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악산 연수사. 그 이름만큼이나 어느 오랜 옛날, 꿈속에서 돌아본 듯한 정겨운 이릉이다. 6월 10일, 한 낮의 온도가 대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시간에, 감악산 연수사를 찾았다. 거창군 남상면 무촌리에 소재하는 연수사는, 해발 951m의 감악산 기슭에 자리한 절이다. 연수사를 찾은 것은 경내에 있는 수령 600년이 지났다는 은행나무가 보고 싶어서이다.

연수사는 신라 애장왕 3년인 802년에, '감악조사(紺岳祖師}‘가 현 사찰 남쪽에 세우려 했던 절이다. 이 연수사의 창건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고 있다. 감악조사가 절을 짓기 위해 서까래를 다듬어 놓았다. 그런데 잠을 자고 일어나니, 사람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큰 통나무 기둥이 사라진 것이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124호 연수사 은행나무

서까래가 옮겨진 곳에 터를 잡은 연수사

아침에 주변을 살펴보니 현 연수사 대웅전 자리에 서까래가 놓여있어, 그 자리에 대웅전은 짓고 가람을 이룩했다고 한다. 연수사는 조선조 숙종 시에 벽암선사(1575-1660)가 사찰을 중수하고, 십여 사원을 지어 불도를 크게 일으킨 절이라고 한다. 연수사에는 푸른빛이 감도는 바위 구멍에서 떨어지는 맛 좋은 샘물이 있으며, 극심한 가뭄에도 절대로 마르지 않았다고 전한다.

신라의 헌강왕은 이 샘물을 먹고 중풍을 고쳤다고 전해지고 있어, 연수사의 물이 병 치료에 좋기로 소문이 나 있으며, 이 물은 사철 물 온도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현재 이 연수사를 오르기 전에 만나는 일주문을 바라보고, 좌측에 수령이 600여년이 지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여승이 심었다고 전하는 연수사 은행나무

예전이나 지금이나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연수사 은행나무도 애틋한 세상사의 이야기 한토막이 전한다. 현재 경상남도 기념물 제124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연수사 은행나무. 이 은행나무는 육백여년 전 어느 젊은 여인이 10살 먹은 자신의 유복자와 이별을 하고 비구니가 되면서 심었다고 전해진다.

이 두 모자는 이별을 아쉬워하면서 두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아들은 전나무를 심고 어머니는 은행나무를 심었는데, 전나무는 1980년 경 강풍으로 부러져 없어지고 은행나무만 남았다는 것이다. 연수사 은행나무는 높이가 38m에, 밑동둘레가 7m나 되는 거목이다. 사방으로 뻗은 가지는 동서로 21m, 남북으로 20m 정도에 이른다.



물맞이 시설, 땀을 흘리며 찾아갔는데

연수사 일주문 곁에 있는 은행나무를 돌아보고 계단을 오른다. 계단 양편에는 누군가 돌탑을 여러 개 쌓아놓았다. 이렇게 돌탑을 쌓은 사람은, 돌 하나를 놓으며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대웅전 우측으로는 호리병에서 물이 흐른다. 아마도 저 샘물이 그 용하다는 물은 아니었는지. 대웅전 뒤편 산비탈에는 크지 않은 산신각이 자리하고 있다.

절을 한 바퀴 돌아 내려와 일주문 앞 암석에 잠시 다리를 뻗는다. 눈앞에 물 맞는 곳이란 이정표가 보인다. 180m. 천천히 걸어 산길로 접어든다. 아름드리 고목에서 딱따구리 한 마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가 들린다. “딱딱딱딱...” 더운 여름 날 그 소리가 마치 청량음료 한 잔을 마신 듯한 기분이다.

