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일이 음력 4월 초파일, 사전에 축제분위기

 

부처님 오신 날58일이다. 음력 4월 초파일이 부처님 오신 날인데 그 전에 부처님의 자비광명을 알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난타의 공양을 일깨우기 위함일 것이란 생각이다. 부처님이 영취산에 계실 때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께 등을 받쳤는데 지극한 정성과 발원으로 바친 난타의 등불만이 다른 모든 등불들이 꺼진 후에도 홀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본 부처님께서 난타의 지극한 정성을 알고 "이 여인은 등불공양의 공덕으로 성불할 것이며 수미등광여래라 할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 때부터 연등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연등은 불교초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동진의 승려인 법현이 인도를 다니면서 쓴 구법기행기(339-414)에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연등에 관한 기록이 보인 것은 신라 경문왕 6(866)과 진성여왕 4(890) 정월 15일에 황룡사로 행사하여 연등을 켜고 꺼지지 않도록 간등(看燈)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진흥왕 때는 팔관회와 함께 연등회가 열렸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연등의 습속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연등회의 유풍인 연등행렬

 

연등회는 고려 태조 때 <훈요십조>에 의해 거국적인 행사로 행해졌다. 이후 성종 때 유학자들의 강한 반대로 일시 폐지했다가 현종1년인 1010년 윤3월에 다시 행했다. 그로부터 매년 2월 보름에 연등회를 베풀었다. 초파일 연등은 석가 탄생을 축하하는 연등으로 현재 인도를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널리 행해지고 있는 불교의 가장 신성하고 장엄한 행사이다.

 

4월 초파일 연등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사>에서 볼 수 있다. 고려사에는 고려 의종 때 백선연이 48일에 점등했다고 적고 있다. 당시에는 초파일 연등을 열면 3일 낮과 밤 동안 등을 켜놓고 미륵보살회를 행했다고 한다. 이러한 연등회는 조선 태종 15년인 1415년 이후로는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다.

 

현재의 음력 4월 초파일에 행하고 있는 연등회는 신라 때부터 전해진 팔관회와 연등회, 그리고 1414년부터 기록에 보이고 있는 수륙제를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처님 오신 날인 음력 4월 초파일이 되면 사람들은 등을 밝히고 부처에게 귀의한다는 등공양으로 연등회를 열고 있다.

 

 

행궁 광장 낮부터 시끌벅적

 

연등행렬이 이루어진다는 27일 오후 행궁광장으로 나갔다. 오전부터 부스를 치고 각종 체험과 놀이 등으로 행궁광장이 시끌벅적하다. 이렇게 하루 종일 북적대던 연등축제는 오후에 점등식을 갖고, 이어 모든 수원의 불자들이 행궁광장을 출발해 팔달문을 거쳐 장안문을 돌아오는 연등행렬로 장관을 이룬다.

 

불교에서는 육법공양이라는 것이 있다. 육법공양(六法供養)이란, ()과일쌀의 여섯 가지 공양물을 부처님께 올리는 의식으로, 그 공덕을 시방 삼세 일체중생에게 회향하여, 나와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해탈하기를 간절히 발원하는 의식이다. 그 중 두 번째로 올리는 등()반야등(般若燈)’이라고 부른다.

 

연등행렬을 보기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도로로 나왔다. 그 틈에서 사진촬영을 한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침 9시에 집을 나서 하루 종일 취재를 하다 보니 밤 9시가 다되었다. 이렇게 돌아치는 날이 되면 몸은 파김치가 된다. 그래도 하루해를 행사장을 돌아다니며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하루의 바쁜 일정을 마감하는 연등행렬. 그 많은 군중들 사이에서 나도 하나의 연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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