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군 마령면에서 만난 수선루가 눈에 선해

 

난 이 계절이 되면 여행을 떠나고 싶다. 30년 가까이 전국을 돌면서 만난 많은 문화재와 절경 등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그 많은 곳 중에 아직도 눈에 선한 몇 곳의 정자 등은 후에 책을 한권 내야겠다는 생각을 갖기도 했는데, 그 중 한 곳이 바로 암굴을 이용해 중층누각으로 지은 수선루라는 조선 후기의 정자이다.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산57번지. 이곳에는 지은 지가 333년이 지난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6호인 수선루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선루는 조선조 숙종12년인 1686년에 연안 송씨의 사형제인 진유, 명유, 철유, 서유 등이 힘을 합해 건립 하였다고 전한다. 선조의 덕을 기리고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 지었다는 이 누각은, 그 뒤 고종21년인 1888년에 그의 후손 송석노가 중수하였고, 연재 송병선등이 재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진안군지>에는 송병선이 지은 수선루 중수기가 게재되어 있다. 수선루 사변에는 '延安宋氏睡仙樓洞門' 이라는 아홉 자가 새겨져 있다. '수선루' 라는 명칭은 목사 최계옹이 이들 사형제가 우애와 학식이 두텁고 효심이 지극하며, 마치 신선이 노니는 것 같다고 하여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들 4형제는 나이 80이 넘어서도 이 정자에 올라 학문을 논하고, 바둑을 두기를 즐겼다는 것이다.

 

 

바위 암벽을 이용해 축조한 정자 수선루

 

수선루는 자연암굴을 이용하여 2층으로 세워져 있고, 2층의 중앙에는 '수선루(睡仙樓)'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수선루를 오르는 길은 우측으로는 숲이 우거져 있고, 좌측으로는 섬진강 줄기가 흐른다. 돌 축대를 쌓은 곳을 오르다가 보면 절로 입이 벌어진다. 어떻게 이런 곳에 누각을 지을 수가 있었을까? 2층으로 지어진 수선루는 1층의 문을 통하여 오르게 되어 있다.

 

이곳 수선루를 찾아갔을 때는 수선루 위에서 내다보이는 앞 들판에 벼가 누렇게 익어갈 철이었다. 앞으로는 나무들이 가려 밖에서는 수선루 전체가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이 누각을 찾아왔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돌아간 적이 있다. 그렇게 헛걸음을 친 덕에 이곳을 다시 찾았을 당시에는 사전에 수선루에 대해 조사를 하고 온 길이라, 머뭇거림 없이 수선루를 찾을 수 있었다.

 

자연암벽을 이용해 지은 수선루. 그 앞에서 문을 열고 들어가지를 못한다. 밖에서 보는 경치만으로도 절경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암벽을 이용해 정자를 지을 수가 있었을까? 한참을 밖에서 서성이다가 열려있는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다. 머리에 닿을 듯 누마루의 바닥이 위에 놓여있다. 바위를 주춧돌로 이용해 멋대로 늘어선 기둥들. 그 또한 세상 격식에 매이지 않은 송씨 4형제의 마음을 닮았다.

 

 

한 철을 이곳에서 머물고 싶다

 

정자의 보이지 않는 뒤편은 바위 면과 처마가 맞닿을 듯하다. 그래도 꾸밀 것은 다 꾸며놓았다. 비스듬히 깎아진 바위 면에도 송씨수선루라고 음각을 해놓았다. 그 밑으로는 바위틈에서 솟는 물이 고여 있다. 물을 떠 입안에 넣어본다. 싸한 기운이 목을 타고 흐른다. 이 물을 마시면서 4형제는 이곳에서 신선과 같은 생활을 한 것일까?

 

아마 나라도 이곳에서 떠나기 싫었을 것이다. 누마루 위로 올라본다. 앞으로 보이는 섬진강과 누렇게 익은 벼가 한 눈에 들어온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누각이, 그 위로 오르면 이런 아름다운 절경을 만들어 내다니. 이곳이야 말로 비경이 아니겠는가? 한 철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갑자기 수선루가 그리워진다. 그동안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 돌아보지 못했던 전국의 정자와 고택, 문화재, 그리고 아름다운 경치들. 그 오랜 세월 이런 것들을 찾아보지 못했다는 것이 삶에 찌들어서였는지 나태해졌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이 계절에 다시 여행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가까운 곳을 찾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절로 80수를 누릴 수 있는 곳이 아니겠나?

 

누각 안에는 수선루 중수기를 비롯한 게판들이 걸려있다. 작은 방 앞으로는 난간을 두른 쪽마루를 내었다. 방은 천정이 낮아 서서는 들어갈 수 없다. 아궁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겨울철에도 이곳에서 사방 경계를 바라보며 즐겼음을 알 수 있다. 그야말로 신선이 노니는 곳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위에 서니 절로 신선이 되는 듯하다.

 

누마루에 철버덕 주저앉는다. 세상 모든 시름을 다 털어버릴 수 있는 곳이다. 인적 없는 이곳에서 한 철을 살면 안 되려나? 사람들은 어찌 이런 곳을 두고, 답답한 세상 속으로 들어간단 말인가? 이 수선루가 내 조상들의 것이 아님을 한탄한다. 떠나고 싶지 않은 수선루. 난 이 누각을 호남제일암루라고 이름하고 싶다. 아마 이곳에서 한 철을 난다고 하면, 절로 80수를 누릴 수 있으려니 말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 수선루의 자료를 찾는다. 벌써 이곳을 다녀온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여행하기 닥 좋은 계절, 들판에 나무들도 푸른색을 띠고 있다. 이번 여행은 진안군을 한 번 다녀와야겠다. 마이산을 비롯해 많은 볼거리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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