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막 산길에 웬 아낙네가 비를 맞고 서 있을까?

 

길은 어디에나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 길이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길은 세상에 변하면서 차츰 사람들에게 잊히기도 한다. 청양군 칠갑산은 콩밭 매는 아낙네 상으로 유명한 곳이다. 조금 넓은 1차선 도로는 차를 만나게 되면 비켜가기도 힘이 들 정도지만, 이 길에서 느끼는 지연의 운치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더욱 비가 오는 날에는 말해 무엇 하랴.

 

장곡사를 거쳐 장승공원을 둘러본 후 칠갑산 구길을 넘어 정산면으로 향하기로 하고 길을 들어섰다. 초입부터 여느 길에서 느껴보지 못한 고즈넉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구불구불 돌고 돌아 오르는 길. 그 양편으로 우거진 숲. 그리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데로 튀겨 오르는 도로. 모든 것이 사람을 반기는 듯하다.

 

 

이 도로 왜 이렇게 좋은 것이야!

 

벌써 이 길을 걸은 지가 15년 가까이 되었다. 2005823일 당시 장곡사를 들려, 역시 이 길을 넘어 정산면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큰 도로가 개설되고 터널이 뚫려 사람들이 이 길을 이용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길을 넘다가 차라도 만나면 비켜가기가 어렵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이 좋은 길을 어찌 놓아두겠는가? 마침 비가 내리는 날이라 이 길을 이용하는 차량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마음 편하게 천천히 산길을 올라본다. 차창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마저 정겨운 길이다. 중간 중간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쉼터가 있지만, 장맛비에 젖어 있어 선뜻 앉아볼 수가 없음이 안타깝다.

 

그렇게 좁은 옛 도로를 따라 고개 마루턱에 오르면 터널이 나온다. 그 터널 끝에는 우측으로 칠갑산 정상과, 칠갑산 천문대로 오르는 길이다. 좌측으로 내려가는 길을 택하면 정산면으로 가게 되는데, 그 중간에 칠갑산 노래비가 서 있다. 콩밭 매는 아낙네상이 서 있는 곳이다.

 

 

아낙네 한 사람이 늘었네.

 

옛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칠갑산 노래공원. 그런데 노래공원 비 앞에 낯선 여인 한 사람이 서 있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아낙네다. 전에는 노래비 위에 앉아있는 아낙네와 건너편에 아낙네상이라는 호미를 들고 서 있는 여인상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 답사 길에서 만난 또 다른 여인네가 노래공원 비 앞에 호미를 손에 들고 서 있다.

 

콩밭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 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 속을 태웠소.

 

그저 이 노랫말만 들어도 가슴이 싸하다. 아마도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이기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드는가도 모르겠다. 거기다가 한 사람이 늘어난 아낙네도 그렇고, 예전에는 칠갑산 산마루라고 하던 음식점이 있던 자리가, 지금은 불은사라는 절이 되어 전혀 낯선 광경에 조금은 당황하기도 한다.

 

 

벌써 오래 전 이 길을 넘을 때는 그래도 차들이 다니고는 했는데, 고개를 넘어 정산면에 들어서는 큰 길에 나올 때까지 단 한 대의 차도 만나지 못했다. 사람들에게서 잊힌 길일까? 아니 비가 내리는 날이기에 만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위로를 해본다. 빗길에 돌아 본 칠갑산 고개를 넘던 도로인 옛길. 그렇게 한적함을 지닌 아름다운 길을 지나며, 옛 생각에 젖는다. 사람도, 길도, 자연도 그렇게 젖어버렸다.

 

전국의 아름다운 길과 아름다운 경치를 찾아다니는 여행. 이렇게 비가 내리는 칠갑산 산마루 길을 걸어보면서 또 다른 정취를 느낀다. 우리나라의 많은 길들은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어 좋다. 그런 길을 걷고 있노라면 더 많은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사람의 명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아름다운 길을 더 많이 걸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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