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975에 소재한 백장암. 백장암은 남원 실상사의 부속 암자이다. 실상사는 백장암은 천왕봉의 서쪽 분지에 있는 절로, 통일신라 흥덕왕 3년인 828년 증각대사(일명 홍척국사)가 선종9산 중 실상산문을 열면서 창건하였다. 절 안의 백장암 남쪽 밑으로 울타리를 마련하여 몇 점의 유물을 보호하고 있는데, 석등은 국보 제10호인 백장암 삼층석탑과 함께 있다.

 

석등은 일반적으로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밑에 3단의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는데, 이 석등은 받침의 기단석은 땅속에 묻혀있는 상태이다. 받침은 가운데에 8각의 기둥을 두고, 아래와 윗받침돌에는 한 겹으로 된 8장의 연꽃잎을 대칭적으로 새겼다. 큼지막하게 새긴 연꽃잎은 아직도 옛 모습 그대로 보존이 되어있다.

 

간결하게 처리한 화사석

 

보물 제40호인 백장암 석등의 화사석은 8각형으로 네 면에 창을 뚫어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하였다. 지붕돌은 간결하게 처리하였고, 그 위의 머리장식으로는 연꽁봉오리 모양의 장식인 보주가 큼지막하게 올려져 있다. 각 부분에 새긴 세부적 조각수법으로 미루어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짐작된다.

 

 

전체 높이가 2.5m인 백장암 석등은 조각을 한 기법 등으로 보아 곁에 함께 서 있는 국보 제10호인 석탑과 동일한 시기에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백장암은 실상사로 가는 길 좌측으로 난 산길로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만날 수가 있다. 11월 말이라고 해도 한 낮의 날씨는 땀이 날 정도이다.

 

하물며 구불구불 산 정상부로 향해 난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흐르는 담을 닦아내며 찾아간 백장암. 경내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석탑과 석등은 흐르는 땀을 잊을 정도로 아름답다. 도대체 이렇게 높은 곳이 있는 절집에,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석조물을 조성할 수가 잇엇을까?

 

 

뛰어난 석조각 눈에 현란해

 

국보인 백장암 석탑이야 말할 필요가 없다. 그 아름다움이란 사람이 조각을 했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 국보 옆에 서 있는 석등 역시 단출하지만 품위를 지키고 있다. 보주의 조각 아래 지붕돌의 날렵한 처마는 한옥의 고운 처마 선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그 밑에 4개의 창을 낸 화사석 역시 보기에도 반듯하다.

 

화사석을 받치고 있는 위 받침돌의 조각은 큼지막하게 연꽃잎을 조각하고 그 안에 술을 표현했다. 그 큼지막한 연꽃잎은 통일신라의 기상을 나타내듯 힘이 넘친다. 팔각의 기둥은 딴 석등의 간주석에 비해 조형미가 뛰어나다. 그리고 아래받침돌에 새겨진 앙련 역시 힘이 넘친다.

 

 

그저 바라다만 보아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만일 이 백장암 석등이 석탑 옆에 자리하지 않고 별개로 서 있었다고 하면 그 아름다운 힘찬 기상이 더했을 것이다. 그런 아쉬움을 두고 바라보아도 이렇듯 훌륭한 석조 예술품이다. 석탑과 석등을 돌아보고 난 뒤 경내를 한 바퀴 돌아 산 밑을 바라본다.

 

저 밑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흐르는 땀을 식혀준다. 몇 분의 선방에 있는 스님들이 포행이라도 나가는 듯 줄지어 뒷짐을 지고 걸어나간다. 어디로 나가는 것일까? 바쁜 여정만 아니라면 스님들의 뒤를 따라 산길을 걸어 포행에 동참을 하고 싶다. 늘 절집을 찾아다니면서 스님들의 포행길을 일부러 걸어보는 것도, 그렇게라도 하면 세속에서 찌든 때가 조금은 가실 것만 같아서이다. 산봉우리에 걸린 구름 한 점 미동도 하지 않는 오후 시간이다.

(두번 째 사진은 문화재청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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