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루는 6, 25 동란 개전 초기(1950, 6, 25 ~ 6, 28) 국군 제 2사단의 창설모체 부대인 제6사단 장병들이 춘천시민들과 함께, 인해전술로 파상공격을 가해오는 북괴군을 섬멸함으로써 한국전쟁 초기에 유일하게 승전보를 올린 유서 깊은 곳이다. 이 우두산 충렬탑이 있는 곳 숲속에 정자 하나가 서 있다.

 

6, 25 한국전쟁 당시 일부가 파손이 되었으나, 1969년에 수리를 한 조양루. 이 정자는 원래 이곳에 있던 것은 아니다. 조선 인조 24년인 1646년 춘천부사 엄황이 문소각을 세울 때 위봉문과 함께 지은 문루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순종 융희 2년인 1908년에 현 위치인 우두산으로 옮겨 세운 것이다.

 

 

 

누각으로 꾸민 조양루

 

조양루는 정면 3, 측면 2칸의 2층 누각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을 한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1층은 긴 돌 위에 나무 기둥을 세워 매우 높게 꾸몄으며 간결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중앙부의 두 기둥은 사각형의 기둥으로 사각형의 주춧돌 위에 세워져, 이층 바닥의 보를 받치게 하였다.

 

후면 좌측에는 계단을 놓아 누각 위로 오를 수 있도록 하였으며, 양 측면은 만룻보에서 초석 상면까지 2단의 띠방을 두고 판장벽으로 막았다. 초익공 형태의 건물로 소박하게 지어진 조양루는 현재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강원도 전 지역을 다니면서 정자를 찾아보고 있는 나로서는 동해안 바닷길에서 만나는 정자는 그 나름대로의 풍광을 자랑하고 있고, 내륙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정자들로 나름대로의 멋을 풍긴다. 조양루도 그 중 한 곳이다.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멋을 풍기고 있는 조양루. 전쟁의 상흔을 입었으면서도, 그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고맙기만 하다.

 

 

 

다시 찾아가보고 싶은 조양루

 

춘천시 우두동에 자리하고 있는 조양루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누각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현판의 글씨는 민형식이 썼다고 전하는데, 글을 쓴 이의 휘호 등이 남아있지 않아 적확한 것은 알기 어렵다. 민형식은 일제 강점기의 조선 귀족이다.

 

민형식은 여흥 민씨 척족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이며, 소문난 갑부였던 민영휘에게 정실 자손이 없자 양자로 들어갔다. 1891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평안도 관찰사를 역임하였고, 1904년 일본을 시찰하기도 했다. 귀국 후 법부와 학부에서 협판을 지냈다. 1907년 학부협판으로 재직할 때 나철이 주모한 을사오적 암살 미수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민형식은 이때 나철과 오기호 등에게 거액의 자금을 대어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실이 적발되어 유배되었다가 특사로 풀려났다.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참의를 지냈고, 1936715일 자신의 아버지였던 민영휘가 받은 자작 작위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신민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민족운동에 기부금을 희사하는 양면적인 모습도 보였다.

 

양아버지 민영휘와는 기질이 매우 달라, 어려운 사람 돕기를 좋아하며 의를 숭상하는 인물이었다는 평이 있다. 조양루라는 글씨를 쓴 민영식은 김정희의 필법을 이어받은 글씨에도 능하여, 손꼽히는 서화가로 불렸다고 전한다. 녹음이 욱어질 때 다시 한 번 조양루를 찾아 보리라 마음을 먹는 것은 그 주변의 풍광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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