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그 사용되는 용도에 따라 가치를 부여받는다. 하지만 그런 용도와는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는 나무들이 있다. 바로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어 있는 나무들이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종류의 나무들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이 나무들은 학술적으로도 매우 소중하기 때문에 보호를 받아야할 소중한 가치를 갖는 것이다.

 

나무 한 그루가 360년 세월동안 한 곳에 서 있다. 그렇다면 이 나무는 주변에 사람들이 벌써 10대 이상을 바뀌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는 뜻이다. 말을 하지 못해 우리에게 지난 사람들에 대해 고변을 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꽤 많은 이야기꺼리를 갖고 있지나 않을까?.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149-2 웅지마을 뒤편에 소재한 천연기념물 제470호인 전곡리 물푸레나무의 이야기이다.

 

 

이 나무 임신한 것 아니오?

 

전국을 다니면서 크고 작은 나무들을 보았다. 물론 그 나무들은 모두 천연기념물이나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있는 나무들이다. 그런데 11일 화성에서 만난 이 물푸레나무는 조금은 사람을 황당하게 만든다. 나무가 마치 임신을 한 듯하다. 굵은 줄기 중간에 속이 들여다보이는데 그곳에 줄기 같기도 하고 뿌리 같기도 한 것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은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지만, 이런 경우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6,25 한국전쟁 때까지만 해도 마을 사람들이 동신제를 지낸 나무라고 한다. 가뭄이 들어 비가 오지 않으면 이 나무에 정성스럽게 기우제도 지냈다는 것이다.

 

 

전곡리 물푸레나무는 수형이 아름답다. 나무의 높이는 20m 정도에 밑동의 둘레는 거의 5m 가까이 된다. 가지는 동으로 10m 정도, 서쪽으로 6.3m, 남으로 5m, 북으로 8.3m를 뻗어 동서로 16m, 남북으로 13.3m 정도를 뻗고 있다. 각종 농기구나 생활용품의 재료로 사용하던 물푸레나무, 여름철 입을 실하게 달고 있는 나무를 찬찬히 돌아본다.

 

잡풀 무성하고 관리도 하지 않는 듯

 

물푸레나무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자라는 키가 큰 나무로, 목재의 재질이 단단하여 괭이자루 등 각종 농기구와 생활용품 등의 용도로 널리 사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나무껍질은 건위제나 소염제 등의 한방 재료로 사용하였으며, 농촌에서는 여러 가지로 쓰임새가 많은 나무가 바로 물푸레나무이다.

 

 

전곡리 물푸레나무는 보기만 해도 압도당한다. 우선 거대한 밑동의 둘레도 그렇지만 실하게 잎을 달고 있는 나무가, 상당히 생육이 좋아 보이기 때문이다. 2년 전 이 나무를 만났을 때는 11월 말이라 나뭇잎을 달고 있지 않았다. 이런 나무를 마을에서 신성시 하는 것도, 이 나무를 잘못 대했다가 예전에 혼을 난 일이 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석연휴가 끝난 11일 찾아간 전곡리 물푸레나무는 한 마디로 실망스럽다. 마을에서 신성시 했다는 것 외에도, 이 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는 나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 주변은 잡풀이 무성해 안내판에 접근하기조차 어렵다. 나무를 촬영하려고 주변을 돌아보아도 높다랗게 자라난 잡풀이 발목을 붙들고는 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전곡리 물푸레나무, 어째 이렇게 관리들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항상 이유는 많다. 비가 많이 와서 풀을 미처 베지 못했는데 갑자기 풀이 자랐다. 추석연휴가 끝나면 정리를 하려고 했다. 언제나 판에 박은 이런 핑계들을 댄다. 하지만 문화재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그런 이유를 다 이해를 하고 다닌다고 생각을 하는 것일까?

 

360년이라는 긴 시간을 마을을 굽어보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전곡리 물푸레나무. 앞으로도 이 나무가 얼마를 더 이 마을을 지키며 살아갈 것인지 아무도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것은 이 나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을 때라야 가능한 이야기이다. 담당 관청에서는 소중한 천연기념물임을 깨닫고 주변 정리를 속히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나라에 지정된 천연기념물 중 가장 넓은 지역을 가진 것 중 한 곳은 바로 천연기념물 제171호인 설악산 천연보호구역(雪嶽山 天然保護區域)’일 것이다. 사실 천연기념물이라고는 하지만 광대한 지역의 자연보호 구역이기 때문에, 천연기념물인 아닌 보호구역으로 설정을 해놓았다.

