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사람 위해 비용도 받지 않고 굿판 벌이는 무녀

 

30년이 넘는 세월을 굿을 보고 다녔다. 그동안 찾아다닌 전꾸의 굿판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내가 모르면 유명한 무당이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수많은 문화재 예능보유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굿을 하는 현장에서 만났다. 그동안 많은 책을 썼지만 그 중 절반이 무속과 민속에 관한 책들이다.

 

그런 나를 보고 우리 문화재에 미친 사람이라고 말한다. ‘삶은 미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로서는 그런 미친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불쾌하지 않다. 한 분야에 그만큼 많은 것을 보고 듣다보면 나름대로 전문가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름대로 많은 것을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루아침에 무너트리는 굿판을 만났다.

 

 

2,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송라리 396에 소재한 송라민속공연장’(예전에는 굿당이라 부르던 것을 지금은 민속공연장으로 등록을 하고 굿 행위를 한다)을 찾았다. 이날 김춘복 무녀(수원시 권선구 세류동 거주)21번째 진적굿을 드린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김춘복 무녀는 2대째 전해지는 무속인의 집안이다. 그리고 현재도 자매가 무업(巫業)을 하고 있는 특별한 내력을 갖고 있다.

 

여러분들이 잘 모르시겠지만 저희는 어머니 아버지 때부터 무업과 관계를 맺었어요. 그리고 이 자리에서 함께 굿을 하는 큰언니(김춘례 무녀)와 제가 함께 제자의 길을 걷고 있죠. 남들은 힘들겠다고 하지만 저희는 즐거워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으니까요

 

 

굿판에 모인 다양한 사람들

 

김춘복 무녀는 스스로 자매가 함께 무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말을 한다. 올해 21번 째 진적굿을 드리는 김촌복 무녀는 내림을 받은 지 21년째이다. 매년 빠트리지 않고 자신이 섬기는 신령들과 자신을 믿고 찾아오는 단골(신도)들을 위한 진적굿을 해오고 있다. 이날 진적굿판에 참석한 신도들은 멀리는 부산, 대구, 충청남도 부여, 강원도 인제에서도 찾아왔다.

 

오늘 이렇게 먼 길을 달려 찾아오신 많은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진적굿은 신령님들과 여러분을 위해 마련한 굿판입니다. 오늘 여기 오신 분들은 모두 복을 많이 받아 가셔야 합니다. 여러분을 위해 진적굿을 준비한 것이나까요

 

김춘복 무녀는 굿거리마다 일일이 굿판을 찾아온 신도들에게 설명한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굿판을 찾아다녔지만 이렇게 신도들을 알뜰하게 챙기는 제자를 본적이 없다. 굿을 시작하기 전 김춘복 무녀는 오늘 이 굿당 전체를 세를 얻었어요. 제가 모시는 신령님들과 우리 신도들을 위해 굿을 하는데 정신없이 딴 방에서 시끄럽게 굴면 안 되니까요라고 말했다.

 

 

김춘복 무녀는 진적굿판에 모인 신도들에게 굿을 함께 진행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 분은 저희 큰언니라고 소개를 드렸고요. 장구를 치시는 분은 전직 모방송국 탤런트 공채에 뽑혀 드라마 등에 출연도 한 분입니다. 그 옆에 징을 치시는 분도 탤런트 공채에 뽑혀 광고에 출연도 하시고 현재도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이 두 분은 부부사이고요라고 소개를 한다.

 

굿판에 모인 사람들은 전국에서 모였다. 그리고 전직이나 현직 등 직업도 다양하다. 그렇게 굿을 하는 동안 잠시 쉬고 있는 시간에 김춘복 무녀가 밖으로 달려 나간다. “오늘 시간이 없어 못 온다고 하더니 어떻게 왔어?” 들어오는 사람을 보니 TV등에서 자주 보던 개그맨이다.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과 직업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모인 굿판, 그래서 더 기대가 된다.

 

 

굿의 정석은 없다. 오직 신령이 요구하는 대로 하는 것이 굿이다.

 

그런데 굿이 그동안 내가 보아왔던 지역적 특색을 갖고 있던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굿과는 다르다. 한 마디로 정석이 없다. 궁금하다. 굿을 배우지 않은 것일까? 우리의 굿은 지역마다 특징이 있는데 이날 김춘복 무녀의 진적굿은 경기굿과 황해도굿, 그리고 충청도 앉은굿까지 모두 섞여있다.

 

저도 굿을 배우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그런데 굳이 제자가 정해진 굿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꼈죠. 제자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신도들을 위해서 굿을 하고 치성을 드리는 것이죠. 굿을 어떻게 하는 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굿을 해서 신도들이 덕을 보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기본적인 굿을 배운 후에 신령님이 시키는 대로 굿을 하게 되었죠

 

 

이날 김춘복 무녀의 진적굿은 굿판을 정화시키는 주당물림으로 시작해 굿판과 신도들의 부정을 가시게 하는 부정굿, 상산, 신장, 대감, 무감, 천궁맞이, 뒷전 등으로 이어졌다. 오후 8시까지 굿을 한 후에는 김춘복 무녀가 신도들에게 일일이 신탁이라는 공수를 준 다음 내일이 월요일이니 집이 먼 분들은 다들 먼저 가세요.”라고 한다. 그래도 20여명의 신도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날 굿의 특징은 진적굿이라는 큰 굿을 하는데도 악사들이 초빙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굿거리를 진행하는 무녀들도 특별한 굿의 절차를 중시하기보다는 신도들에게 일일이 신탁인 공수를 주는 것에 집중한다. 김춘복 무녀의 말대로 멀리서 이 산골짜기까지 찾아오신 단골들이 왜 왔겠어요. 세상살이가 힘드니까 왔겠죠. 그들에게 나쁜 말하면 안 되죠. 모두가 복을 받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자들이 진적굿을 하는 목적이니까요라고 한다.

 

 

전날부터 차려 시작한 김춘복 부녀의 21번째 진적굿은 오후 8시가 가까이 돼서야 모두 마쳤다. 지역적 특색이 있는 굿 행위의 정석보다는 신도들의 안녕을 위주로 굿을 진행하는 김춘복 무녀. 그동안 어려운 신도들을 위해 비용을 받지 않고 해준 굿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고 한 신도가 귀띔을 해준다. 오늘날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 참다운 마음을 가진 김춘복 무녀야말로 진정한 제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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