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은 우리 민족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날이다. 음력 정월초하루 설 명절을 지낸 사람들은 초 2일을 귀신날이라고 하며 문밖출입을 삼가고 근신하며 지낸다. 하지만 정월 초3일이 되면 정월 각종 놀이가 시작된다. 마을에서는 지신밟기 등이 시작되고 주민들이 함께 모여 단합을 다지는 척사대회(윷놀이)를 시작한다.

 

이렇게 각 마을마다 많은 민속놀이 등이 시작되는 음력 정월은 우리민족의 공동체적 놀이문화가 연희되는데, 그 놀이의 이유를 들어보면 공동체정신함양, 마을의 안녕, 개인의 초복축사 등을 주로 놀이 안에 함유하고 있으며, 풍농과 풍어를 위한 놀이도 마을마다 전해진다. 각 마을이 중요하게 여겨 음력 대보름 전까지 마치는 각종 제의식인 산신제, 서낭제, 거리제 등은 모두 정월을 잘 보내고 일 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한 방법이다.

 

올해 기해년 정월 대보름은 219일이다. 대보름 며칠 전부터 수원시의 각 구 행정복지센터들은 마을주민들과 화합을 다니고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척사대회를 열고 있다. 척사대회에는 많은 경품을 걸고 있어 주민들이 앞 다투어 척사대회가 열리는 곳으로 모여든다. 수원시의 전통시장도 상인들 간 화합을 다지고, 주변 주민들에게 전통시장을 알리는 척사대회를 열고 있다. 전통시장의 척사대회는 먹을 것이 풍성하고 상품이 많기 때문에 행정복지센터 척사대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마을과 전통시장 정월 화합 다지는 척사대회 열어

 

정월에 많이 즐기는 윷놀이는 부여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부여(夫餘)조에 다섯 가지 가축을 다섯 부락에 나누어준 뒤, 그 가축들을 경쟁적으로 번식시킬 목적에서 시작한 것이 바로 척사대회의 유래로 보기 때문이다. 윷놀이에서 `'는 돼지, `'는 개, `'은 양, `'은 소, `'는 말에 비유한다.

 

윷놀이는 <사희(柶戱)>라고도 한다. 두 사람 혹은 네 사람이 한편이 되어 대국하며, 각각 네 마리의 말을 가지고 29밭이 있는 윷판을 쓴다. 윷놀이는 윷가락을 던져 도, , , , 모로 구분 지으며, 그 시원을 이익의 <성호사설> 사희조(柶戱條)에서 윷놀이를 고려의 유속(遺俗)으로 본다.”고 하였다.

 

상원일(上元日)’이라고 하는 정월 대보름은 일 년 열두 달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이는 설날을 그 해에 가장 첫날이라고 해서 원일(元日)’이라고 한데서 기인한다. 수원 곳곳에서 열리는 척사대회는 단지 정월 하루를 주민들과 화목을 다지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척사대회에서 모인 기금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사용한다.

 

정월 대보름 놀이 달집태우기로 소원빌어

 

정월 열나흘이 되면 마을의 공터에 달집을 세운다. 대나무와 솔가지, 짚을 이용해 쌓은 달집은 보름을 맞아 농사를 짓기 전에 해충을 없애는 기능을 갖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해동(解冬=겨울을 녹인다)’의 뜻이 더 깊다. 달집태우기는 쥐불놀이와 함께 대보름을 맞이하기 전에 모든 재액을 태워버린다는 속설을 갖고 있기도 하다.

