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은 여주인으로 고종 4년인 1867년 여주 북내면 상교리에서 태어났다. 의병활동을 하다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더 이상은 의병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가, 시영(時榮)이라는 가명으로 상주에서 은거하였다. 충청북도 황간으로 옮겨 거주하던 중, 1909년 일본헌병에게 잡혀 경성감옥에서 사형을 당했다.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상교1길 119 - 16 이인영의 생가 앞에는, 지난해 세운 의병대장 중남 이인영기념비가 서 있다.

  

13도 창의대진소 총대장

 

  
▲ 기념비 생가 앞에 세운 기념비. 지난 해인 1009년 9월 20일이 이인영 총대장이 순국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 하주성
이인영

 

이인영은 대성전재임을 지냈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유인석, 이강년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강원도 춘천과 양구 사이에서 일본군과 싸우고, 유인석의 제천전투에 참여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후 부친의 병환으로 인해 의병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을 계기로 의병이 재기하자, 그 해 9월 원주에서 의병원수부를 설치하고, 관동창의대장에 올랐다. 서울에 있는 각국의 공사관에 호소문을 띄우는 등 국권회복을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

 

1907년 11월 전 병력을 24진으로 하는 13도 의병연합부대를 편성한 이인영은 원수부 13도 의병총대장에 추대되었다. 군사장에 허위, 관동총대장에 민긍호, 호서창의대장에 이강년, 호남창의대장에 문태수, 영남창의대장에 박정빈, 경기황해창의대장에 권중희, 관서창의대장에 방인관, 관북창의대장에 정봉준을 선정한 뒤, 일거에 서울로 진격하여 통감부를 격파하고 조약을 무효로 만들어 국권을 회복하고자 했다.

 

  
▲ 안방 이인영 생가는 모두 7 칸으로 지어진 초가이다.
ⓒ 하주성
이인영 생가

 

그러나 각 도의 의병 중에는 제 날짜에 도착을 하지 못한 자가 많았고, 기밀을 알아차린 일본군이 먼저 공격을 해옴에 따라 다시 여주까지 퇴군을 하였다. 여주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패한 이인영은 대치를 하고 있던 1908년 1월 28일, 문경에 거주하던 부친의 사망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인영은 "충은 효이고, 효는 충이다"라는 신념을 갖고 후사를 군사장인 허위에게 맡기고 본가로 급히 내려갔다. 부친의 장례를 치른 후에는 재기하지 않고 있다가, 결국 일본 헌병에 잡혀 순국을 하고 말았다.

 

역사의 흔적 이인영 생가지 너무 쓸쓸해

 

여주 북내면 상교리에 있는 이인영 총대장의 생가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작은 집이 이 집에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몇 년 전인가 여주군에서 집을 보수를 하고, 지난해인 2009년 9월 20일 기념비를 세웠다. 지난 해  9월 20일은 이인영 총대장의 순국 100주기가 되는 해였다. 좁은 마을길을 가다가 내를 건너면 기념비는 집을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는데, 이곳이 나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난 13도 의병 총대장의 생가라는 안내판 하나가 없다.

 

  
▲ 마루 두 칸 대청 앞은 엉망이다. 보수를 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엉망이 되었을까?
ⓒ 하주성
대청

  
▲ 떨어진 담벼락 담벼락의 흙이 다 떨어져 내렸다.
ⓒ 하주성
담벼락

  
▲ 굴뚝 깨진 굴뚝 주변에는 떨어져 내린 흙이 쌓여있다. 흉물이 되어가고 있는 이인영 의병 총대장 생가
ⓒ 하주성
굴뚝

이인영 의병 총대장의 생가는 ㄱ 자 초가로 7칸 집이다. 좌측으로는 부엌과 두 칸 안방의 있고, 한 칸 윗방이 있다. 꺾인 곳에 두 칸 대청을 두고, 한 칸의 건넌방이 있다. 시골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단순한 초가집이다. 이런 집에서 13도 의병을 총괄하는 총대장이 태어난 것이다. 집은 보수를 했다고 하지만, 마루 앞으로는 블록이 깨져있는 등 엉망이다.

 

집 뒤로 돌아가니 말라버린 돌우물이 보인다. 주변은 정리가 되어있지 않고, 담이 떨어져 내리고 굴뚝은 바른 흙이 다 떨어져 내렸다. 방을 들여다보니 누군가 이곳에서 머물렀던 흔적이 있다. 마루는 신발을 신고 돌아다닌 듯 흙발자국이 잔뜩 찍혀있다. 앞에는 새로 지은 화장실이 있는데, 정작 보수를 했다는 생가는 화장실보다도 못한 느낌이다.

 

  
▲ 우물 말라버린 우물. 하루 빨리 주변 정리를 해 주기를 촉구한다.
ⓒ 하주성
우물

  
▲ 더럽혀진 대청마루 마루 위는 누군가 돌아다닌 듯 엉망이다.
ⓒ 하주성
마루

 

그래도 13도 의병의 총대장이었던 사람이 태어나고 살았던 집이다. 어떻게 이런 몰골이 되어있는 것인지. 돌아보면서 마음이 아프다. 세월이 흐르고 많은 인물들이 잊힌다고 하지만,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기억해내야 할 것이다. 13도 의병 총대장인 이인영 대장을. 그리고 위대한 인물이 태어난 이 곳 생가도 하루 빨리 주변 정리를 해서 역사의 교육현장이 될 수 있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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