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팔달구 영동 43-2 번지에 소재한 영동 거북산당. 이 도당은 18세기 말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그 역사가 200여 년이 지난 것으로 추정한다. 영동 거북산당은 화성을 축성을 하기 이전부터 이미 그곳에 서 있었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이 거북산당이 자리한 앞쪽으로는 낮으막한 ‘거북산’이라는 산이 있어, 그 명칭을 거북산당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거북산당은 처음에는 현 구천동의 마을 제당으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던 곳이었을 것으로 보이나, 후에는 영동시장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도당으로 기능이 바뀌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 거북산당은 주변 상권과 무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화성 축성을 위해 팔도에서 모여 든 수많은 노역자들로 인해 장시가 개설이 되고 난 후. 그때부터 팔달문 앞에 형성된 장시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재인청의 마지막 화랭이 이용우 일가가 지켜 온 거북산당

 

영동 거북산당은 옛날에는 세습무인 화랭이에 의해 굿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재인청 도대방을 역임했던 이종하의 삼남인 이용우 선생이, 생존 시 거북산당 도당굿을 주관하였다. 이용우 선생 일가는 현 오산시 부산동(당시 수원 오산리)에 거주하였으며, 경기도 지역의 많은 도당굿을 주관해 오기도 했다.

 

현재 정면 두 칸, 측면 한 칸의 기와로 조성된 겨북산당은 수원시 향토유적 제2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거북산당은 과거에는 짚으로 이엉을 엮어 만든 ‘터주가리당’이었다고 한다. 1935년(乙亥年)에는 터주가리 당 앞에 작은 연못이 있었으며, 당 옆에는 3층으로 된 탑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 거북산당 주변에는 기와집과 판잣집들이 있었다고 전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이곳이 팔달문 앞 장시의 외곽에 있던 당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터주가리 당을 당시 인계동에 거주하던 이씨 만신이 관청의 도움을 받고, 개인이 사비를 들여서 거북산당을 축조하고 그 안에 도당할아버지와 도당할머니 그리고 대왕님의 탱화를 모셨다고 한다.

 

그 탱화는 현재 거북산당 안에 모셔진 그림과 동일한 형태이다. 그 뒤 1994년 10월 24일(음력 9월 10일) 수원시청의 지원을 받아 당을 수리하고 단청을 새로 입혀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당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당 앞에 있었다는 연못이 메어지고, 그 자리에는 앞 건물에서 가건물을 내 짓는 바람에 옛 형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게 당의 형태가 변한 거북산당은 세습무인 화랭이들이 주관하던 것을, 이용우 선생의 제자인 강신무로 전 경기도당굿 기, 예능보유자였던 고 오수복으로 전해졌다. 보유자 오수복의 별세 이후 지금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인 경기도당굿의 회원들이 도당굿을 맡아서 하고 있다.

 

 

영동시장 내에 거북산당이 건립된 이유는?

 

영동 시장 내에 거북산당이 축조된 이유를 보면 화성의 축성과 무관하지 않다. 화성 축성을 위해 전국에서 많은 노역자들이 몰려들었고 자연히 팔달문밖에 장시가 서게 되면서, 상인들 을 주축으로 상가의 번영과 안녕을 위한 도당을 필요로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도 시장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당고사를 지내지 않으면 시장에 불이 잘 나기 때문에, 예전부터 이 시장에서 터를 잡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세상없어도 당제는 올려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의 명칭이 거북산당으로 불리는 것은 원래 이곳에 거북이 모양의 돌이 있었다고도 하고, 또 인근의 구천동과 가까우며 주위에 물이 많은 곳이라서 풍수적으로 불을 제압 할 수 있는 힘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근처에 ‘거북산’이라고 부르는 작은 언덕이 있었기 때문에 그 산 이름을 따 거북산당이라고 부른 것으로 보인다.

 

 

도당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신 당

 

경기도의 도당은 당집을 마련하고 그 안에 도당신을 섬기는데, 신위는 위패를 모시거나 무신도를 모셔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동 거북산당 안에는 도당할아버지, 도당할머니, 대왕님(염라대왕)을 모시고, 매년 음력 10월 7일에 영동시장의 번영과 안녕을 위해서 지내오던 것이다.

 

이 도당굿은 시장의 번영과 상인의 대동단결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공동체적인 삶의 필요로 창출된 굿이다. 그러나 1990년 초에 이르러서는 영동시장 번영회에서 별도로 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고, 현재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인 경기도당굿 보존회원들에 의해서 굿이 진행되지만 옛 형태는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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