 

사람들은 라는 짚단으로 만든 것을 손에 들고 있다가 달이 뜨기를 기다려 제일먼저 달이 뜬 것을 본 사람이 망월(望月)이여를 외치면서 달집으로 달려가 불을 붙인다. 달맞이를 할 때는 임산부인 여자가 먼저 달이 뜨는 것을 보면 남자아이를 낳고, 병자가 먼저 보면 병이 완쾌된다고 한다. 또한 처녀가 달이 뜨는 것을 가장 먼저보고 소리를 치면 시집을 가고 총각이 먼저 보면 장가를 간다고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정월 대보름이 주는 즐거움으로 한 해의 풍요를 열어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사라진 상원일 풍습 안타까워

 

서구화된 문명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조선조 말기부터, 일제강점기의 강압적인 우리문화 말살정책으로 인해 수없이 사라져간 우리의 풍속들. 그 안에는 상원일이라고 하는 정월 대보름의 놀이들이 있었다. 공동체를 창출하고 마을과 마을 간의 단합을 일구어 낸 수많은 놀이들이 단지 옛것이나 미신이라는 폄하로 인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사실 정월 대보름은 우리민족에게는 4대 명절 증 하나였다. 설날, 추석, 동지와 함께 정월대보름을 큰 명절로 여긴 것이다. 이렇게 정월 대보름을 큰 명절로 여긴 이유는 정월 초사흘부터 시작한 각종 공동체놀이들이가 정월 대보름을 기해 마무리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다양한 우리들의 상원일의 놀이는 이 외에도 마을과 마을이 벌이는 횃불싸움이나, 수원의 여러 마을에서 나타났던 석전(石戰=돌싸움), 그리고 일 년 동안 건강한 몸과 다리를 튼튼하게 한다는 다리밟기 등 많은 놀이가 전해지고 있었다.

 

정월 보름날 아침에는 연에다가 서원을 적거나, 집안의 애환을 적어 날려 보내는 액연날리기도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정월 대보름의 놀이들은 모두가 풍농과 풍어, 마을의 안녕, 가내의 안과태평 등의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민족은 그 안에서 공동체를 창출했으며, 놀이를 하면서 이웃과 하나가 되는 우리라는 단단한 결속력을 다졌던 것이다.

 

그러나 작금에 들어 재현되는 많은 놀이들을 보면서,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사고는 사라진 채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전시성민속이 되어가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민족의 상원일의 놀이는 단순한 연희가 아닌, 그 내면에 깊은 사고를 지닌 놀이였기 때문이다.

 

팔달구 화서1동도 대보름 주민단합 척사대회

 

정월 대보름을 우리는 흔히 상원일(上元日)’이라고 해서 일 년 열두 달 가운데 정월의 보름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이는 설날을 그 해에 가장 첫날이라고 해서 원일(元日)’이라고 한데서 기인한다. 새해 첫날인 원일을 보낸 속가에서는 음력 정월 2일을 귀신날이라고 해서 문밖출입을 삼가고 하루를 근신하면서 지냈다

 

정월에 많이 즐기는 윷놀이는 부여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부여(夫餘)조에 다섯 가지 가축을 다섯 부락에 나누어준 뒤, 그 가축들을 경쟁적으로 번식시킬 목적에서 시작한 것이 바로 척사대회의 유래로 보기 때문이다. 윷놀이에서 `'는 돼지, `'는 개, `'은 양, `'은 소, `'는 말에 비유한다.

 

윷놀이는 <사희(柶戱)>라고도 한다. 두 사람 혹은 네 사람이 한편이 되어 대국하며, 각각 네 마리의 말을 가지고 29밭이 있는 윷판을 쓴다. 윷놀이는 윷가락을 던져 도, , , , 모로 구분 지으며, 그 시원을 이익의 <성호사설> 사희조(柶戱條)에서 윷놀이를 고려의 유속(遺俗)으로 본다.”고 하였다.

 

 

정자애누리시장 300여명 모여 단합 다져

 

기해년 정월 대보름이 다가오면서 수원의 전통시장들도 상인들의 단합과 일 년의 평안을 기원하는 척사대회를 열고 있다. 15일 오전 전통시장 가운데 가장 먼저 척사대회를 개최한 곳은 정자시장(상인회장 이재범)이다. 정자시장 공용주차장에 자리 잡은 척사대회장은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매년 300~500명 정도의 상인과 주민들이 모여 즐기는 정자시장 척사대회는 언제 찾아가도 먹거리부터 푸짐하다.