 

설악산 천연보호구역은 강원도 속초시와 인제군, 양양군, 고성군에 걸쳐 넓게 펼쳐져 있다. ‘설악(雪岳)’이란 이름은 주봉인 해발 1708m의 대청봉이 1년 중 56개월 동안 눈에 덮여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름 그대로 눈에 덮힌 큰 산이라는 뜻으로 삼산오악 중 오악에 한 곳이다.

 

 

화강암 암반으로 조성된 수려한 경관

 

설악산은 연평균 기온이 10를 넘지 않는 저온지대에 속하며, 연 강우량은 내설악이 1,000정도, 외설악이 1,300정도이다. 설악산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경관은 대규모의 화강암 관입과 더불어, 암질과 절리의 차이에 따른 차별침식의 결과로 보고 있다. 곳곳에 화강암이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절경을 만들어 내고 있는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설악산은 사계절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다. 발길 닿는 곳마다 절경을 이루고 있어, 각 지역마다 계절별 풍광이 다르다고 한다. 가장 많은 등산객들이 설악산을 선호하는 이유는 이런 아름다운 경치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설악산이 가을 단풍이 들면 설악이 불이 붙었다.’고 할 정도로 아름답다. 눈산이라는 설악이 단풍까지 아름답다는 것은, 그만큼 이 산의 다양성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동식물의 보고 설악산 천연보호구역

 

설악산 천연보호구역 내의 식물은 약 1,013종의 식물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신갈나무, 당단풍나무, 졸참나무, 서어나무 등의 활엽수림과 소나무, 잣나무, 분비나무 등의 침엽수림이 섞여 숲을 이룬다. 그 밖에 금강배나무, 금강봄맞이, 금강소나무, 등대시호, 만리화, 눈설악주목, 설악아구장나무, 설악금강초롱, 솜다리 등 특산물 65, 눈측백 노랑만병초, 난쟁이붓꽃, 난사초, 한계령풀 등 희귀식물 56종이 보고되고 있다.

 

천연보호구역 내의 동물은 1,562종이 보고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반달가슴곰(천연기념물 제329), 사향노루(천연기념물 제216), 산양(천연기념물 제217), 수달(천연기념물 제330), 하늘다람쥐(천연기념물 제328), 황조롱이(천연기념물 제323-8), 붉은배새매(천연기념물 제323-2), 열목어(천연기념물 제73), 어름치(천연기념물 제259) 등은 별도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자연 그대로 보존해야 할 설악산

 

천연기념물인 설악산 천연보호구역은 특별히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곳이다. 이 곳의 지질과 지형 및 동물과 식물 자원이 풍부하며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전통 사찰 등 많은 문화유산들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 중의 하나이므로, 설악산 전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산에 오르면서 그 산에 대한 고마움을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 산은 그저 경치나 구경하고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오르는 곳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적어도 산 전체가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이 되어있는 설악산의 경우는 신령하기까지 하다고 한다. 이 산에서 돌맹이 하나 풀 한 포기를 훼손하는 행위는 곧 천연기념물을 훼손하는 행위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준다. 받은 만큼 우리가 돌려줄 것은 바로 자연 그대로의 보전이다.

나무 한 그루가 나에게 주는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한 두 번 본 나무가 아니지만, 그 나무 앞에만 서면 난 늘 작아지고는 한다. 그 나무의 위용이 대단해서라기보다는 그 나무의 연륜 때문이다. 1100년이란 세월을 그렇게 한 자리에 서서 지난 세월의 역사를 보고 있었던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한다. 그만큼 오랜 수령을 지니고 있는 나무로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은행나무가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라고 한다. 은행나무는 여러 가지 약재로도 사용되고 있지만,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다. 또한 열매는 사람들에게 많은 이로움을 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나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우리나라 최고령의 은행나무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수령이 약 1100년 정도로 추정한다. 나무의 수고는 42m, 밑동의 둘레는 15.2m 정도이다. 우리나라에 서식하고 있는 많은 은행나무 가운데 수령과 수고에 있어서 이 나무를 따를 것이 없다. 또한 줄기 아래에는 커다란 혹이 달려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용문사 은행나무를 다섯 번째인가 만난 것은 비가 추적거리며 내리는 8월이었다. 용문사 진입로 앞에 차를 대놓고 천천히 빗길을 걸어 들어간다. 차로 들어가도 되겠지만, 용문사는 굳이 그럴 생각이 없다. 그저 걷기만 해도 주변 경관이 뛰어나 즐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일행들은 굳이 차로 가도 될 것 아니냐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걷는 길이 그리 넓지도 않은데 차로 이동을 한다면 죄스럽기 때문이다.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30호인 용문사 은행나무는 통일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재위 927935)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일설에는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고도 전해진다.

