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군 점동면 흔암리는 역사가 깊은 마을이다. 이 마을은 예로부터 줄다리기를 하고 난 뒤, 줄에 액송기를 꽂아 마을 뒤편에 흐르는 남한강에 갖다 놓는다. 정월 대보름 줄다리기를 할 때는 남한강이 꽁꽁 얼어 얼음 위에 줄을 올려놓게 되는데, 얼음이 녹으면 이 줄이 물에 가라앉아 수많은 물고기들의 산란처가 되기도 한다. 이 흔암리에는 선사주거지가 있다. 모두 16채의 집터가 발굴이 되었는데, 남한강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 구릉에 자리하고 있다.

 

남한강가의 집단 선사주거지

 

흔암리 선사유적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60년대에 김원룡에 의해서다. 그 후 서울대박물관 고고학조사단이 1972년도부터 매년 발굴을 실시한 결과, 모두 20여기에 가까운 움집터를 확인하였고 다수의 유물과 탄화곡물을 발견하였다. 집 자리가 확인된 곳은 마을 뒤편을 흐르는 남한강에서 300여m 정도 떨어진 곳으로, 남북으로 길게 뻗은 표고 123m의 산정상부 지점으로 유적은 이 산 경사면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이 선사유적지의 발굴에서 출토된 토기는 구멍무늬토기,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 등이 있다. 민무늬 토기에는 화분형, 사발, 단지, 짧은목 토기 등이 출토되었으며, 빗살무늬토기와 붉은 간토기 등도 상당수 발굴되었다. 석기로는 돌칼, 반달돌칼, 바퀴날도끼, 돌도끼, 돌화살촉 등이 있다. 또한 이곳에서는 농경용 연모와 함께 땅을 파 만든 저장고에서 쌀, 보리, 조, 수수 등의 곡식이 발견되었다. 이 유적에서 나온 탄화미는 늦은 연대라 하더라도 연대가 최소한 기원전 7세기까지 올라가는 것들로 판명되었다.

 

▲ 재현된 움집 현재 흔암리 선사유적지의 움집들은 당시의 기둥구멍을 확인해 세운 것으로, 안에는 화덕자리 등을 꾸며놓았다.

▲ 움집 출입구 기둥구멍의 벽체가 곧바로 위로 올라간 것은, 기둥의 서까래가 땅에 땋지 않은 반 움집이었다는 것을 말한다


흔암리 유적지의 집의 형태

 

흔암리 선사유적지의 집들은 남북장축으로 풍화된 화강암반을 'ㄴ자'로 파고 지붕을 씌운 것이며, 포탄형의 특징적인 화덕자리가 발견되었다. 주거지의 내부시설에는 화덕자리, 간단한 저장구덩이, 기둥구멍 및 출입구 등이 있다. 움집의 구조는 평면은 긴 네모꼴이며 가장 큰 집터는 길이 10m, 너비 4.2m로 나타나 상당히 큰 편이다. 이렇게 큰 집이 있었다는 것은 당시에도 집단주거지의 주축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현재 흔암리 선사유적지의 움집들은 당시의 기둥구멍을 확인해 세운 것으로, 안에는 화덕자리 등을 꾸며놓았다. 발굴 당시 나타난 움집들은 움의 깊이가 조금씩 차이가 있었으며, 같은 집터에서도 4벽이 서로 다르고 기둥구멍의 벽체가 곧바로 위로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기둥의 서까래가 땅에 땋지 않은 반 움집이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곳에서 출토된 연모 중에서 그물추가 있었다는 것은 흔암리 선사유적지의 생활에서 농경을 주로 했지만, 뒤편을 흐르는 남한강에서 물고기를 잡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 화덕자리 움집 안에는 화덕자리를 재현해 놓았다. 발굴 당시에는 이 화덕자리에서 숯이 발견되기도 했다.

 
▲ 남한강 흔암리 선사유적지에서 300m 정도 떨어져 있는 남한강. 이곳에서 물고기도 잡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재현된 선사유적지 아쉬움이 남아

 

흔암리 선사유적지는 마을회관을 기점으로 양편으로 오를 수가 있다. 마을회관 앞에서 좌측 길로 들어서면 전신주에 '흔암리 선사유적 150m'라는 이정표가 걸려있다. 그런데 불과 10m 정도를 안으로 들어갔는데, 이곳에는 흔암리 선사유적 80m'라는 이정표를 걸어 놓았다. 도대체 이해가 가질 않는 이정표다. 이런 안내판이 보일 때마다 화가 치미는 것은, 우리 문화재에 대해 관계부서에서 얼마나 무관심한가를 보이는 것이란 생각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정표 하나도 확인하지 않은 문화재보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 안내판1 선사유적지가 150m 전방에 있음을 알려준다
ⓒ 하성

▲ 안내판2 불과 10m 정도를 안으로 들어갔는데 80m 라는 이정표가 걸려있다. 사소한것 하나도 확인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한 곳의 입구는 마을회관 우측 길로 남한강 방향으로 가다가 보면, 석비가 서 있는 곳으로 오를 수가 있다. 얼핏 생각을 해보아도 두 개의 거리가 맞지 않는 이정표 중 하나는, 이곳에 있어야 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 주거지 석비 선사주거지를 알리는 석비는 남한강 방향으로 나가는 곳에 있다.

 

펜스로 둘러놓은 선사유적지는 현재 5동정도의 움집을 재현해 놓았다. 안으로 들어가면 화덕자리만 하나씩 만들어 놓았다. 이곳에서 발견된 토기나 연모 등을 모조품이라도 놓아두었다면 좋았을 것을. 돌아보면서 아쉬움이 남는다.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을 때 볼 것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한 움집에는 누군가가 술을 마시고 빈병과 쓰레기를 버리고 갔다. 한 마디로 문화재의 관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 쓰레기 누군가 이곳에서 술을 마시고 쓰레기를 버려놓았다. 문화재의 관리소홀의 한 단면이다.

 

현재 경기도 기념물 제155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흔암리 선사유적지. 우리의 농경문화와 더불어 강가를 주거지를 삼은 취락구조를 알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치고는 너무나 볼품없이 재현이 되었다는 생각이다.(출처 : 오마이뉴스 / 2010,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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