 

이날 정자시장 척사대회는 수원시 경제정책국 원영덕 국장을 비롯하여 지역경제과 심언형 과장, 송두찬 정자2동장, 수원시의회 이종근 기회경제위원장, 박명규 의원 등 축하객들과 주민, 수원시 전통시장 상인회장 등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원영덕 국장은 오늘 이 척사대회를 맞이하여 정자시장이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척사대회에 참가한 모든 분들이 일 년 동안 안녕하기 바란다고 했다.

 

 

척사대회를 찾아가면 언제나 많은 경품이 걸려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우승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자시장 척사대회는 1등에 에어프라이아(5.6리터), 2등에 바비큐 전기오븐, 3등에 전자레인지, 4등에 영암쌀 10kg 2, 5등에 키친 아크그릴, 6등에 에어프라이아(2리터), 7등에 영암쌀 10kg 1, 8등에 반상기 세트 등 푸짐한 상품을 내걸었다.

 

전통시장의 척사대회가 이렇게 푸짐한 상품을 내걸 수 있는 것은 바로 시장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정자시장 이재범 회장은 모두 상인 및 지역 주민들이 협찬한 것이라고 하면서 먹거리도 정월 대보름답게 오곡밥과 나물, 닭개장, 두루치기, 전 등 푸짐하게 마련했다고 한다.

 

 

화서1동도 주차장에서 척사대회 열어

 

15일 오전 눈이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화서1(동장 송성덕) 행정복지센터 주차장에는 눈을 피해 부스 안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주민들은 눈이 내리는 차가운 날씨 때문인지 쉽게 윷놀이 판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가, 1030분이 되어서야 말을 쓰기 시작한다. 화서1동 척사대회에도 100여명이 넘는 주민들이 모였다.

 

화서1동을 찾아온 이훈성 팔달구청장은 눈이 내리는데도 척사대회에 참가한 주민들께 감사를 드린다면서 오늘 이 척사대회를 계기로 주민들이 화합하고 공동체를 익혀 제일가는 마을이 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했다. 화서1동도 척사대회에 많은 경품을 걸었다. 송성덕 동장은 척사대회에 마련한 상품은 구입했다고 전한다.

 

 

송성덕 화서1동장은 척사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티켓을 팔아 그 비용으로 척사대회 상품을 구입했어요. 오늘 척사대회 경비를 사용하고 남은 것은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사용하려고요라고 한다. 정월대보름을 기해 각 주민센터마다 개최하고 있는 척사대회.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 열리는 척사대회에 참가하여, 기해년 한 해가 시작하는 정월에 좋은 기운을 받기 원한다.

 

온 마을 집집마다 축원하며 땅을 밟아

 

정월에는 집집마다 지신밟기를 한다. 지신밟기란 집의 터를 관장하는 터주신에게 음식을 해놓고 술을 부은 다음 신명나게 한바탕 풍장을 울려 지신이 감흥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신밟기는 일 년 동안 가내의 안과태평과 집안 식솔의 무사안일을 기원하는 것이며 풍년이 들고 자손창성하기를 바라는 터굿이다.

 

고사로다 고사로다 고사덕담을 들어보소. 천지현황 조판 후에 혼돈세계 길단말가

일대국이 건설되고 건부곤모 가결하니 음과 양의 조화로다. 태양태음이 일월이요

산수조종을 살펴보니 인왕씨가 조종이라 학을 눌러 대궐 짓고 대궐 앞에 육조로다

육조 앞에는 오영문, 오영문 앞에는 삼각산, 각도 각읍 마련할 제

인왕산이 주산이요 종남산은 안산이라. 이 한 줄기 뚝 떨어져 수원으로 내려앉아

 

 

 

지신밟기를 하는 풍장패들이 하는 고사덕담이다. 고사덕담은 농사풀이, 자손풀이, 달거리 등 다양한 덕담이 있는데 소리꾼은 이 덕담을 잘해야 능력있는 소리꾼으로 대우받는다. 과거에는 지신밟기를 하는 걸립패에는 반드시 이렇게 덕담을 잘하는 소리꾼들이 있었다. 그런 덕담소리가 정월 한 달 내내 마을을 집집마다 찾아다니는 지신밟기 풍장패들이 불러댄다.

