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동길목

홀로 핀 봉숭아 꽃 너무 붉다

풍선처럼 팽팽해진 탱글한 씨앗자루

꼬투리 투툭, 터지며

날아든 파편

내 가슴 한 켠에 박혀

새록새록 이듬해 핀다.

 

 

지난 1026일 오후 지동 벽화골목에 시인의 벽이 마련되었다. 수원시인협회(회장 김우영)가 주관한 이 행사에는 고은 시인을 비롯해, 지동에 거주하는 아동문학가 윤수천 선생, 수많은 시인 제자들을 배출한 원로시인인 유선 선생 등 많은 시인들이 함께 자리를 했었다. 시인의 벽은 시립지동어린이집 건너편 벽에 마련이 되었다.

 

 

눈 오는 날 벽에 시를 입히는 시인들

 

14일 오후, 이 지동 벽화 길에 또 다시 10여명의 시인들이 찾아들었다. 가는 눈이 점차 함박눈으로 변해 내리지만, 벽에 자신의 글을 쓰는 시인들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흡사 자신들이 마치 눈인 듯 벽에 시를 입힌다. 위 시는 정겸 시인의 봉숭아 꽃이라는 시이다. 눈발이 점차 거세지면서 바람까지 분다. 1차 시인의 벽을 조성할 때 미처 찾아오지 못했던 시인들이다.

 

시인 윤민희는 지천명이라는 시를 적었다.

 

절반은 내가 가고

절반은 네가 와서

손잡고 갔으면 좋겠어

 

절반은 앞에서

절반은 뒤에서

나란히 갔으면 좋겠어

 

자정이 바라보는 정오

춘분 추분이 바라보는 해와 달

좌우 날개로 나는 새들처럼

중용을 잃지 않는

지천명이었으면 좋겠어

 

날이 춥다. 그 추운 날을 녹이는 것이 바로 시인의 벽이요 지동 벽화 시골목이다. 한참을 손을 호호 불어가며 시를 쓰고 있는데 골목의 한 집 대문이 열린다. 지동 창룡문로 60-3의 주소를 가진 집이다. 직접 커피를 끓여 시인들에게 대접을 한다. 집 주인과 따님이 내어주는 커피 한 잔에 차갑던 몸이 녹는다.

 

눈이 오는 날 지동을 찾아 시를 적는 시인들에게 따듯한 차 한 잔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좋다. 그 마음 하나가 찬 눈이 쌓인 감나무 가지에 달린 까치밥과 같이 여유롭다. 그래서 지동은 살가운 동네라고들 한다. 인정이 넘치는 지동 벽화골목. 그곳에 마련된 시인의 벽과 골목. 또 하나의 지동 명물이 되었다. 주말이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포토죤이 되었다. 눈이 소복이 쌓인 블록 담장위에 쌓인 눈에, 처마에 달린 마가목 씨앗 열매가 더 붉기만 하다. 정명희는 죽어서도 상사화가 되고 싶다고 풀씨와 자동차라는 시를 적었다.

 

죽어서도 상사화가 되고 싶은 마음

멀지 않은 그길

내달리지 못하는 아쉬움이

이른 끔 하나 떨어트렸다

차마 내 뿜을 수 없는 열기

더 뜨거운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가 되었다

나뭇잎이 될게

꽃잎은 아주 많이

그래서 씨앗으로 바퀴를 만드는거야

어느 무공해의 도시

오랜 통증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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