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연휴를 맞이하여 쉬고 있는 차에, TV를 통해서 본 ‘나는 트로트 가수다’. 나는 가수다의 트로트 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프로는 사람을 빠져들게 만들었다. 원래 TV를 잘 보지 않는 사람이고, 더구나 연예, 오락, 드라마 등 하고는 담을 쌓고 사는지라, 그냥 채널을 돌릴까 하다가 한 번 보자고 생각을 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45년이란 긴 세월을 무대에서 살아 온 남진이라는 가수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무대였다. 무대에서 보이는 여유는 딴 가수들이 긴장을 하는 것과는 달랐다. 심수봉의 ‘비나리’를 돈스파이크가 편곡을 맡아 이국적인 냄새를 풍기는 곡으로 바꾸어 놓았는데, 잔잔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무대였다.

심수봉의 '비나리;를 부르는 남진. '나는 트로트 가수다'에서 후배들과 한 무대에 올라 연륜이 묻어나는 무대 매너를 보여주었다. (사진은 인터넷 자료) 

7명 모두가 일등인 ‘나는 트로트 가수다’

‘나는 가수다’와는 달리 1등만을 뽑는 무대였다. 경쟁을 하기는 했지만 자신이 최선을 다해 나름대로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무대였다. 그러나 무대에 임하는 가수들의 자세는, 나는 가수다를 능가하는 열정이 있었다. 트로트계를 대표한다는 하는 7명의 가수들은, 모두 편곡을 한 곡을 들고나와 나름대로의 독특한 맛을 보여주었다.

순서를 추천하였는데 앞으로 남자 4명이 먼저 노래를 하고, 뒤로 여자 3명이 이어서 부르는 바람에 더욱 긴장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가 가장 막내인 박현빈이 처음으로 무대에 올라, 그 긴장은 더했을 것이다. 박현빈은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을 불렀다. 젊고 패기가 넘치던 무대에서 선배의 노래를 편곡을 해서 부른다는 것이 부담도 되었을 텐데, 무리없이 소화를 해냈다는 생각이다.

두 번째로 무대에 오른 태진아는 고(故) 김정호의 ‘이름 모를 소녀’를 열창했다. 늘 밝고 웃음이 가시지 않는 모습을 보아왔는데, 이름 모를 소녀를 잘 소화해 낼까 염려가 되었지만, 독특한 창법으로 쏟아내는 듯한 절규를 터트렸다. 아마도 아쟁과 가야금의 완벽한 조화가 더욱 이채를 띠었던 것 같다.

노력한 만큼 즐거운 무대

세 번째로 무대에 오른 설운도는 박인수-이동원의 ‘향수’를 불렀다. 정장차림을 고수하는 설운도는 찢어진 바지를 입고나오는 파격적인 변신을 했다. 성악가와 함께 하는 향수는 설운도에게는 맞지 않는 노래일 듯 했지만,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만 맨 마지막 고음처리에서 조금은 불안한 듯한 것이 흠이랄까?

그리고 가수왕을 몇 번이나 차지한 남진의 무대였다. ‘명불허전’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일까? 애잔한 심수봉의 노래 ‘비나리’가 새로운 형태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여유와 관록이 묻어나는 무대매너. 괜히 남진이 아니었다. 딴 가수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음을 토해내었다면, 남진은 어구시틱 기타에 맞추어 폐부 깊숙한 곳에서 울려나오는 공명통이었다. 듣는 사람의 마음도 함께 흔들 수 있는 그런 남진의 노래, 젊은 후배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는 것도 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파격적인 변신은 놀랍고도 즐거워

남자가수들의 차례가 끝나고 제일먼저 문희옥이 무대에 올랐다. 문희옥은 ‘노바디’를 새롭게 편곡을 해 무대에 올렸으며, 방청색에서는 환호가 터져나왔다. 트로트 가수가 노바디를, 그것도 춤을 추면서 불렀기 때문이다. 가히 파격적인 변신이었다.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모니터 화면을 통해 그것을 보는 동료가수들까지도 놀랄 정도의 변신이었다.

사회를 맡아 진행을 하던 장윤정은 부활의 ‘네버 앤딩 스토리’를 불렀다. 트로트 창법과는 전혀 다른 창법을 어떻게 표현을 할지가 궁금했다. 본인도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음이 길어지면 떠림현상이 나타나는 트로트 창법으로 돌아간다고. 하지만 격정의 무대였다. 너무나 격한 감정이 격해서인가, 중간에 약간은 심한 요성음이 흠이라면 흠이다.

7명 중에 가장 오랜 시간을 기다리다 무대에 오른 김수희. 임재범의 ‘너를 위해’로 무대에 올랐다. 저음 아쟁의 굵직한 소리를 깔고 노래가 시작한다. 처음에는 음악소리에 묻혀 조금은 신경을 쓰이게 만든다. 하지만 김수희 특유의 터져 나오는 창법으로 그 모든 것을 감싸 안는다. 마지막에는 감정에 지나치게 몰입을 한 탓인지, 눈물이 맺히는 듯하다.

7명 전원에게 봉투가 돌아갔다. 그 중 함 명만이 ‘1등’이라는 글이 써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쓴 종이가 들어있다. 하지만 공연을 마치고나서 알 만한 사람들은 누가 1등을 할 것인지를 이미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요즈음 아이돌 가수 같지 않은 트로트 가수들이다. 무대에서 십수 년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누구에게 1등을 주어야할지 먼저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1위를 차지한 남진은 ‘후배들 앞에서 부끄럽다’며 ‘더 열심히 하라는 말로 알겠다’며 겸손하게 소감을 전했다. 후배들도 자랑스런 선배에게 박수로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이날 ‘나는 트로트 가수다’의 무대에 오른 7명 모두가 일등인 무대였다. 그리고 이런 무대가 앞으로 더 많이 이루어져, 진정한 가수가 무엇인지를 사람들이 알아야한다. 정말 노래가 무엇인지를 알려준 무대. ‘나는 트로트 가수다’에 출연한 7명 모두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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