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올해도 상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추석날 가족들과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시간에, 홀로 절집을 찾아 명부전에 차려진 제상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남자. 이유는 무엇일까? 묻기도 멋쩍어서 그냥 기다리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아닙니다. 그냥 자신이 초라해서 그렇습니다.”
“추석인데 가족들과 함께 계셔야지 왜 혼자 이곳에서..”
“집에 갈 수가 없습니다. 가족들을 볼 수도 없고요”



가족들과 함께 못하는 추석

이야기를 들어보니 작은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던 이분은, 꽤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살았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사업을 확장할 욕심으로 여기저기서 자금을 끌어 모은 것이 화근이 되어, 급기야는 사업체까지 남의 손으로 넘어가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집의 모든 재산들이 압류가 되어, 식구들까지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신세를 지기도 했는데, 막상 추석날은 친구 집에서도 신세를 질 수가 없어 무조건 길을 나섰다는 것이다.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이분은 할 수 없이 절을 찾아들고, 절에는 추석날 제상을 차려놓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곳으로 왔다는 이야기다. 들어보면 참 가슴 아픈 이야기다.

아버님의 상을 올해도 차리지 못했다는 눈물

참으로 가슴이 답답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자손이 되어서 조상님들께 제를 올려야하는데, 상을 차릴 곳도 상을 차릴 돈도 없어 절을 찾았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절에라도 와서 인사를 드리고 가면 좀 마음이 덜 아프죠.”
“시간이 되시면 이따가 공양이라도 하고 가세요."
“아닙니다. 오늘은 그저 산이라도 올라 마음껏 소리라도 쳐보고 싶네요.”

모든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앞 다투어 길을 나서는 추석이다. 시간이 걸리고 길이 막혀도 기다리는 소중한 가족들이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갈 수가 있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는 이렇게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 명색이 명절인데 마땅하게 갈 곳도 없어, 절을 찾아 무릎을 꿇는 그 심정이 오죽할까?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는 것을 느낀다. 비록 가족들과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가족들이나 다름없는 절집 식구들과 함께 웃을 수 있으니 말이다. 거기다가 손수 차린 상 앞에 무릎을 꿇고 조상님께 잔을 올릴 수 있으니, 이 또한 행복이 아니던가. 어제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로 조금은 우울한 날인데, 오늘 이 분과의 대화로 인해 내가 얼마나 행복에 겨워 투정을 부리는 가를 생각한다.

부디 내년에는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추석날, 절집을 찾아 울음을 우는 분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족둘과 떨어져 혼자 쓸쓸히 한숨을 쉬시는 분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느 곳에선가 말못할 사연을 안고 슬픔에 차있는 분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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