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많은 문화재 중에서 탑, 범종 등 불교 문화재를 보면, 비천인이라는 조각이 보인다. 비천인은 범종이나 석탑, 부도나 법당의 단청 등에 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흔히 비천, 비천인, 천인 등으로 불리는 이 선인은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며, 부처님의 내력을 칭송하는 천인의 일종이다.

하늘거리는 의상을 입고 양 팔뚝에 표대 또는 박대라고 하는 긴 띠를 걸치고, 하늘을 나는 듯한 모습으로 표현이 된 비천. 아름다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비천은 인도의 신화에서 나오는 건달바와 긴나라에서 유래한다. 건달바는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오직 향을 살라 몸에서 향기를 발산한다고 하여 ‘향음신(香音神)’으로 불린다. 이 비천의 유래가 되는 건달바는 악(樂), 악음(樂音), 미(美), 미음(美音)의 왕이다. 긴나라 역시 천신으로 팔부신중의 하나로 천악신과 가악신이다.

국보 제35호 구례 화엄사 사사자삼충석탑

아름다운 비천의 최고는 무엇인가?

손목에 두른 표대가 머리 위에서 나부끼며 허공을 나르는 이동수단이 된 비천. 중국 등으로 전해진 아름다운 비천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삼국시대인 4세기 말이다. 한국에 전해진 이 비천은 나름대로의 미적 감각을 통해 좀 더 여성스러운 모습으로 표현이 되었다. 우리나라에 전해진 비천의 초기 흔적은 고구려 고분 등에서 그 모습이 보이며, 상원사 동종에서 그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신라 성덕왕 24년인 725년에 제작된 국보 제36호 상원사 동종에는 종 몸체의 넓은 띠와 사각형의 유곽을 구슬 장식으로 테두리를 하고, 그 안쪽에 덩굴을 새긴 다음 드문드문 몇 구의 공후와 생 등을 연주하는 주악상을 두었다. 네 곳의 유곽 안에는 연꽃 모양의 유두를 9개씩 두고, 그 밑으로 마주보는 두 곳에는 구름 위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을 새겼다.

국보 제35호 사사자삼층석탑 기단에 새겨진 비천인상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에 새긴 비천인

문화재 답사를 시작한지 30년이 지났다. 그렇게 단순히 ‘좋다’ ‘아름답다’라고 생각하던 문화재들이 언제부터인가 마음속의 눈으로 읽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생명이 없던 돌과 쇠붙이 등에 온기가 느껴졌다. 조금씩 다가오는 아름다움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이 달라졌는가는 모르지만, 마음으로 대화를 시작한 것이다.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비천인상

구례 화엄사 각황전 뒤편에 자리한 효대에는 국보 제35호인 사사자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그 삼층석탑의 기단에는 주악천인과 공양상이 한 면에 3구씩 모두 12명의 천인이 새겨져 있다. 신라 선덕여왕 14년인 645년 자장율사가 조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 삼층석탑은, 부처님의 진신사리 73과가 봉안되어 있는 적멸보궁이기도 하다.

화엄사를 찾아가는 것은 바로 이 사사자삼층석탑에 새겨진 비천인 때문이다. 그 아름다움에 빠져 벌써 몇 번을 화엄사로 향했다. 절 안을 한 바퀴 돌아본 다음에는 효대에 올라 한참을 보내고는 한다. 기단에 새겨진 비천인의 모습. 표대를 날리며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며,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물을 두 손으로 받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벅차다.


 


 

춤을 추고 있는 비천인상

단지 어떤 기대감이 아니다. 한참이나 그 천인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도 어느새 손목에 표대를 감고 하늘을 날기도 한다. 남들은 이렇게 삼층석탑 앞에 앉아 자리를 뜰 줄 모르는 나를 보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에 빠져 그곳을 떠나기가 싫을 뿐이다. 어찌 저 아름다움을 찌들어버린 세상에 견줄 것인가?

악기를 부는 천인의 표대는 바람에 날려 하늘로 오르고, 두 손에 공손이 받친 공양물은 부처의 덕을 칭송한다. 그 고마움에 화답이라도 하듯 춤을 추고 있는 천인들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하늘로 솟구쳐 오를 것만 같다. 어찌 돌에 새겨진 조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아름다움을 글로 표현하려는 것이 바보스러움이다. 그 아름다움에 빠져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는 발길. 어찌 보면 나도 천인이 되고 싶은가 보다.

공양물을 올리고 있는 천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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