 

정월 초3일이 되면 하늘에서 평신(平神 =인간세계의 터를 평안하게 만든다는 신)이 내려온다고 한다. 각 마을에서는 이날부터 풍장패들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한다. 지신밟기는 터를 관장한다는 <터주신>을 잘 다스려 한 해 동안 집안에 탈이 없고 안과태평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풍물굿이다.

 

만일 정월 대보름 전에 지신밟기를 하지 않아 터주신이 노하면 집안에 우환이 그치지 않고 동티(= 動土)가 난다고 하여 마을의 풍장패가 길을 나서는 기미가 보이면 서로 자신의 집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는 것을 보아도 정초 지신밟기는 매우 중요한 의식이었다. 그렇게 모든 놀이를 정월대보름까지 이어오다가 정월 열나흘날 밤이 되면 줄다리기와 답교놀이, 달집태우기 등을 한 것이다.

 

 

 

지신밟기는 마을마다 한 집도 빠짐없이 다니면서 고사덕담(告祀德談)’인 축원을 해주는데 대문서 부터 시작해 우물, 마구간, 부엌, 장독대 등을 돌면서 터를 밟은 후 대청에 마련해 놓은 고사상 앞에서 덕담을 한다. 지신밟기를 마치면 대청에 마련한 술과 떡을 나누고 난 뒤 고사상에 올려 진 쌀과 돈을 갖고 다음 집으로 향한다. 그 쌀과 돈은 마을의 기금으로 사용을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먼저 지신밟기를 하기 위해 풍물패를 집안으로 끌어들였다고 하니 우리민족은 정월에 하는 놀이가 풍농과 안과태평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마을을 돌면서 지신밟기를 하던 두레패들이 길에서 만나게 되면 상대방에게 먼저 기를 숙여 인사를 하라고 소리친다. 그러다가 급기야 상대 두레기의 상단에 꽂힌 꿩장목을 뽑게 되는데 이것이 정월에 열리는 '두레싸움'이다.

 

과거에는 정월 초3일부터 집집마다 다니며 지신밟기를 하던 풍장패들이 정월 열나흘이 되면 한 곳으로 모여들어 근동 30여 개 마을에서 모여든 풍장패들이 한 곳에서 풍물을 울렸다고 하니 가히 그 위세가 대단했음을 일 수 있다. 요즈음은 이렇게 제대로 지신밟기를 하면서 고사덕담 등을 할 수 있는 연희패를 만나기도 힘들다. 과거 마을마다 연희가 된 지신밟기, 정월 보름에 하는 이 지신밟기가 수원 전역 한 해 동티를 모두 막아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1987년 안성시청(당시 안성군청)에서 남사당풍물놀이에 대한 책을 의뢰받고 안성에서 6개월 정도를 한 겨울 추위를 무릅쓰고 읍내에서 서운면 청룡사까지 수도없이 발걸음을 한 적이 있다. 안성 청룡사는 충북 진천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고찰로 당시는 교통편이 상당히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안성남사당풍물놀아 도보>라는 제목으로 발간한 이 책은 공식적으로 나에게는 가장 먼저 세상에 내놓은 저서로 60P 분량의 소책자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꽤 많은 고생을 했다.

