음은 SNS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전통시장은 그런 SNS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요즈음은 SNS시대라고 합니다. 홈페이지를 비롯해 블로그나 페이스북 등을 통합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합니다. 22개 전통시장의 모든 소식을 한 곳에서 알아볼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 발 빠른 소식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각 전통시장이 따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장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해 주어야죠.”

 

페이퍼 신문을 발행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신문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어 인터넷을 통한 홍보매체를 운영해야 한다는 것. 22개 전통시장의 모든 소식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종합적인 인터넷 매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페이스북등을 운영해 빠르게 소식을 전해 전통시장이 늘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그 외에도 주차장이 없는 전통시장이 경쟁할 수 있는 방법은 주차장의 확보도 중요하다고. 하지만 주차장의 확보는 많은 예산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지동 창룡문로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집들이 헐리는 곳을 공용주차장으로 이용을 하는 방법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성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전통시장으로 찾아들어올 수 있도록, 그들의 발길을 붙잡는 것도 한 방법이 된다고.

 

롯데쇼핑몰이 개점을 한 후 앞으로 닥쳐올 어려움을, 이제는 전통시장이 각자 알아서 할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해 해쳐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시장이 변화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한다. 200년 역사를 갖고 있는 수원의 전통시장들. 정조대왕의 뜻이 배인 전통시장이 경쟁력 있는 모습을 갖추기를 응원한다.

 

히스토리움’, 역사를 이야기 하고 있는 공간이다. 영동시장 2층 영동아트포라 공간 한 벽에 영동히스토리움이 조성됐다. 영동시장은 20121025일 영동시장의 상인들과 작가들이 함께 아트상품을 디자인하고, 지역주민들과 영동시장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예술 창작공간을 조성했다.

 

이 아트포라는 각 분야의 작가들과 함께 아라라는 전시공간이 마련이 되어있으며, 영동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많은 노력을 했다. 특히 아트포라의 작가들은 영동시장에서 벌이고 있는 각종 기회전 등을 주관하고 있으며, 4월부터 11월까지는 매주 토요일 오후 지동교 위에서 작가들이 참여하는 체험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영동시장의 역사 한 눈에

 

영동히스토리움은 벽면에 영동시장의 개장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특히 역대 상인회장부터 영동시장의 발전 등을 누구나 쉽게 접할 수가 있어, 영동시장을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시장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다. 영동시장은 정조대왕이 1974년부터 1975년까지 화성의 축성을 마친 후 상업 진흥책을 펼치면서 시작이 되었다.

 

1800년대 초 당시의 상권은 북수동 일대에 성안시장과 성밖시장으로 구분이 되었으며, 성내시장은 9, 19, 29일에 장이서고, 성외시장은 4, 14, 24일에 장이 서는 10일장의 형태였다. 이 성외시장이 오늘 날의 영동시장, 팔달문시장, 지동시장, 못골종합시장, 미나리광 시장등으로 분화된 것이다.

 

 

축성 때 이미 시장이 있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영동시장은 이미 217년이란 장구한 세월의 시장이 된다. 화성을 축성한 뒤에 그 역사를 적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에 이미 이곳 팔달문 밖에는 시장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성을 축성할 당시부터 이곳에는 상권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동시장 안에 있는 거북산당이라는 당집이 있어 시장 상인들이 일 년에 한 번 도당굿을 열었는데, 전하는 말로는 이미 축성을 시작하면서 굿을 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영동시장도 여타 시장과 마찬가지로 일본인들의 독무대였다. 그들은 팔달문 앞의 모든 상권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1920년대의 수원 상권의 중심지는 팔달문 인근이었으며, 일본인들이 거의 모든 상권을 장악했다고 한다. 그렇게 어려운 시기인 1919117일 영동시장이 설립이 되었다.

 

 

양키골목으로 불린 영동시장

 

한국전쟁 이후 인근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각종 상품들. 양담배, C레이션, 커피, 초콜릿, 군화, 반합, 옷가지 등이 수원으로 흘러들었고, 그런 상품들을 영동시장의 상점들이 팔기시작하면서 영동시장은 양키골목으로 불렀다. 그리고 1969929일 영동시장 주식회사가 설립이 되었다.

 

1970년대는 팔달문 앞의 상권에 시장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경기남부 상권의 중심지로 자리를 잡은 팔달문 앞의 상가들을 겨냥한 많은 은행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어 자본금을 유치하기 위헤 노력을 했다. 1978년에는 영동시장이 증축공사를 하여, 시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2001년부터 한복 특화시장으로 자리를 잡은 영동시장은 제1회 한복미인 선발대회를 가졌으며, 2013생태교통 수원2013’에는 이클레이 임원들이 한복경연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한 눈에 시장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히스토리움. 영동시장에서 가장 먼저 시작을 했지만, 이제 수원시의 22개 전통시장도 이러한 히스토리움이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저가형 대형 할인점과 경쟁을 할 수 있는 길을, 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찾아들도록 만드는 일이다. 영동시장은 이제 그 경쟁력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세계문화유산이자 사적 제3호인 수원화성은 그 축성을 규장각 문신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만든 「성화주략(1793년)」을 지침서로 하였다. 재상을 지낸 영중추부사 채제공의 총괄아래 조심태의 지휘로, 조선조 정조 18년인 1794년 1월에 착공에 들어가 1796년 9월에 완공하였다.

