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받은 지인의 도움을 그 자손에게 갚았다

 

마애불이란 바위나 암벽 등에 새긴 불상을 말한다. 30여 년 동안 문화재 답사를 하면서 만난 수많은 마애불들. 언젠가는 마애불에 관한 작은 책자를 하나 내야겠다는 생각으로 계절을 구분하지 않고 마애불이 있다고 하면 찾아다녔다. 마애불이 자리하고 있는 곳은 험한 길을 걸어야 하기도 하고 복중 더위에 비지땀을 흘리며 산길을 기어오르기도 했다. 많은 문화재 중에 마애불을 만나러 가는 답사는 어렵고 고통스런 길이었다.

 

그렇게 마애불을 찾아다니면서 감동을 받은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도대체 장인은 왜 이런 험산준령에 마애불을 조성한 것인지? 지금처럼 장비도 발달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 높은 암벽을 타고 내려와 저렇게 바위에 그 거대한 마애불을 조각한 것이지? 마애불을 만날 때마다 그런 질문은 점점 늘어만 가고 결국 대답 없는 마애불의 조성을 생각하면서 그 어떤 불교미술품보다 몇 배의 정성이 들어가지 않았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인가, 내가 답사를 하다가 마애불을 만나게 되면 꼭 한 가지 치루는 의식이 있다. 바로 그 앞에 머리를 조아려 마음속에 서원하는 바를 간절히 간구하는 것이다. 그 간구가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확인은 필요치 않다. 그저 내가 마애불을 만났고 그 마애불을 조성한 장인의 정성을 느끼고 있기에 마애불 앞에서 간절히 서원을 간구하면 막연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마애불에 대한 나의 믿음은 답사를 계속하고 더 많은 마애불을 만나게 되면서 확고해져만 갔다. 그것은 마애불에 전해지는 많은 이야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나는 마애불마다 마애불에 읽힌 이야기는 우리들의 믿음을 초월하는 것들이다. 결국 마애불은 우리가 상상하는 정성을 뛰어넘는 장인의 노력을 요하고 있고, 그런 노력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서원을 들어주었다는 점이다.

 

 

, 나는 마애불을 조성할 생각을 했니?

 

20168월은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었다. 그런 날씨를 피해 간 곳이 바로 고성군 현내면 산학리 금강산 노인봉 아래 자리하고 있는 정수암이라는 암자다. 이곳 주지스님은 벌써 20여년 가까운 시간을 늘 마음을 더하고 살아온지라 마음 편하게 찾아갔다. 정수암 한편에 자리한 요사에서 하루를 묵고 일어나 문을 열고 나오는데 인법당 앞에 바위에 마애불이 보였다.

 

그 전날까지도 볼 수 없었던 마애불을 언제 누가 저렇게 조성을 한 것일까? 그런데 그만 헛것을 본 것이다. 그저 덩그마니 자리한 바위인데 왜 마애불이 보인 것일까? 법당 안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예를 올리는데 마애불을 조성하자라는 생각이 든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바위를 깎아 마애불을 조성하는 것이 쉬운 일인가? , 마애불을 조성하려면 그 경비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한 달을 쉬지 않고 노력을 해야 살아갈 수 있는 나로서는 그 마애불을 조성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때 내가 정수암을 찾아간 것은 마음속에 서원하는 간절함이 있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 낯 모르는 분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데 정말 우연히 그 지인을 수십 년이 지나 만난 것이다. 그리고 몇 차례인가 술자리를 함께하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그 지인은 나중에라도 자신의 딸을 만날 기회가 생기면 딸처럼 아껴주라는 부탁을 했다. 사람이 술김에 하지 못할 약속이 어디 있겠는가? 또한 그 딸을 만날 일도 없으니 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지? 우연일까? 공덕일까?

 

사람이 남에게 도움을 받으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옛 어른들이 말씀을 하신다. 갚기 싫어도 갚아야 할 때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나에게 생기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우연히 만나게 된 한 사람이 어떻게 이 넓은 세상에 그 도움을 준 지인의 딸일 수가 있겠는가? 영화에서니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소름이 돋는다.

 

그 따님에게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그저 내가 진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 따님의 자제가 몸이 불편해 몇 차례인가 수술까지 받았다는 이야기에 그 무더운 복중에 절을 찾아다니면서 나름 간절히 기원을 하고는 했다. 내가 찾아다닌 절은 대개 마애불이 인근에 소재한 곳이고 가급적이면 마애불을 찾아가 기원을 한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그 바위가 마애불로 보였나보다.

 

결국 스님과 상의를 하고 여주에 살고 있는 의동생인 작가에게 당부를 했다. 마애불을 조성하는데 의형제들이 조금씩 경비를 마련해 조성하자고. 선뜻 마애불을 조각하겠다고 나선 여주아우나 함께 동참하겠다고 나선 주변의 지인들. 아마 내가 마애불을 조성해 받는 공덕이상으로 도움을 준 지인들이 더 많이 받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렇게 마애불의 조성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20169월 연화대를 뺀 부분이 조성이 되어 점안식을 가졌다. 그리고 17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연화대 조성을 하지 못해 늘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번에 아우가 바쁜 일정에서도 며칠 시간을 내 연화대 조성을 마무리했다고 연락을 취해왔다.

 

 

선생님 덕에 우리 애가 달라졌어요. 이제 스스로 운동도 하고 취직자리도 알아보고요

아우가 고성으로 17개월이나 미완으로 남아있던 마애불의 연화대를 조성하기 위해 떠난다고 연락을 취하던 날 만난 지인의 따님이 전해준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동안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미안한 마음이 사라지는 듯하다. 마애불을 조성할 때 크던 작던 도움을 준 지인들의 이름을 마애불을 조성한 바위 한 면에 각자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들은 콧방귀를 뀔지 모르지만 나의 간절함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다. 마애불을 조성한 수많은 장인들이 그 믿음 하나로 그 높은 바위를 정 하나를 이용해 쪼아냈을 것이다. 돌아오는 4월초파일(522)엔 힘들게 조성한 마애불을 찾아가 감사의 공양물이라도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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