 

당시는 안성남사당에 대한 자료가 전혀 없을 때라 일일이 사람들을 찾아 묻고 기록하기를 수도없이 반복해야 했다. 그때 서운초등학교에서 풍물팀을 지도하고 있던 김기복 선생을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남사당풍물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남사당의 여성 꼭두쇠였던 바우덕이는 물론 남사당의 역사를 찾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안성남사당의 꼭두쇠였던 이원보패에 들어가 8살부터 상무동으로 시작한 김기복 선생은 안성남사당이 전부였으며 뼈 속까지 꼭두쇠였다. 선생은 늘 남사당의 복원과 전승에만 관심이 있었고 제자들을 가르칠 때는 엄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런 선생과 인연이 되어 그동안 수도없이 안성을 드나들며 남사당에 대한 기사를 쓰곤 했다,

 

안성남사당의 맥은 조선조 말의 바우덕이로부터 시작하여 김복만-원육덕-이원보-김기복으로 이어지면서 해체와 결성을 반복하면서 끈질기게 맥을 이어왔다. 1997930일 안성남사당풍물놀이가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자 선생은 기예능보유자로 지정을 받았으며, 2002년 안성시립남사당바우덕이풍물단을 창단하여 꼭두쇠를 역임하였다. 2015820일 새벽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선생은 영원한 안성남사당의 꼭두쇠였다.

 

남사당은 신라 때부터 전해져

 

한산 세모시 곱게 차려입고

안성 청룡으로 사당질 가세

 

우리네 삶이 암울했던 시절에 나옴직한 소리다. 한산 세모시를 곱게 차려입고 안성 청룡으로 사당질을 가잔다. 안성 청룡이란 서운면에 있는 고찰 청룡사를 일컫는 말이다. 왜 하필이면 안성 청룡이었을까? 그 곳은 예부터 남사당패들의 근거지였다. 칠사당패라고 불리던 남사당패들이 청룡사 밑에 자리잡고 봄이 되면 길을 떠났다가 가을이 되면 다시 돌아와 그 곳에서 한겨울 동안 기예를 익힌 후 다시 길을 떠나는 일을 반복했다. 이 곳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안성남사당패는 그 기예가 출중하기도 했지만 남사당의 원류로 알려져 있다.

 

남사당패의 시원(始原)은 신라 때부터 전해진 예인집단(藝人集團)이라고 한다. 하지만 유랑집단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조선조 말기로 보고 있다. 청룡사는 과거 살기가 암울하던 시절 많은 기예인들이 이 곳으로 몰려와 집단으로 취락을 이루면서 남사당패와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게된다. 그들이 이 곳에 거주한 것은 안성장이 가까이 있고 정월을 비롯하여 각 절기에 사찰을 찾는 이들을 위해 마당놀이를 통하여 최소한의 생활대책이 되었기 때문이란 생각이다.

 

 

꼭두쇠를 정점으로 뭉친 남사당패

 

남사당패의 조직을 보면 맨 위에 꼭두쇠가 있고 그 밑에 곰뱅이·뜬쇠·가열·삐리·저승패·등짐꾼 등으로 4050명이 한패를 이룬다. 꼭두쇠는 패거리의 우두머리로 대내외적인 책임을 지며 꼭두쇠의 능력에 따라 식구가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한다. 곰뱅이쇠는 패거리의 기획을 맡아본다. 곰뱅이란 남사당패의 은어로 허가란 뜻이다. 어느 마을에 들어갔을 때 놀이마당을 열어도 좋다는 승낙을 받는 일을 맡아보는 사람을 말한다. 곰뱅이쇠가 둘일 경우 하나는 가장 중요한 문제인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글()곰뱅이쇠다.

 

다음으로는 뜬쇠가 있다. 뜬쇠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파트장이나 수석의 역할을 한다. 뜬쇠는 14명 내외로 구성이 되며 상공운님(상쇠징수님(수징고장수님(수장고북수님(수북호적수·벅구님(소고상동무님·회덕님(선소리꾼버나쇠·얼른쇠(요술쟁이살판쇠(땅재주꾼어름산이(줄꾼덧뵈기쇠·덜미쇠 등 각 부분의 우두머리를 말한다.