저만큼 강돌로 쌓은 구조물이 보인다. 끈끈한 몸을 물이라고 적실 요량으로 달음질을 쳐 구조물 안으로 들어간다. 한편에는 여탕이라는 간판이 놓여있다. 그 반대편으로 들어가니 입구를 꺾어 안으로 들어가게 조성을 하였다. 당연히 물이 쏟아질 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물기 하나 없이 마른 바닥이 눈에 들어온다. 물을 연결한 물길과 호스가 따로 떨어져 있다.




갑자기 목도 마르고 더위가 몰려온다. 괜히 이마에 땀이 흐르는 듯한 기분이다. 속으로 투덜대면서 돌아 나오는 길에, 저 밑으로 거창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별로 올라온 것 같지가 않은데, 꽤나 지역이 높은가보다. 심호흡을 한 번하고 산길을 돌아 나오니 은행나무가 보인다. 그 오랜 시간 저리고 꿋꿋이 서 있는 은행나무.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했음이 후회스럽다. 저리도 불평 없이 오랜 세월을 서 있는데, 나는 그 작은 것 하나에도 순간적으로 혈기를 내다니. 또 한 번의 부끄러움에 허한 웃음을 허공에 날린다.


양양군 현남면 인구리 7번 국도에서 해송천로를 따라 상월천리 방향으로 난 지방도를 따라 가다가 보면, 인구2리 길가에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두 그루 다 처진 소나무와 같이 아래로 가지를 내리고 있다. 이 중 길가에서 볼 때 뒤편에 있는 소나무는 흡사 정이품송을 닮았다.

길을 가다말고도 희귀한 나무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미인지라, 차에서 내려 소나무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그런데 소나무를 보니 가슴 높이 정도에 큰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보인다. 어떻게 된 일인가하여 밑동서부터 자세하게 살펴보니 틀림없는 연리목이다. 두 그루의 나무가 함께 자라다가, 이곳부터 연리목이 되었는데, 밑과 위가 완전히 붙어버렸다.



정이품송을 닮은 소나무의 밑에 구멍이 나 있다

희귀한 연리목, 나무의 생김새도 아름다워

이 나무가 여느 나무와 달라 보이는 것은 모양도 아름답게 생겼지만, 연리목이라는 점이 더욱 특이하기 때문이다. 밑동을 보아도 한 나무인지 두 그루의 나무가 붙어있는 것인지 구별이 쉽게 되질 않는다. 다만 나무의 구멍이 난 부분을 보니 그 안에 표피가 잇는 것을 보아, 이 나무가 한 그루가 아닌 두 그루가 붙어있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나무를 촬영하고 난 후, 길 건너 배추밭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 마을 분들이게 이 나무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저 뒤편에 소나무가 혹 수령이 얼마나 되었는지 아세요?”
“저희들은 잘 몰라요. 어르신들 이야기로는 500년이 지났다고도 하는데”
“저 나무에 혹 전설 같은 것은 없나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나무의 구멍을 살펴보니 연리목인 듯하다.

양양군의 아름다운 나무로 선정되어

더 이상은 물을 수가 없다. 일손을 놓지 않고 대답을 하시는 분에게, 자꾸만 질문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남면사무소에 문의를 하였더니, 양양군 내에 있는 소나무 품평회에서 이 나무가 아름다운 나무로 선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이렇게 아름답게 자란 소나무가 그리 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마 모르기는 해도 이 나무에는 애틋한 사랑이야기 한 편쯤은 전해지고 있지 않을까?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소나무다. 더구나 두 나무가 붙은 연리목이라는 데에는 한 가지 사랑이야기라도 만들어 주고 싶다.


밑동에도 가운데가 떨어진 것이 보인다. 이 나무는 양양군 소나무 품평회에서 아름다운 나무로 선정이 되었다고 한다.