 

화성은 정조 이산이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축성되었다. 또한 아버지인 장헌세자를 향한 효심과,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축성 이전부터 몰려든 상권

 

성을 쌓기 위해서는 많은 물자와 인력이 필요하다. 화성은 축성을 할 이전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축성이 시작되자 그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생필품은 물론, 물자조달을 위한 장거리가 형성이 되었다. 팔달문 앞에 있는 상권은 이미 정조 이산이 화성을 축성하기 이전부터, 이곳을 기점으로 난전을 형성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수문을 복원하고 있는 곳에서 그 위편 매향동 방향으로 수원천을 따라 올라가다가 보면, 개울가에 세워 놓은 그림을 그려 넣은 안내판이 눈에 띤다. 팔달문시장에서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이 그림안내판은, 팔달문시장의 개장배경과 함께 정조 이산의 꿈이 이곳 상권에 함께 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정조 이산이 직접 6만냥이라는 밑천을 대주어 이룩한 시장. 남문인 팔달문 앞에 전국 각처에서 수많은 인재들이 몰려들어 시장을 일으킨 것은, 바로 이러한 정조의 전폭적인 지지 때문이었다. 정조는 이 시장으로 인해 경제를 살리고 더욱 강한 왕권을 형성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한 것이다.

 

전국의 선비상들이 몰려든 수원

 

유상, 일반적인 장사치들이 아니다. 유상이란 수원 팔달문 앞에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선비들이었다. 물론 이 유상이란 말은 버드나무를 심은 수원을 ‘유경’이라 부른데서 비롯한 용어이다. 이들을 새롭게 조명해서 부르는 용어가 바로 유상이며, 전국 각처에서 모인 선비들로 이루어진 장사치들을 뜻한다. 그래서 이 유상들은 정조의 효심과 장조의 강한 왕권을 기반으로 한 국가를 건설하려는 뜻에 동참을 한 사람들이었다.

 

 

 

그 유상들 중에는 윤선도 가문의 후손들을 비롯하여, 전국의 내노라하는 선비들이 참여를 하였다. 정조는 이들에게 갓과 인삼의 유통권을 주었다. 갓과 인삼의 유통권을 갖는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수원 팔달문 시장의 우리나라 시장경제의 중심에 섰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유상의 근거지인 수원의 팔달문 시장. 지금도 이곳은 팔달문시장을 중심으로 주변에 7~8개의 시장이 모여 있는 상권의 중심지이다. 수원시는 이곳을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사업비 12억원(국,·도비 포함)을 투자해, 유상박물관과 팔달문시장 문화센터, 조형물 설치, IT 콘텐츠 제작 등 1차 사업을 완료했다. 또한 2차 사업은 12월까지 10개월에 걸쳐 추가로 진행될 예정이다.

 

 

 

팔달문 시장 등 재래시장 경쟁력을 키워주어야

 

그러나 이런 제반의 행위들이 의미가 있는 것인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수원시는 수원역사의 AK백화점을 비롯하여 역세권 상권을 조성한다며 대형 롯데쇼핑물 등을 허가를 내주었다. 거기다가 호매실 등에는 대형 매장인 홈플러스 등이 속속 입점을 위한 공사에 착수를 했다. 이러한 대기업의 물량공세에 과연 기존의 상권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어찌보면 시가 스토리텔링을 통하여 ‘유상선포식’ 등을 하고 재래상권을 살리겠다고 하지만, 이곳에 있는 상인들은 그리 마음이 편치가 않다고 한다. 아무래도 그러한 대기업의 물량공세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나와야한다는 것이다.

 

 

일부 의원들은 대형마트 등의 영업시간을 한 달에 두 번정도 쉬는 날을 제정하고, 영업시간을 단축한다고 하지만, 그도 '눈 가리고 아웅' 이라는 것이다. 집집마다 대형 냉장고 등을 갖추고 있는 작금에 하루 정도 대형마트 등이 문을 닫는다고 해서, 재래시장으로 상권의 중심이 옮겨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근본적인 재래시장을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조치가 준비되지 않는다면, 이산 정조의 꿈은 220년이 흐른 지금 끝이 날 수 밖에 없을 듯하다. 세상은 변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지켜져야 할 것은 지켜져야 하지 않을까? ‘유상선포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유상들이 옛 선조들의 당당함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단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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