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를 다니다가 보면 제일 힘든 것이, 제 시간에 맞추어 식사를 하는 것이다. 어던 날은 아예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할 때가 많다. 해가 넘어가기 전에 한 가지라도 더 촬영을 해야 한다는 욕심 때문이다. 그러다가 시간을 내어 인근에 있는 식당을 찾아들어가면, 음식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그저 허겁지겁 먹고 또 딴 곳으로 이동을 해야 하기 대문이다. 

참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나에게 물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언제부터인가 우리 문화재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되고, 그것을 찾아 하나하나 어디엔가 소개하는 것이 나의 일처럼 되어버렸다. 남들은 이런저런 일로 음식을 소개하고, 그것으로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문화재에 대한 고집스런 글을 올리다가 보니, 맛집을 발견해도 늘 식당문을 나서고 나서야 '소개를 할 껄 그랬나'라는 생각을 한다.

서로 상을 차리겠다고 하는 아이들.
 
원주시의 문화재를 답사하던 날, 이미 점심시간을 지나 배도 고프다. '한 가지만 더 찍고...' 라는 생각으로 돌아치다가 보니, 오후 2시가 넘었다. 아침을 7시에 먹었으니 배도 고프고 허기도 진다. 길가에 있는 식당들이 많지만, 그 중 한집이 눈에 띤다. 안으로 들어가니 살림집을 식당을 사용하는터라, 여느 식당처럼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냥 내집처럼 편안함을 주는 그런 곳이다. 밥 한상에 7,000원이라는 가격표가 보인다. 주변에 마당한 식당도 없는터에 이것저것 따질 수는 없다. 그래도 늦게나마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고마움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식당 집의 아이들인 듯, 누나와 남동생이 서로 상을 차리겠다고 주장을 한다. 서로 미루겠다고 다둘 나이인 듯 한데, 서로 상을 차리겠다는 아이들을 보면서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주거니 받거니 차린 소박한 밥상

누나와 동생이 서로 반찬을 들고나와 상을 차린다. 누나가 반찬을 놓고가면 동생이 다시 바구어 놓는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반찬을 놓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놓아야 손님이 먹기 좋을까를 안다고 하는 식당집 아들녀석의 이야기에 조금은 의아하기도 하지만, 그도 역시 기분 좋은 이야기다. 손님이 오면 찬을 준비하느라 음식이 조금은 늦게 나오는 편이다.
시장을 참는 것도 힘든데, 음식 냄새가 코를 간지럽히니 허기가 더 지는 듯하다. 얼른 밥을 달라고 하니, 밥을 새로 하느라 늦는 것이란다. 둘이서 하나하나들어다가 놓고 간 밥상. 화려하지도 않다. 가지수가 상 다리가 휠 정도는 더욱 아니다. 그저 시골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상차림이다.



특별한 것이 없다. 반찬이라야 10여가지. 거기다가 고급스런 반찬은 없다. 가갹에 비해 비싼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이 든다. 하지만 허기진 배에서는 연신 들어오라고 난리다. 조금 있으니 된장 냄새가 구수하게 나는 찌개를 갖다 놓는다. "뜨거우니 조심하세요"라는 말과 함께.


돌솥밥을 새로 하느라고 조금 늦었다고 정중히 이야기를 하는 남자녀석의 행동에 웃음이 난다. 하지만 반찬을 하나하나 먹어보니, 어디선가 많이 먹어 본 맛이다. 아주 오래전에 어머니가 텃밭에서 구해다가 만들어준 반찬맛이랄까? 그런 맛이 난다. 거기다가 식당이 가정집 거실이니 더 더욱 그러하다. 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은 조금은 텁텁하고 깔깔한 맛. 참으로 오랫만에 보는 맛이다.

 
찬의 종류도 그렇다. 전문적인 식당에서 내어놓는 반찬이 아니라, 집에서 늘 먹을 수 있는 그런 반찬이다. 집앞에 있는 밭에서 직접 농사를 지은 것들로 마련한 찬이라고 하니, 그 안에서 어머니의 손맛을 느끼는 것도 당연한지 모른다. 기분좋은 밥 한상. 아침부터 돌아치느라 피곤하고 허기진 배가, 따듯한 정성이 담긴 밥 한 상으로 인해 오랫만에 호강을 하는 것만 같다.

답사를 다니면서 온갖 맛이 있다는 집은 많이도 들려보았다. 집의 전면을 덮고있는 '무슨무슨 방송국 무슨무슨 프로 출연' 등의 문구가 적힌 곳도 수없이 들어가보았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조미료를 싫어해서인지, 그런 곳도 그렇게 맛있게 느끼지를 못한 것만 같다. 오히려 소박하면서도 어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집. 어느 가정의 점심상처럼 편안한 식단. 그래서 이 식사 한끼로 피로를 잊은 것만 같다.

        
밥 한끼를 먹으면서 감동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그것도 식당 밥을 먹으면서는 더 더욱 그랬다. 그러나 이 밥 한 상으로 피로가 말끔히 가셔졌다고 하면, 조금은 과장일까? 하지만 이렇게 소박한 밥상과, 상을 차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어 너무 고맙다. 아마 정이 가득한 집이어서 더욱 반찬이 맛이 있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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