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바라보고 서있는 관동팔경 청간정에 오르다

 

실로 100여일 만에 갖는 여유로움이다. 징검다리 연휴가 시작되는 29일 여주도자기축제장을 찾아 지인을 만난 후, 바로 우리나라 최북단이라는 고성군으로 향했다. 고성군 현내면 산학리에 지난해 조성하다 완성을 하지 못한 마애불을 올해는 어떻게 해서라도 제 모습으로 조성해 놓고 싶어서이다.

 

속초 시내를 접어드니 꼼짝할 수가 없다. 징검다리 연휴로 인해 전국각처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도대체 차를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속초시에서 볼 일을 포기하고 고성으로 향했다. 고성으로 가는 도중 관동팔경의 한 곳이라는 청간정을 들려볼 생각에서 서둘러 길을 잡았다. 청간정에도 모인 사람들도 여느 때와는 다르다. 그 동안 몇 번이고 이 정자를 찾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

 

청간정은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에 소재한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어 있는 청간정은, 조선조 명종 15년인 1560년에 군수 최천이 크게 수리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청간정은 고종 18년인 1881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28년 면장 김용집의 발의로 현재의 정자로 재건하였으나 한국전쟁 당시 전화를 입어 다시 보수하였다고 한다.

 

 

관동팔경의 한 곳으로 일출명소가 된 청간정

 

현재 청간정은 관동8경 중 한 곳이요, 설악일출 8경의 한 곳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천천히 청간정으로 오르는 계단을 오른다. 벌서 이곳을 몇 번이고 들렸지만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다. 주변정리를 말끔하게 해놓고 산책로까지 만들어놓았다. 관람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좋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조금 어수선해도 옛 정취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 변화가 오히려 버겁게 느껴진다.

 

요즈음 어느 곳을 가던지 관광자원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인위적으로 바꾸어 놓는 작업을 한다. 하지만 그런 작업이 과연 꼭 필요한 것일까? 자연은 자연 그대로일 때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해가 가질 않는다. 자꾸만 바뀌고 달라지는 모습이 오히려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런 나를 보고 세상에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하는 지인들도 있지만, 워낙 속이 좁은 것인지 이해심이 부족한 것인지 몰라도 난 있는 그대로가 좋다. 그저 파도소리도 예전 그대로요, 바람소리도 예전 그대로이다. 청간정 엎에 숲은 이루고 있는 산죽나무가 바람에 잎을 부딪치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예전 그대로이다.

 

어디 그것뿐이랴 청간정을 오르는 길에 만나는 노송들의 모습도 예전 그대로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사람들이 편하게 관람을 할 수 있도록 산책로를 내고, 바닥을 돌로 깔아 비가 내리는 날에도 질척거리지 않게 만들었을 뿐인데 왜 눈에 거슬리는 것일까? 울퉁불퉁 발바닥이 아프던 길이 가지런하게 바뀌었으면 오히려 반가워야 할 텐데, 나는 그것마저 부담스럽다. 흙냄새, 풀냄새가 없어져서인지, 아니면 잘 정리된 주변환경이 갑자기 낯설어서인지 모르겠다.

 

 

“아저씨, 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청간정은 정자라고 하기보다는 누각이다. 중충으로 꾸며진 청간정의 원래 모습은 어땠을까? 도대체 감이 오질 않는다. 이 아름다운 동해안 바닷가에 지어진 정자. 이 청간정에 올라 시인묵객들은 어떤 노래를 한 것일까? 1953년 5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지시로 정자를 보수 하였다고 하는 청간정. 현재 청간정 전면에 게시된 현판도 이 전대통령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그 뒤 1980년 8월 최규하 전 대통령이 동해안 순시를 할 때 풍우로 훼손되고 퇴색한 정자를 보수토록 지시해, 동년 10월 1일 착공하여 다음해 4월 22일에 준공을 보았다고 하는 청간정. 당시 공사비 1억3천만원으로 정자를 완전히 해체하여 새로 건립하였다고 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인 청간정은 초석은 민흘림이 있는 8각 석주로 사용하였다.

 

 

2층 누각으로 오르는 계단을 오른다. 정자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해안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느라 시끄럽다. 먼 곳에서 이곳을 찾아온 듯 40~50대 여인 몇 명이 이야기를 하느라 소란을 피우더니 “아저씨, 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라면서 휴대폰을 내민다. 누구에게든지 부탁하면 들어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듯한 당당함이다.

 

문화재 답사를 다니면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이다. 자신들끼리 돌아가며 찍어도 될 텐데, 한 사람이라고 빠지면 안되는가 보다. 카메라를 받아 동해안을 배경으로 사진 몇 장을 촬영해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확인을 하더니 “사진 잘 나왔네”라면서 정자를 떠나버린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다. 그런 말을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예의도 없고 고마움도 모른다는 것이 더 화가 치민다.

 

이 아름다운 경관에 노여움이라니?

 

한무리의 사람들이 떠나간 청간정에 순간 적막이 찾아든다. 앞에 바라다 보이는 동해의 파도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그 소리를 듣고 싶어 찾아온 곳이 아니던가? 저 아름다움 때문에 이곳을 관동팔경이라고 했을까? 순간 노여움이 눈 녹듯 사그라진다. 이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며 노여움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

 

벌써 14~15년은 지났나보다. 동해안 7번국도로 따라 관동팔경 답사를 떠난 적이 있다. 3박 4일을 쉬지 않고 달려 관동팔경에 속해있는 정자를 모두 돌아보았다. 그 때 만났던 정자들이 아직 눈에 선하다. 청간정을 못 잊는 것은 바로 관동팔경 중 한 곳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그 경치가 빼어나 ‘수일경’이라 부르지 않았는가?

 

이 정자를 떠나면 혹 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파도소리, 바람소리, 대나무 잎 소리를 꼼꼼히 기억해낸다. 정자를 돌아 나오는 길에 만나는 노송들의 모습까지 일일이 기억한다. 언제 또 다시 이곳을 들릴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달라지는 주변환경 때문에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 또 다른 모습이 되어있지는 않을지 그도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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