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에서 10km 정도 떨어져 있는 구암마을. 부안군 하서면 석상리 707번지인 이곳에는 사적 제103호인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이 있다.

 

지석묘란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무덤으로서 고인돌이라고도 하며, 그 형태에 따라 북방식과 남방식으로 구분한다. 북방식은 책상처럼 세운 탁자식을 말하며, 남방식은  큰 돌을 조그만 받침돌로 고인 바둑판식을 말한다.

 


 

10기의 지석묘가 남아

 

구암리에는 1956년 조사 때 고인돌이 총 13기가 있었다고 하나, 1982년 사적으로 지정이 될 당시에는 민가의 울타리 안에 있던 것인데 현재는 10기만 남아있다. 구암리에는 여러 곳에 고인돌 무덤떼가 있는데, 고인돌은 대체로 자연암석을 떼어내 덮개돌로 사용한 바둑판식 지석묘이다.

 

이곳 고인돌의 뚜껑돌인 상석은 큰 것이 길이가 6.35m, 너비 4.5m, 높이 70 ∼ 100㎝에 달하며 받침돌 8개가 이를 받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고인돌은 보통 4개의 받침돌을 이용하는데 반해, 8개의 받침돌을 받쳐 다른 지역 고인돌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작은 것들은 길이 3 ~ 4m에 너비가 2 ~ 3m 정도이다.

 

남방식 지석묘인 바둑판식이다. 상석을 작은 몇 개의 굄돌 위에 올려 놓았다.

 

독특한 구암리 지석묘군

 

구암리 지석묘군은 딴 곳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모습이다. 부안의 딴 곳에 있는 지석묘를 보아도 구암리 지석묘와는 형태가 다름을 알 수 있다. 현재는 사적으로 지정이 되어 있어, 이곳을 문화재 보호지역으로 정하고 울타리를 쳐놓고 보존을 하고 있다. 가장 큰 것은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첫 눈에 보기에도 그 크기가 남다름을 알 수 있다.

 

주변을 돌면서 굄돌을 살펴보니 굄돌의 크기도 모두 다르다. 가장 큰 고인돌은 8개의 굄돌로 받치고 있는데, 주변의 고인돌의 굄돌보다 크다. 아마 위에 올린 뚜껑돌인 상석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인듯하다. 굄돌의 개수도 다 다르다. 큰 것은 8개, 그 외에는 6개, 5개, 4개 등 다양하다. 아마 그 돌의 무게에 따라 적당한 굄돌을 받쳐 놓은 것인가 보다.  


 

 

이 구암리 지석묘의 밑에서는 돌칼과 돌화살촉 등이 발견이 되었다고 한다. 고창지역과 부안지역은 북방식 고인돌인 탁자식 고인돌이 군데군데 분포하고 있는데 비해, 이곳 구암리 지석묘는 모두 남방식 지석묘이다.   

 

거북모양 등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

 

구암리 지석묘의 뚜껑돌인 상석의 형태는 다양하다. 거북이 웅크리고 있는 모양도 있고, 어느 것은 막돌을 갖다 올린 듯한 것들도 있다. 굄돌을 받친 형태도 일정하지가 않다. 이렇게 다양한 크기의 고인돌은, 당시 이 지석묘의 주인들의 신분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크고 작은 고인돌의 형태가, 이곳 주변에 살던 부족 중에서 나름의 위치를 알려주는 듯하다.

 

당시에 어떻게 이렇게 큰 돌들을 잘라낼 수가 있었을까? 그리고 굄돌을 놓고 그 위에 이 무거운 상석을 어떻게 올려놓은 것일까? 지석묘를 볼 때마다 늘 궁금하다. 지금처럼 장비가 있지도 않았던 시절에, 이렇게 큰 돌을 이용해 지석묘를 만들었다는 것이 놀랍다.


 

뚜껑돌인 상석이 큰 것은, 길이가 6.35m, 너비 4.5m, 높이 70 ∼ 100㎝에 받침돌 8개를 돌려 세웠다.

 

그 가운데 작은 것 하나가 유난히 눈에 띈다. 길이는 1.5m 정도일까? 저런 지석묘는 혹 어린 아이가 죽었을 때 쓴 지석묘였을까? 구암리 지석묘를 보면서 쉽게 뒤돌아 설 수 없었던 것은 수많은 의문 때문이다. 그래서 문화재 답사는 힘이 들기는 하지만, 수많은 해답을 얻어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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