 

뜬쇠의 밑에는 몇 사람의 기능을 익힌 가열이 있으며, 밑으로 초임자인 삐리를 둔다. 저승패는 나이가 먹어 기능을 상실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꼭두쇠는 패거리에 의해 선출되며 기능을 발휘할 수 없거나 잘못이 있어 신임을 잃으면 바꾸게 된다. 협의를 통한 다수결의 방식을 통해 선출되며 일정한 임기는 없다.

 

 

남사당패의 여성 꼭두쇠 바우덕이

 

안성 청룡 바우덕이 소고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치마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줄 위에 오르니 돈 쏟아진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바람결에 잘도 떠나가네

 

안성 남사당패의 꼭두쇠 바우덕이가 얼마나 대단하였는가를 알 수 있는 안성지역에 전해지는 소리이다. 꼭두쇠 바우덕이(본명은 김암덕(金岩德)이라 전함)는 능력이 있는 꼭두쇠로 그가 이끌던 남사당패를 개다리패라고 불렀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꼭두쇠였던 그는 남사당패를 최고의 기예 집단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그 뒤를 이은 복만이패(꼭두쇠는 안성출신 김복만)1935년 당시 가장 활발하게 한수 이북을 누빈 유랑집단이었다. 복만이패를 이은 원육덕패(여주출신)는 해체된 복만이패 사람들을 규합하였으며 1939년 멀리 북간도까지 들어가서 활동하다 해체되었다. 복만이패가 해체될 때 유일하게 안성을 기점으로 활동하던 이원보패를 마지막으로 유랑집단으로서의 기능이 사실상 상실되었다.

 

 

남사당공연장에서 만난 영원한 재인들

 

주말과 휴일을 맞이하여 안성맞춤랜드 안에 소재한 안성남사당바우덕이 풍물단의 전용공연장에서는 4월부터 11월까지 공연이 열린다. 안성을 갈 때마다 이곳을 들리고는 하는데 시원한 실내에 앉아 공연단들과 함께 대화를 이어가며 추임새도 넣고 박수도 쳐가면서 관람을 하고 있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면서 늘 부럽다는 생각이다. 편하게 구경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비가와도 날이 무더워도 걱정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주말 안성을 찾았다. 요즈음 같은 철에 누가 이곳을 찾아올까 하는 생각을 가졌는데 막상 공연장에 모인 사람들은 200여명 가까운 관객들이 모였다.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라도 나온 기분으로 모인 사람들은 얼쑤’ ’좋구나를 연발해가며 즐거워들 한다. 그 중에 앉아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절로 즐거워진다.

 

영원한 우리의 재인 안성남사당패. 그들의 소박한 몸짓이며 기예 한편에는 많은 땀과 노력이 있었다. 그들은 오늘도 판줄을 타고 마당놀이에서 칠무동을 선보인다. 오래도록 전해진 그들만이 놀이판에 함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즐거움이다. 안성남사당, 그들에게 오늘이 있기까지 나도 조그마한 몫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지난 14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참석을 위해 경기도를 방문한 북측대표단이 34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17일 김포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이번 교류는 남측 지자체와 북측 간 상호교류협력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지방자치단체 방문이자 ‘11년 만에 이뤄진 산업시설 참관으로 기록될 북측 대표단의 이번 경기도 방문 성과와 의미를 살펴봤다. 

지방자치단체와 북측 간 교류협력사업 물꼬

중앙정부가 만든 큰 길, 다져나가는 건 지자체의 몫!”

이번 북측대표단 경기도 방문은 지방자치단체와 북측 간 교류협력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도와 북측대표단은 중앙정부가 터놓은 남북교류협력사업의 물꼬를 지방자치단체가 이어받아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 15일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진행된 첫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께서 큰 길을 만들었는데 그 길을 단단히 다져서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하는 건 우리의 몫이라며 중앙정부에서는 큰 방향을 잡지만 잔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은 지방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위) 부위원장은 지극히 옳은 말씀이다.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걸 체감하게 된다라고 동의의 뜻을 전했다.