 

하지만 난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설에 무게를 둔다.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수많은 전설 가운데는, 고승들이 꽂아놓은 지팡이가 자라나 나무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 말은 그리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아무리 고승이 지팡이를 꽂았다고 하지만, 그 지팡이가 도대체 어떤 종류의 나무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것이 나무가 되었다는 설은 조금은 황당하기 때문이다.

 

당상관 품계를 받은 은행나무

 

그밖에도 용문사 은행나무에 대한 설화는 많다. 누군가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었는데 그 자리에서 피가 났다는 이야기며, 1907년에 일어난 정미의병 항쟁 때,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렀는데 이 나무만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들도 전한다. 그뿐만 아니라 나라에 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이 은행나무가 소리를 내어 알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은행나무가 나라에 변고가 일어나면 울었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충남 금산 보석사의 은행나무도 나라에 변고가 생기면 울었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은 우리나라 곳곳에 전하고 있다. 하기야 1000년이란 세월을 한 자리에 지키고 있는 나무들이니 우리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을 수밖에.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조선조 4대 임금인 세종 때 정3품 벼슬인 당상관이란 품계를 받을 만큼 중히 여겨졌다. 나무가 이렇게 벼슬아치가 된 것은 보은 속리산 법주사 입구에 서 있는 정이품 소나무도 있다. 나무도 벼슬을 줄 수 있었던 우리의 선조들. 이런 것만 보아도 우리가 사는 지금 세상이 얼마나 팍팍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용문사 은행나무를 정리하면서 올해는 나도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다는 생각이다.

 

사진설명 1. 비오는 날 만난 용문사 은행나무

2. 용문사 경내에서 바라 본 은행나무

3. 은행나무의 밑동

4. 중간 갈래로 뻗은 즐기

5. 가을철 단풍이 든 은행나무(문화재청 사진)

 

반룡송. 마치 용이 승천하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소나무의 껍질이 마치 용비늘 같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 201-11에 소재한 천연기념물 제381호 반룡송은 신라 말 도선이 심었다고 전하는 나무이다. 도선스님은 이천 백사면 도립리와 함께 함흥, 서울, 강원도, 계룡산에서 장차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을 예언하면서, 소나무를 심었는데 그 중 한 그루라고 한다.

 

하늘로 오르고 싶은 나무

 

반룡송은 이천 백사면 면사무소에서 서쪽으로 약 1.7㎞ 떨어진 도립리 어산마을에서 자라고 있다. 예전에는 이곳 뒤펴에 집이 있던 흔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주변에 마을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이 반룡송 주변에는 모두 밭으로 변해, 올해는 땅콩밭이 있다.

 

 

천연기념물인 이 나무를 반룡송이라는 부르는 이유는, 하늘에 오르기 전에 땅에 서리고 있는 용과 같다는 뜻이라고 한다. 또는 일 만년 이상 살아갈 ‘용송(龍松)’이라 하여 ‘만년송(萬年松)’이라고도 부른다. 6월 17알 오후에 찾아간 반룡송. 이 인근을 지나칠 때마다 찾아가보고는 한다.

 

그것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반룡송의 상태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문화재란 항상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고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어느 때는 과거와는 달리 훼손이 되어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곳에 와서 반룡송을 보았을 때는, 어딘가 조금 튼실하지 못한 것 같았기 때문에, 더욱 궁금했기 때문이다.

 

 

승천하는 용과 같은 가지가 일품

 

반룡송의 높이는 4.25m, 가슴높이의 둘레는 1.83m이다. 높이 2m 정도에서 가지가 사방으로 갈라져 넓게 퍼져 있으며, 하늘을 향한 가지는 마치 용트림하듯 기묘한 모습으로 비틀리면서 180°휘어진 모습을 하고 있다. 용송이란 이름이 걸맞다는 생각을 한다. 한 가지는 땅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한 나무이면서도 두 나무인 듯한 모습을 보인다.

 

한편에 늘어진 가지는 땅에 끌릴 듯 휘어져 있다. 벌써 6~7 차례나 찾아가 만난 반룡송이지만 볼 때마다 새롭다. 늘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으면서, 언젠가는 하늘을 향해 승천을 할 날만을 기다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반룡송 앞으로 가 나무를 찬찬히 살펴본다. 지난해와는 달리 올해 만난 반룡송은 참으로 빛이 고운 것이 싱싱하다, 바라보면서 너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

 

 

전설을 간직한 반룡송

 

많은 전설을 간직한 신비한 나무인 반룡송은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신성한 나무로 여기고 있다. 그만큼 이 반룡송에 전하는 이야기는 많다. 구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껍질을 벗긴 사람이 병을 얻어 죽었다거나, 반룡송 밑에 떨어진 솔잎을 긁어다가 땠는데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았다는 이야기 등이다. 아무도 반룡송에 해를 가하거나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반룡송의 나무 표피가 붉은 색을 띠우고 있어서, 이 표피를 마을에서는 ‘용비늘’이라고 이야기들을 한다. 그 비늘을 건드리는 것도 화를 불러오는 짓이라고 하여, 가급적 나무 근처에 가까이 가서 해를 입히려고 하지 않는단다.

