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주사 범종에 미쳐 자릴 못 떠나다

 

사람이 살면서 가끔은 미칠 때가 있다. 난 그렇게 내가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즐겁다. 무엇엔가 미칠 때가 가장 행복하기 때문이다. 20년이 넘는 세월을 전국을 유람을 하면서 문화재를 만났다. 그런데 가끔은 정말 미칠 때가 있다. 난 문화재 전문가도 아니다. 그렇다고 문화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있는 것은 더 더욱 아니다. 그저 우리 문화재가 소중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 오랜 시간 전국의 문화재를 찾아다녔다.

 

아마 그동안 길거리에 쏟아 부은 돈만 해도 엄청나다. 한 번 답사를 나가면 짧게는 12일이지만 길게는 몇 날을 길에서 보냈으니 말이다. 그동안 답사를 한다고 돌아다니면서 사용한 경비만 해도 넓은 아파트 한 채는 사고도 남을 만하다. 내가 미치지 않고서는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주변에서는 곧잘 나에게 문화재에 미친 정신병자라고 놀려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소리를 들어도 내 미친병은 나아지지를 않았으니 미쳐도 곱게 미친 것은 아닌 듯하다.

 

며칠 전인가? 8일이었나 보다. 화성시 용주로 136(송산동)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를 찾아갔다. 벌써 다녀온 지가 2년이 훌쩍 지났기에 그동안 무슨 변화라도 있을 듯해 찾아간 절이다. 절 입구에는 무슨 일이 있는지 현수막에 얼굴 붉힐만한 사연들이 적혀있다. 다시 이곳을 찾을 때는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절 안으로 향했다. 문화재를 찾아온 발길이기 때문이다.

 

오색 등과 함께 빛나는 용주사 범종

 

절 안으로 들어가니 절 마당에는 오색 등이 걸려있다. 부처님 오신 날 준비를 하느라 많은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정면 중앙에 자리 잡은 대웅보전 계단 아래는 꽃으로 장식한 아기탄생불이 놓여있고 불자들은 그 앞에 머리를 숙여 합장을 한 후 물을 작은 바가지에 퍼 탄생불을 씻어내는 관욕 의식을 행하고 있다.

 

잠시 머리를 숙이고 난 뒤 계단을 올라 대웅보전을 바라보고 좌측 범종각으로 향했다. 늘 용주사를 찾을 때마다 둘러보는 범종이지만 볼 대마다 그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라보는 내 마음이 늘 같지 않음을 뜻한다. 어느 날은 종 앞에서면 평온한 종소리가 울리는 듯하고, 어느 날은 마른하늘에 벼락이 치듯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내 마음이 평온한 날과 번뇌가 가득한 날의 차이란 생각이다.

 

범종각 앞에 머리를 숙이고 잠시 생각을 한다. 왜 이 범종은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른 것일까? 그동안 수많은 범종을 만나면서 꼭 이 범종 앞에만 서면 느낌이 달라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날 역시 범종을 바라보고 섰지만 마음이 영 편치가 않다. 무슨 일일까? 절 삼문을 들어서기 전 눈에 띤 현수막 때문이었을까?

 

 

범종 하나가 주는 교훈

 

종각 안에 놓인 범종을 둘러본다. 종각을 몇 바퀴 째 돌면서 하나하나 훑어본다. 도대체 국보와 보물의 차이는 무엇일까? 오히려 이 종보다 더 멋진 종을 본 기억이 나는데 보물이었다. 그런데 이 종은 왜 국보로 지정된 것일까? 국보 제120호 용주사 범종이 다른 점은 무엇일까? 범종의 높이 1.44m, 입지름 87cm의 신라 범종의 양식을 따른 용주사 범종. 명문에는 신라 문성왕 16년인 854년에 주조한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으나 신라의 종과는 일치하지 않아 고려 전기의 종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맨 위에는 음통이 있고, 용 모양으로 조형한 종을 걸 수 있는 용뉴가 있다. 조형은 세심하게 되어있으나 다른 종과 다를 것은 없다. 종의 몸통에는 여의두문과 당초문이 조각되어 있다. 그 조각한 솜씨를 보니 그저 화선지에 그림을 그려놓은 듯 정교하다. 왜 지금까지 이런 정교함을 발견하지 못한 것일까?

 

다시 당초문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마치 금방이라도 종에서 자라난 당초문이 종각을 타고 위로 타고 오를 듯 생동감이 넘친다. 어떻게 쇠붙이에 이런 조각을 할 수 있었을까? 머리 띠 아래로는 4개의 유곽과 9개의 유두, 그 아래는 천의를 날리고 있는 비천상과 심존상, 그리고 종을 치는 자리인 당좌와 소용돌이 모양으로 새겨 넣은 연꽃문양, 신라 문성왕 때 주조했다는 명문 등이 있다.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종이 보인다. “~ 그래서 국보였구나?”

 

그런데 몇 바퀴를 종각을 돌아보다가 희한한 것이 보인다. 천의 자락을 날리는 비천상과 두광을 갖추고 결가부좌를 한 채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고 있는 삼존상이 달라 보인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종을 벗어난 비천상과 삼존상이 하늘을 날고 있다는 느낌이다. 범종의 그 딱딱한 쇠붙이에서 어떻게 튀어 나온 것일까?

 

왜 늘 그 자리에 조각되어 있던 비천상과 삼존상이 갑자기 종 밖으로 날아오르는 느낌이 들었을까? 눈을 부비고 다시 들여다본다. 이번에는 자리가 달라진 듯하다. 분명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나보다라는 생각을 한다. 그동안 누구 하나 도와주는 이도 없었는데 너무 오랫동안 미친 짓을 했기 때문인가 보다.

 

 

아무래도 헛것이 보이기 시작한 것일까? 늘 답사를 떠날 때마다 마음을 졸이며 경비를 사용하려고 돈을 움켜잡고 있다가 며칠 만에 빈 털털이가 되어 돌아오는 답사를 계속하다 보니 이젠 헛것이 보이는 게 틀림없다. 20년이 넘는 세월을 길가에 뿌려댄 돈이 이젠 나를 미치게 만드는 것인가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범종에 새겨진 비천상들이 하늘을 날아오를 것인가?

 

처사가 이젠 보는 눈이 열린 게야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주변엔 아무도 없는데 말이다. 비용이 딸려 답사를 오래도록 하지 못했더니 이젠 정신까지 달아났는가 보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하랴. 하늘을 나는 비천상과 종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말이다. 누가 믿고 안 믿고는 그들의 판단이다. 나는 이렇게 문화재에 미쳐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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