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탱자나무의 키는 보통 3m 정도 자란다. 탱자나무는 줄기와 가지 곳곳에 커다랗고 뾰족한 가시들이 달려 있다. 이 가시는 단단해 촘촘히 심으면 아무도 근처에 얼씬을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남쪽 지방에서는 탱자나무를 울타리용으로 많이 심고 있다. 탱지니무는 중국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일부의 학자들은 한국에서도 자생해왔다고 주장하지만, 오래 전 중국에서 전해졌다는 견해가 많다.

문경시 산북면 대하리 460-6에 소재한 장수황씨 종택,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서면서 좌측으로 보면 탱자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이 탱자나무는 수령이 400년이 지난 것으로, 현재 경상북도 기념물 제135호이다.


황희정승의 후손이 심은 탱자나무

이 나무는 일반적인 탱지나무보다 생육이 좋다. 높이는 6m에 이르고, 나뭇가지는 동서로 10,8m, 남북으로는 11,2m나 되며 수관을 자랑하고 있다. 이 탱자나무는 사실은 두 그루이다. 마치 한 그루가 자라난 것 같지만 밑 부분을 보면 두 그루가 붙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나무의 수령이 400년이나 되었다고 보는 것은, 황희정승의 7세손인 칠봉 황시간(1558 ~ 1642)이 이곳에 터를 잡고 집을 지으면서 심었던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이다.

나무를 돌아보니 밑 부분은 수술을 하였다. 강화 등지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탱자나무가 있기도 하지만, 전국을 돌아보아도 이렇게 생육이 좋은 나무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나무는 두 그루의 나무가 붙어 몇 개의 가지를 위로 뻗고 있다. 밑 부분은 많이 파여 수술을 했으나, 가지 등을 보면 아직도 건재하다.




탱자나무를 보면 마음 아픈 사연이

푸른 나뭇잎들이 달려있는 나무에는 열매도 보인다. 나무의 크기답게 긴 가시들이 사람을 위협을 한다. 이 나무를 보고 있노라니 가슴 아픈 기억이 새롭다. 예전 경상북도 영주시를 답사할 때인가 보다. 소수서원 건너편에 보면 금성단이 있다. 이 금성단을 지나 마을 안길로 들어가면, 금성대군이 위리안치를 당했던 곳이 나온다.

위리안치란 형벌 가운데서도 가장 두려운 형벌로 알려져 있다. 신체적인 고통은 그리 크지 않다고 하지만, 정신적인 고통은 그 어느 것보다도 크다는 것이다. 인가도 없는 들판에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사람을 가둔다. 구덩이는 돌로 둥그렇게 앃은 후 맨바닥이라, 사람이 재데로 앉아 있을 수도 없다. 물론 그 안에 갇힌 사람은 밖으로 나올 수가 없다. 그리고 주변을 바로 이 탱자나무로 두른다. 입구 한 편만 열어놓는데, 그곳은 병사들이 지키고 있다.




촘촘히 심어놓은 탱자나무는 틈이 없다. 나뭇가지를 벌린다고 해도, 그 가시들 때문에 손으로 잡기도 힘들다. 결국 사람도 없는 웅덩이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다. 탱자나무를 볼 때마다 금성대군이 갇혔던 위리안치지가 생각이 난다. 그 안에서 얼마나 몸부림을 쳤을까? 약재로 사용하는 탱자나무이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그렇게 모진 나무가 될 수도 있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진다. 장수황씨 종택의 탱자나무는 사랑채와 사당 앞에 심겨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같은 나무이면서도 어찌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을까? 그것이 세상사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 탱자나무를 보면서 가슴이 아프다. 미처 몰랐다. 이 나무 하나가 주는 아픈 기억이 그리 오래 갈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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