 

 

반룡송은 현재 이천 9경중에서 제6경으로 꼽히고 있다. 도선스님은 통일신라시대 승려로 풍수지리설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신라 흥덕왕 2년인 827년에 태어나 효공왕 2년인 898년에 세상을 하직했다. 그 도선스님이 심었다고 한다면, 이 반룡송의 수령은 이미 1,100년 이상 되었다고 볼 수 있다.

 

1년 만에 다시 찾아간 반룡송. 지난해보다 더 잎의 빛깔이 곱고 생육이 좋은 반룡송을 보면서 정말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1,100년이란 세월을 그렇게 한 자리에서 용이 승천하듯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반룡송. 그 이름과 같이 만년송이 되기를 고대한다.

서울 종로구 율곡로 99 창덕궁 안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194호인 창덕궁 향나무. 수령이 거의 800년 가깝다고 한다. 향나무는 우리나라 중부 이남을 비롯해 울릉도와 일본 등에 분포하고 있으며, 상나무, 노송나무로도 불린다. 이 나무는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제사 때 향을 피우는 재료로도 쓰이며 정원수나 공원수로 많이 심는다.

 

천연기념물로 보호를 받고 있는 창덕궁의 향나무는 2010년 태풍의 피해로 인해 손상은 되었지만, 뿌리부분인 밑동의 둘레가 5.9m 정도이다. 가지는 동서남북으로 1개씩 뻗어나갔는데 남쪽 가지는 잘라졌고, 북쪽 가지는 죽었으며, 동쪽 가지는 꼬불꼬불한 기형으로 자랐다. 나무의 모양은 마치 ()’이 하늘을 오르는 모습처럼 생겼다.

 

 

높이가 12m나 되는 창덕궁 향나무

 

창덕궁의 향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인 창덕궁 향나무.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2m 정도에, 뿌리부분인 밑동의 둘레가 5.9m이고, 가지의 길이는 동서 12.2m에 남북 7.5m로 넓게 퍼져있다.

 

창덕궁은 태종 4년인 1404년에 왕실의 별궁으로 창건된 곳이다. 창덕궁의 향나무는 창덕궁 창건후 상당히 큰 향나무를 다른 곳에서 창덕궁내로 옮겨 심었다고 하며, 이 나무의 수령을 약 800년 정도라고 추정하고 있다.

 

 

창덕궁은 조선시대에 있어서 고관대작이라 하더라도 임금님이 부르실 때만 비로소 들어갈 수 있었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런 전해지는 설로 볼 때, 이 향나무는 궁안에서 왕가의 왕족들만이 볼 수 있던 고귀한 나무였다. 이 나무는 왕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왕가의 온갖 화려한 모습을 보고 지내왔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닭의 울음소리를 듣지 않은 향나무가 최고

 

원래 향나무의 목재는 향불용으로 쓰였고, 옛날에는 울릉도에서 자란 향나무를 제일로 쳤다고 한다. 그것은 닭의 울음소리도 듣지 않고 자란 울릉향으로 제사용 향을 피우는 자가 가장 효자(孝子)’라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

 

일반적인 향나무는 키는 20m, 지름은 1m에 이른다. 1년생의 가지는 초록색, 2년생은 적갈색, 3년생은 자갈색을 띠며, 오래된 나무의 수피는 얇게 벗겨지고 흑갈색을 띤다. 우리나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어있는 향나무들은 모두 자생지를 포함해, 모두 12그루가 전해지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48호와 49호는 울릉군 서면 남양리 자생지와, 울릉군 서면 태하리에 소재한 향나무 자생지이다. 울릉도에 가장 좋은 향나무가 자생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좋은 향은 울릉도에서 생산이 되었다. 수령이 가장 오래된 것은 제88호인 순천시 송광면 이읍리의 향나무와,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양령리에 소재한 향나무로 수령이 800년을 지났다고 한다.

 

제향을 모실 때 향을 피우기 위해 사용했던 항나무. 창덕궁 안에 있는 향나무는 특이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늘 그렇게 생육이 좋아서, 앞으로도 천년 세월을 더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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