돌멩이 하나 나무 한 그루에도 전설을 붙이기를 좋아하는 우리민족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나무에 마을에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없다니 이해가 가질 않는다. 아마 이 나무에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을 텐데, 혹 잊은 것은 아닐까? 그런 이야기 한 가지 듣지 못하고 떠나는 발길이 내심 아쉽기만 하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자연에게서도 많은 것을 배운다. 그 중 연리목이나 연리지를 보면, 꼭 무엇인가 우리에게 교훈이 되는 내용을 지니고 있다. 연리목이란 나무와 나무가 결합이 되는 것이고, 연리지란 가지와 가지가 결합이 되어 한 나무처럼 자라나는 것을 말한다. 남원 선원사에 가면 어미나무와 아들나무에 대한 가슴 저린 나무가 있다.

아들나무를 위해 속을 다 빼준 어미나무. 아마 우리 세상 살아가는 어머니들의 마음이 그러하지 않을까? 이 나무를 보고 어머니를 그리며,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던 것도 정말 사무치는 그리움과 부끄러움 때문이다. 나무에게서 배우는 애틋한 어머니의 사연. 과연 사람들은 그 나무에게서 무엇을 배워갈 수 있을까?


자식나무를 살리려고

과학적으로는 이야기가 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러나 전하는 이야기대로라면 그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나무의 수령을 보아도 상당히 오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선원사는 신라 때 창건된 절이다. 언제 부터인지 현재 일주문 옆에는 큰 고목 한 그루와 작은 나무가 나란히 서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작은 나무는 늘 큰 나무에 가려 햇볕을 제대로 받고 자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세상이 흘러 튼 나무는 점점 더 실하게 자라는데 비해, 그 옆에 자라는 작은 나무는 늘 잎이 실하지 못하고 주변 나무들보다 생육이 원만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두 나무를 어미나무와 자식나무라고 불렀다.


담장 안에 있는 나무는 속이 텅 비어버렸다. 담밖의 가지에 걸쳐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어미나무의 가지 하나가 자식나무의 가지 사이에 걸려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바람이 분 것도 아니고 태풍이 친 것도 아닌데, 어상하게 어미나무라는 큰 나무가 자식나무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를 않았다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갈수록 어미나무는 점점 자식나무 쪽으로 기울어졌고, 자식나무에게 연결된 가지는 자식나무의 한 줄기처럼 단단히 붙어버렸다. 그런데 그 뒤로 이상하게 어미나무의 밑 둥이 비어가는 것을 보았다. 자식나무에게 자신의 속을 다 내주고 있는 어미나무의 모습을 본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어미나무의 속은 완전히 비어졌다. 그 어미의 마음을 알아서일까, 자식나무는 잘 성장을 하여 커다란 느티나무로 변했다. 그 가지에는 여전히 어미나무의 가지를 붙든 체. 지금은 기운이 없는 어미나무가 자식나무에게 기대고 있는 형상이다. 늙고 병든 어머니를 부축하고 있는 자식의 모습과 같은 향상으로.


속이 텅 빈채로 살아가는 어미나무

연리목에게서 배우는 어머니의 헌신

“사람들도 저렇게 자식을 키우죠. 우리 어머니들의 마음은 다 똑 같아요. 자식을 위해 속을 저렇게 썩이는 겁니다. 저런 부모님의 마음을 자식들이 알고 있다면, 다시는 속을 썩이는 일이 없을 겁니다.”

선원사 운천 주지스님의 이야기다. 늘 저 나무를 보면서 어미의 마음을 헤아린다고 한다. 그 나무가 그렇게 속이 비어버린 까닭은 바로 자식을 위해서다. 속이 다 비어버린 고목. 껍질만 남은 나무는 벌어진 껍질 사이로 담이 보일 정도이다. 그렇게 자식을 위해 속을 비어버린 어미나무다.


속이 빈 어미나무. 껍질만 남아 갈라진 곳으로 담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참담한 마음이다. 우리 어머니도 저런 희생의 마음으로 날 키웠을 텐데. 이제 후회를 해보아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나무에게서 배우는 어머니의 마음. 내일은 꽃 한 다발 사들고 찾아뵈어야겠다. 괜한 눈물이 흐른다. 낙엽이 쌓인 모습때문이라고 우기고 싶지만.

