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불교문화재 중 아름다운 전각을 꼽으라고 한다면, 난 주저 없이 봉암사 극락전을 말한다.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없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어느 전각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극락전은 봉암사 경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전각이기도 하다.

봉암사 극락전이 처음으로 지어진 것은 신라 헌강왕 5년인 879년이다. 지증국사가 봉암사를 창건하면서 지어진 건물로, 지어지고 난 후 80년이 지나 봉암사의 많은 전각들이 화재로 모두 소실이 되고 극락전만이 남았다고 한다. 그 뒤 고려 태조 18년인 935년에 정진대사가 봉암사를 재중창 하였으나, 임진란을 거치면서 일주문과 극락전만 남기고 모두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경순왕이 피난 시 원당으로 사용한 극락전

봉암사 극락전은 신라 경순왕이 피난 시에, 원당으로 사용한 유서 깊은 건물이기도 하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옥개석을 보수 한 듯, 망와에는 소화16년(1941년)이란 기록이 남아있다. 봉암사 극락전은 얼핏 보면 중층으로 지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단층 몸채에 차양 칸을 둘러 마치 중층 같은 외관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6일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봉암사를, 하안거에 든 스님들에게 공양을 대접하기 위해 들어갈 수가 있었다. 엄격하기로 소문이 난 봉암사는 공양대접을 하는 사람들도, 3시간 이내에 사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한다. 그래도 그 시간이면 경내에 있는 문화재를 답사하기에는 조금은 버거울 듯해, 걸음을 바삐 해야만 했다.



탑처럼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린 봉암사 극락전. 현재 보물 제1574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극락전은 기단부의 상, 하 갑석을 면석으로 처리를 하고, 기단의 바닥은 장방형 판석으로 깔았다. 원형의 주추는 잘 다듬은 원형의 화강석을 사용하였으며, 외진주 12본과 내진주 4본으로 중층 목탑형식으로 구성하였다.

삼면에 문을 낸 극락전, 궁전의 천정과 같은 아름다움

중앙에 마련한 전의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고, 배면의 벽에 기대어 작은 불단을 만들었다. 전면의 문은 세 짝문을 내었으며, 좌우측에는 폭이 넓은 세살문을 중앙에 넣고 졸대를 세운 판벽으로 처리하였다. 뒤편으로는 모두 판벽으로 처리를 해, 단칸의 불전이지만 일반 불전과 마찬가지로 정면과 양 측면으로 출입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내출목의 상단에는 장혀를 올리고 상벽을 구성한 후, 외진으로 17개의 우물을 돌려 궁전천정을 연상케 한다. 천정의 중앙에는 용이 그려져 있으며, 불단은 간략하게 조성을 하고 그 위에 불상을 모셨다.

지붕의 꼭대기에는 석탑과 같이 돌로 만든 장식을 올려놓았다. 많은 전각을 보아왔지만 봉암사 극락전과 같은 아름다움은 그리 흔치가 않다. 봉암사를 들어갈 수 있었던 것만도 행운이란 생각인데, 거기다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극락전까지 볼 수 있다니. 아마도 오랜 세월동안 전국을 다니며 문화재를 답사한 것에 대한 보답은 아니었을까?


극락전을 뒤로하고 삼층석탑으로 향하면서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것은 그 아름다움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이다. 언제 또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올지를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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