이에 따라 도는 상호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도와 북측 간 교류협력이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선, 도와 북측대표단은 농업, 산림, 보건의료, 체육, 관광 등 유엔 제재 국면 하에서 가능한 분야의 협력 사업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해 나가기로 했다.

이와 관련, 그간 추진해온 옥류관 유치 농림복합형 농장(스마트팜) 시범 공동 운영 문화.스포츠교류 활성화 축산업, 양묘사업 등 공동 추진 임진강 유역 남북 공동관리 남북 전통음식 교류대전 개최 등의 남북교류협력사업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경기도와 북측 간 기술협력 시사

이번 방문은 지난 2007년 기아자동차 공장 방문 이후 11년 만에 이뤄진 북측 인사의 산업시설 참관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북측대표단은 판교테크노밸리와 경기도농업기술원 등 도 산업시설에 높은 관심을 나타내며 함께 구축할 미래에 대한 다양한 구상을 밝혔다.

북측대표단이 밝힌 구상에는 공동 신도시 건설 남북 공동산업단지 조성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송명철 부위원장은 지난 15일 판교테크노밸리 현황을 들은 뒤 “(평안남도) 평성시가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는 중심지로 자리잡고 있다. 판교테크노밸리와 같은 사업에 대한 협력이나 협조를 어떤 방식으로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라며 화두를 던졌다.

이에 이 지사는 분당, 판교와 같은 신도시 건설방식을 중국이 벤치마킹해 심양과 같은 도시를 조성하기도 했다. 신도시를 건설한 경험과 노하우가 있는 만큼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하며 협력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동두천, 파주, 김포 등 접경지역에 경기도와 북측이 협력해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판교테크노밸리 같은 것들을 그 안에 녹이면 좋을 것 같다라며 보다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북측 관계자들은 판교테크노밸리에서 관람한 3D프린터와 앱 블루투스 방식의 사진출력기, 농업기술원에서 둘러본 국화.장미 연구단지, 물고기의 배설물로 채소를 키우는 아쿠아포닉스 산업화 모델, 태양광 지열 병용 식물공장, 농기계 실습장 등에 연신 관심을 나타내며 다양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질문의 대부분은 기술의 원리나 생산효율 및 경제성, 비용 등 실제적인 기술 도입 부분에 집중됐다.

이에 대해 김석철 경기도농업기술원장은 북측 관계자들이 시설을 둘러보면서 실제로 북측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고민하는 인상을 받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최초 방북 초읽기

북측대표단이 이 지사의 방북 초청 의사를 밝힘에 따라 전국 지자체장 최초의 북측 방문도 가시화되고 있다.

북측대표단은 지난 15일 첫 대면식에서부터 이 지사의 방북 초청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날 송명철 아태위 부실장은 옥류관 냉면을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는 이 지사의 말을 듣자마자 “(리종혁) 선생님께서 기회를 한번 만들어달라고 제안했고, 리 아태위 부위원장은 옥류관 분점이 경기도에 개관하기 전에 한번 (북측에) 왔다갔으면 좋겠다며 초청 의사를 전달했다.

그간 남북교류는 중앙정부 차원으로만 진행돼 왔으며 지자체 차원의 방북은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못했다.

현재까지 이뤄진 대통령 방북은 총 4차례로 중앙정부 차원의 남북화해와 교류협력의 상징으로 기록되고 있다.

지난 2000613일 한반도 분단 이후 처음으로 이뤄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과 지난 2007102일 육로를 통해 이뤄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방북은 남북화해사의 이정표로 남아있다.

올 들어 2차례 이뤄진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 또한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를 풀고 남북평화협력 시대의 서막을 연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이 지사의 방북이 이뤄질 경우, 지자체와 북측 간 본격적인 교류협력의 서막을 여는 상징적 사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지사의 방북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지사는 준비가 되어 있다. 이왕이면 좀 더 구체적으로 할 일을 준비해서 가는 것이 좋겠다라며 교류협력 사업의 적극 추진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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