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가면 중요민속자료 제5호인 운조루가 자리한다. 이 집은 조선 영조 때 심수부사를 지낸 류이주가 세운, 조선시대 양반가의 대표적인 집 중 한곳이다. 원래 ‘운조루’란 현판이 사랑채에 걸려있던 것으로 보아. 사랑채의 누정명칭을 따 온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3대 길지의 한곳에 지은 집이라고 하는 운조루는, '금환락지'의 명당이라고 한다. 금환락질한 지리사의 선녀가 섬진강 물에 머리를 감다가 손에 끼고 있는 반지를 빠트린 형상이라는 말이란다. 이 마을은 용두마을이라고 부르는데, 지리산의 지맥이 마을로 뻗어내려 그 기운이 이 마을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운조루에 가면 꼭 눈여겨보아야 할 것들.

1. 솟을대문에 걸린 호랑이 뼈

운조루를 찾아가면 정말 ‘이런 집도 있었나.’하고 감탄을 하게 된다. 그저 휑하니 둘러보고 나올 집이 아니다. 솟을대문을 가운데 놓은 행랑은 동, 서로 길게 뻗어 있다. 그 솟을대문의 살창에 보면 양편으로 짐승의 뼈 같은 것이 걸려있다. 바로 호랑이 뼈이다. 아마 이집의 가세를 알리는 이유도 있겠으나, 호랑이 뼈를 대문에 걸어 액을 막은 것으로 보인다.


2. 3개월간 시신을 안치하는 가빈터

예전에 가풍이 있는 집들을 보면 99일장을 지내기도 했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장례를 치루는 집들은 대개 초분을 마련한다. 운조루의 서행랑 끝에 보면 광과 같은 두 칸이 있다. 바로 ‘가빈터’ 혹은 ‘초빈’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사람이 운명 후 3일이 지나면 입관을 한 후, 이곳에 석 달 동안 안치하였다가 출상을 하는 곳이다. 안치 기간 중에는 아침에 상식을 올리고, 삭망에는 제례를 지낸다.



3. 경사가 진 곳에 놓은 널마루

운조루의 대문을 들어서면 앞으로 사랑채와 부엌으로 연결을 하여 꺾인 작은 사랑채가 보인다. 이 작은 사랑채의 방문 앞에는 넓적한 널판 두 개를 놓았다. 나무를 말리고 있는 듯한, 이 널판이 사실은 방문 앞에 놓은 툇마루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널판은 경사가 진 건물 앞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건물 끝의 툇마루에 오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운조루에서 만 볼 수 있는 여유의 멋이다.


4. 나눔의 아름다움 ‘타인능해(他人能解)’

지금은 사랑채의 부엌에 큰 뒤주와 함께 놓인 이 목독은 사실은 구제를 하기 위한 도구였다. 둥근 나무를 속을 파내고 만든 나무 독은, 쌀이 두 가마 반이나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그 밑에는 구멍이 나 있는데 마개가 닫혀있다. 이 마개를 빼면 통 안에 들어있는 쌀이 쏟아져 나온다. 가난한 이웃사람들이 쌀을 가져다가 굶주리지 않게 한 장치이다. 나눔의 아름다움을 실천한 이 집의 가풍을 엿볼 수가 있다.


5. 나무로 만든 툇돌

마루나 방문 앞에 놓는 툇돌은 대개 돌로 만든다. 그러나 온조루의 안채를 들어가면 툇돌이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두터운 나무를 흔들이지 않도록 괴어, 그 위에 시발을 벗어 놓을 수 있도록 하였다. 돌이 없어서 그랬을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 돌로 만든 툇돌은 오래가기는 하지만, 겨울철에는 신발을 더 차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여름철에는 비라도 내리면 돌은 미끄러진다. 하지만 나무는 그런 것이 없으니, 나무를 사용하여 툇돌대신으로 한 것 같다.


6. 그 외에 운조루에서 눈여겨 볼 것

현재 사랑의 뒤편에는 별당채가 있었다. 지금은 안채로 들어가는 후원이 되어있지만, 이 별당채의 자리를 돌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또 사랑채 누정의 마루밑에는 옛날에 사용하던 우마차의 바퀴가 놓여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나무로 만든 우마차의 바퀴와 멍석등도 아이들에게 옛 풍습을 알려줄 수가 있다.

안채의 기단 위에는 돌로 만든 구조물이 하나 보인다. 아래편에는 구멍이 뚫려있는데, 이것은 바로 돌로 만든 대야이다. 손을 씻거나 세수를 한 다음, 구멍의 마개를 열면 물이 빠져나간다.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운조루는 대가답게 여기저기 숨은 재미가 많은 곳이다. 여행길에 이곳을 지나게 되면 한 번 들려보면 좋을 듯하다. 아이들에게는 우리 역사와 함께, 아름다운 나눔의 마음을 알려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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