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 이동면 서리 백자요지까지 찾아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로 6(상갈동)에 소재한 경기도박물관. 한 때는 이곳을 매주 드나들던 때도 있었다. 모 무형문화재 단체를 관리하면서 이곳 공연마당에서 매주 공연을 이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랬던 곳을 일부러 찾아간다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그만큼 사는 것이 바쁜지, 아니면 문화재에 대한 열망이 식어서인지 모르겠다.

 

지난 22일 경기도박물관을 찾았지만 아침부터 비가 내린 날이라 카메라를 소지하고 찾아가질 못했다. 날이 궂으면 민감하게 반응하는 카메라 때문에 아무래도 행동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6일 다시 찾아간 경기도박물관. 이곳을 찾아가면 평소 내가 좋아하던 장승이며 탑비, 고인돌, 초상 등 많은 문화유적의 진본 및 모형을 만날 수 있어 즐겁다.

 

하지만 이번에 경기도박물관은 찾은 것은 용인시 서리 백자요지에 관한 내용을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물론 나는 도자에 대해서 잘 모른다. 하지만 주변에 많은 지인들이 도공들이고 그들에게 들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공부도 할 겸 경기도박물관과 용인시 이동면 중덕로7(서리 산23-1)에 소재한 사적 제329호 용인서리 백자가마요지를 돌아보기 위해서이다.

 

 

광교산 창성사지가 가마터를 돌아보게 된 이유

 

예전에는 곳곳에 가마터가 있었다. 사찰 등에서는 사찰 한편에 가마를 만들어 그곳에서 직접 기와 등을 구워내 절을 짓는데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동안 여기저기 다니면서 꽤 많은 가마터를 만나고 다녔지만 그 중 가장 큰 가마터가 바로 용인시 이동면에 소재한 서리백자요지라는 것이다.

 

사실 가마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86년 수원시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됐다가 31년 만에 경기도 기념물로 승격된 장안구 상광교동 산41에 소재한 창성사지를 돌이보고 난 후부터이다. 이곳을 찾아갔을 때 유난히 많은 와편과 도자조각들을 보면서이다. 수원시는 한신대박물관과 함께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창성사지 발굴조사를 했으며 지난해 12월 수원화성박물관에서 고고학과 문헌을 통해 본 수원 창성사지의 역사적 가치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연구원들은 고려말 진각국사 천희의 탑비가 있었던 터를 확인했고 중심 건물과 부속 건물터, 고급 청자와 백자 등 많은 유물을 발굴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더욱 경기도박물관 2층 전시실에서 만난 서리백자요지의 모형을 보고나서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는 직접 가마터를 돌아보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이다. 서리가마는 벽돌로 된 가마와 진흙으로 지은 가마가 확인되었는데, 벽돌가마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고 진흙가마는 길이 83m의 대형가마로 출입구가 27개나 확인되었다고 한다.

 

더욱 이 가마터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가마터로는 가장 큰 대형가마이고 서리 백자요지를 찾아가면 옛 가마모형을 알아볼 수 있다는 말에 한 번에 돌아보리라 미음 먹고 길을 나선 것이다. 날은 바람이 불고 쌀쌀한데 가마터를 찾아가는 길도 쉽지 않았다. 몇 번이고 남의 집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다가 지청구를 듣기도 했다.

 

 

광교산에도 가마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용인은 일찍부터 요업이 발달한 지역으로 <세종실록지리지>에 영인에 도기소와 자기소가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 전기부터 조선시대 말기까지의 가마터 72기가 용인시 전역에 걸쳐 분포하고 있었으며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에는 19개소의 가마터가 분포하고 있는데 서리일대의 중덕 가마터와 호암미술관 근처의 상반 가마터 등 여러 곳의 가마터가 발견되어 이 지역이 고려시대 백자 생산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가마터의 출토물로는 백자가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초기의 해무리굽 청자완층이 발견되어 이곳에서 고려청자의 생산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가마터의 발견으로 인해 고려청자가 10세기 후반에 생산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가마터가 놓였던 자리에는 많은 자기편들이 보인다.

 

우리나라 청자와 백자를 주도했던 용인시. 하지만 현재 용인은 우리 도자사에 기록될 만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세계도자축제 등에서는 빠져있어 안타깝다. 수원 창성사지에서도 많은 고급 청자와 백자 등이 발굴되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89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하는 이곳 광교산 어디엔가 가마터가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년 날이 풀리기를 기다려 광교산 일대를 돌며 가마터를 한 번 찾아보아야겠다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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