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 오후, 서장대에 올랐다. 늘 돌아보는 화성이다.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화성 때문에 어쩌면 수원을 잊지 못하는가 보다. 서장대에서 화서문을 돌아 돌아오는 길에, 장안동 화서문로로 접어들었다. 이 길은 항상 보는 느끼는 것이지만 유난히 신령을 모시는 사람들이 많은 골목이다.

 

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신령을 모시고 남을 위한 일을 할 수만 있다면 좋을 것이란 생각을 하고 지나는 길이다. 무속에 대한 책을 십여 권을 쓰고, 방송 일을 할 때도 무속에 대한 프로그램만 만들었기 때문인가 보다. 그런데 딴 집과는 달리 낯선 간판이 하나 보인다. ‘칠성궁 제석당’이란다.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터라, 무조건 올라가 문을 두드렸다.

 

 

새내기 제자 칠성궁 제석당

 

문 앞에는 ‘새 신제자’란 글이 보인다. 30세쯤 됐을까? 잠깐 소개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무속인들은 신을 모신 곳을 ‘전안’이라고 한다. 그 신당부터가 딴 집에서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흔히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울긋불긋한 무신도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정갈하니 글로 써서 신령들을 모셨다. 그 앞으로는 산신, 용왕, 대신할머니의 상이 좌정하고 있다.

 

붉은 색을 띤 조명도 없다. 대신 신상 앞으로는 축원카드가 나란히 놓여있다. 아마도 축원중인 신도들인 모양이다. 한편에 놓인 점상에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든지, 책상 위에 종이와 연필 등이 놓여있다. 수원시 장안구 315-2, 3층에 마련된 황인애(가명, 여, 30세)를 그렇게 만났다. 이제 겨우 전안을 차려놓은 지 1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단다.

 

 

 

신병으로 인해 술로 보낸 20대

 

전안에서 만난 황인애에게 내림을 하기 전에 어떤 무병(巫病)을 앓았느냐고 물었다.

 

“23세 정도 되었는데 이상해지기 시작했어요. 평소에 입에도 못 대던 술을 무지하게 먹어댔죠. 그러다가 보니 직장생활을 하면서 조그마한 가게라도 열 생각으로 열심히 모아두었던 돈을 다 탕진하고 말았어요. 이상하게 몸이 아픈데 딱히 병명도 나오지 않고요. 무릎에 물이 잡히고 십자인대가 다 망가졌다는 거예요. 수술을 해도 걸을 수는 있지만, 정상적인 생활은 할 수 없다고 병원에서 이야기를 하고요”

 

그래서 지인의 소개로 생전 처음 점집을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무병이니 신령을 모셔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 그러나 선뜻 그런 것에 동조를 할 수가 없어 많은 고민을 했다.

 

“밤에 잠을 자려고 하는데 몸에 진동이 와서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왜 소변을 보고나면 몸서리를 치잖아요. 그것보다 훨씬 강도가 높은 떨림이 오기 시작하더니, 그 떨리는 시간이 멀지 않고 매초마다 그런 현상이 일어났어요. 잠을 못자 무섭기도 하고 밤새 울었죠.”

 

그렇게 변해버린 자신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저것이 날마다 술을 먹더니 미쳤다’고 수군거리기도 했단다. 일 년 간을 그렇게 보내면서 날마다 꿈을 꾸었는데, 그 꿈조차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는 황당한 것이었다고.

 

“정말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저수지에 마네킹이 빠졌는데 건져놓으면 사람이 되거나, 제가 산에 배를 타고 올라가거나, 애들이 옷을 사들고 집으로 찾아오거나 하는 꿈을 꾸었어요. 또 모르는 남자들이 집안으로 들어와 놀래기도 하고요. 집에 가만히 있으면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아니면 밤새 여자들의 노래소리가 들리기도 하고요”

 

 

 

이런 이야기로 미루어 황인애는 이미 자연통신이 된 상태에서, 3년 전에 내림굿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내림굿을 받고 난 후, 수술을 하지 않으면 고칠 수 없다는 다리가 아픈 것이 말끔히 나았다는 것이다.

 

“가리를 잡고 나서 관악산을 여럿이서 갔는데, 그 꼭대기를 도저히 올라갈 엄두가 나질 않았죠. 몇 발만 걸어도 무릎 통증이 심했거든요. 그런데 몇 발 옮겨보니 다리가 하나도 안 아픈 거예요. 그래서 동행을 한 사람들에게 먼저 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단박에 정상까지 올라갔죠. 참 지금 생각해도 신병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인지 몰랐어요.”

 

‘타인능해’가 되고 싶다는 그녀, 무당이라 상처도 받아

 

내림을 받고 일 년 동안은 선생을 따라 산천을 찾아다니면서 허궁 기도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해에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았다.

 

 

 

“올 6월에는 채널 A라는 TV에 출연도 하면서 손님들이 많이 찾아 왔어요. 덕분에 생활이 조금 여유로워지고요. 그래서 모인 쌀을 갖고 경로당을 찾아갔는데 필요없다고 가져가래요. 아마도 제가 무당이라 그런 것 같아요”

 

그런 상처를 받기도 했단다. 생활에 꼭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어서 도울 생각을 했지만, 돈을 달라고 하는 바람에 돌아오고 말았다고.

 

“전남 구례 운조루에 가면 타인능해라는 쌀독이 있어요. 저는 그렇게 없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나누고 싶어요. 그리고 돈이 조금 모이면, 공부를 하고 싶지만 돈이 없어 공부를 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려고요. 제가 신령들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젠 그것을 없는 사람들에게 돌려주기도 해야죠.”

 

생각하는 마음이 착하다. 팔달산을 한 바퀴 돌아보겠다고 일어서는 그녀를 보면서 세상엔 참 별별 사람이 다 있지만, 그래도 스스로에게 늘 착하게 살 것을 요구한다는 그녀의 생각에 고마움을 느낀다.


 

 타인능해(他人能解) 
'모든 사람이 열게해 주위에 굶주린 사람이 없게하라' 라는 뜻.

조선시대 영조때 류이주 선생은 자신의 가옥 '운조루' 안 뒤주에 구멍을 내고 마개에'他人能解' 라는 글귀를 써두어 가난한 이웃에게 쌀을 꺼내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우리네 조상들의 나눔의 삶, 베품의 정신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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