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사 사천왕문이 방화로 추정되는 가운데 전소가 되어버렸다. 뉴스를 통해 불이 타 무너져내리는 천왕문을 보면서 참으로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다. 외국의 열강 등에 의해 수도 없이 찬탈당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같은 민족에게까지 그렇게 훼파가 되어가고 있는 우리 문화재들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 마음이 아리다.

도대체 이 나라사람들은 종교가 다르다고, 혹은 세상이 마음에 안든다고 문화재에 화풀이를 하는 것일까? 이참에 문화재보호법을 더 강력하게 제정을 해, 다시는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이런 날 꼭 소개하고 싶은 문화재 한 점이 있다. 바로 경남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마을 뒤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보물 제294호 승안사지 삼층석탑이다.


통일신라 석탑의 형태를 계승한 고려탑

승안사지 삼층석탑은 우선 보기에는 매우 둔탁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저 첫눈에 보이는 느낌은 조금은 시골스런 남정네를 연상케 한다.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석탑은, 전체적으로는 신라 석탑을 계승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 지역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석탑이기 때문인가 보다.

기단부에는 비천인과 불, 보살 등의 조각이 되어있다. 이 모든 조각들은 무릎을 꿇은 형태로 되어있는 점도 특이하다. 탑의 전체적인 높이는 4.3,m 정도로 길쭉한 편이다. 그러한 점이 조금은 불안한 듯하지만, 투박한 탑의 형상이 그런 불안감을 조금은 해소시키고 있기도 하다. 자칫 탑의 조형의 비례가 맞지를 않아 중심이 흐트러질 뻔한 것을, 투박한 무게로 이겨내고 있다고 보겠다.




자리를 옮긴 석탑의 놀라운 조각예술

이 석탑은 1962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 올 때, 홍치 7년인 1494년에 중수를 한 기록이 한지에 먹으로 쓴 문서가 발견되었다. 이런 점으로 본다면 승안사는 당시에 존재해 있었다는 점이다. 이때도 탑이 옮겨졌음을 알 수 있는데, 결국은 두 번이나 자리를 옮긴 셈이다. 당시 1층 몸돌 위에 만들어진 사리구멍에서는 원통형사리함, 녹유사리병, 비단조각과 주머니, 유리구슬 등이 발견되었다.

기단부는 네모나게 조성을 하고, 그 위에 우주와 탱주를 새긴 위층 기단부를 놓았다. 위층 기단에는 불, 보살, 천인상을 조각을 하였으며 덮개돌에는 연꽃 문양을 새겨 넣었다. 기단부의 덮개돌은 층이 없이 평평한 돌을 위로 불룩하게 돋아 조각을 하였다.



일층 몸돌에는 사면에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그런데 이 사천왕상의 조각이 일반적인 탑에서 보이는 사천왕상과는 다르다. 사천왕상의 발밑에 보면 목제 사천왕상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무엇인가를 밟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특수한 조각기법과 장엄한 모습 등이 이 승안사지 삼층석탑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탑 하나에도 장인의 숨결이

탑을 돌아보고 석불을 돌아보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오랜 세월 그렇게 보존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은 바로 장인의 숨결이 배어있는 것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장인의 집중한 정신이 그 안에 함께 내재되어 있기에, 천년 세월을 버틴 것은 아닐까? 오랜 풍상에 시달리면서도 그렇게 한 자리에 버틸 수 있었음은, 보이지 않는 장인의 혼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승안사지 삼층석탑의 몸돌에 새긴 사천왕상은 장중하다.

이번 화재를 거울삼아 우리 문화재에 대한 일제 점검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매번 입으로만 앵무새가 따라하 듯, 문화재의 소중함을 떠들어 댈 것이 아니라, 실제로 완벽하게 보존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오랜 세월 지켜 낸 문화재들은 한번 잃으면 그만이다. 그런 자산을 이렇게 바보스럽게 잃는 우를 다시는 범하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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