남원 도통동에 자리한 천년고찰 선원사. 선원사는 신라 헌강왕 1년인 875년에 도선국사가 처음으로 창건을 했다고 전해진다. 도선국사는 남원의 지형이 주산인 백공산이 객산인 교룡산에 비해 지세한 허약한 것을 알고, 백공산의 지세를 높이고자 만복사와 대복사, 그리고 선원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이 신원사 경내에는 수령을 알 수 없는 모과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이 모과나무는 대웅전과 명부전 사이에 자라고 있으며, 어떤이는 수령이 600년이 지났다고도 하고, 어림잡아도 수백년은 지났을 것이라고들 말한다. 나무의 생긴 모습으로 보아서는 족히 수백년은 넘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이 모과나무는 가슴뫂이의 둘레가 2.5m 정도에 높이는 윗가지를 잘라냈다고 하는데도, 15m는 족히 되보인다. 이 모과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 재미있는 형상들이 보인다.


수령 600년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남원 선원사 모과나무

옹이가 박힌 모과나무

모과나무의 표피에는 크고 작은 혹과 같은 돌기가 돌출이 되어있다. 그런데 그 모과나무에 돌출된 부분을 한참 쳐다보고 있노라면, 희안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안에는 사람들도 있고, 부처님도 계시다. 나한도 있고, 동물들의 모습도 보인다. 어떻게 이런 모습이 보이는 것일까?

물론 정말 그런 모습이 모과나무에 있을리가 없다. 허나 아주 오랜시간 이렇게 자라난 모과나무의 표핍에 돌출이 된 돌기들이 야읏한 형상을 만들고 있다. 그 모습을 들여다보다가 한참이나 신기해 한다. 오랜 새월을 지나면서 변해버린 모과나무.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온기를 받았을 테니, 변하기도 했을 것이다. 천년 넘는 세월을 오래도록 염불소리를 들었을 테니, 부처의 심성을 닮기도 했을 것이다.





세월의 흔적이 만든 기이함

사람들은 이 모과나무의 표면을 보고 많은 이야기를 한다. 누구는 저건 나한상을 닮았다고도 하고, 누구는 저런 좌불이라고도 않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바라보면 비슷한 것도 같다. 오랜 세월 스스로 그렇게 치유를 하기 위해 생긴 흔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그 모습이 너무 기이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모과나무를 보고 발길을 멈추고는 한다.

나도 그 틈에서 바라본았다. 나름대로 구분도 해보는 재미가 있다. '저건 나한상, 이것 좌벙한 부처, 저건 토끼와 같다. 그리도 저건 영낙없는 두꺼비다'라고. 그런 재미를 붙이다 보니 선원사를 찾을 때마다 이 모과나무를 먼저 훑어보게 된다. 오늘은 또 무슨 형상을 하나 볼 수 있을까하는 기대감에. 선원사 모과나무. 그렇게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었다면, 그 또한 덕을 쌓은 것이 아닐까?

모과나무는 어디나 있다. 모과는 장미과에 속하는 교목으로 중국이 원산지이다. 모과나무는 높이가 10m 정도까지 자라나며, 가을에 노랗게 익는 열매가 달린다. 이 모과나무는 차를 끓여먹기도 하고, 향기가 좋아 방안에 놓아두면 상쾌한 기분이 돌게한다.

모과나무를 수도 없이 보아오고, 에전 집안에는 모과나무가 있기도 했다. 그런데 수확철이 되면 이상하게 벌레가 먹고, 그나마 몇개 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난생 처음으로 정말 실한 모과나무를 만났다. 한 그루에 300여개는 괼만한 모과가 달린 나무이다. 단 한 그루 뿐인 모과나무에 어떻게 저렇게 많은 모과가 달렸을까? 정말로 불가사의하다. 그 모과나무를 열심히 찍어왔다. 혼자 본다는 것이 아까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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