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 화엄사, 하왐사상의 중심지로,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화엄종을 널리 알리던 절이다. 신라 후기에는 도선스님에 의해 크게 확장되었다. 회엄사가 더욱 그 사세를 떨친 것은 고려 문종 때이다.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화엄사에 매년 곡물을 바치도록 허락해 주었다고 하니, 당시 화엄사의 사세를 알 수가 있다. 이는 고려가 국교를 불교로 했고, 화엄사는 화엄사상의 중심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 화엄사 일주문 밖에는 큰 창고를 짓고, 경상도와 잔라도에서 실어오는 곡물을 저장했다고 한다. 화엄사는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7년 만에 여러 건물들을 다시 세웠다. 그 뒤로도 여러 번의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많은 전각들이 중창되었다.



각황전 한편에 자리한 사자탑

화엄사 각황전 앞에 난 계단을 오르면 우측에 탑이 서 있다. 보물 제300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 이 탑은 <화엄사 사자탑>이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조성한 독특한 석탑으로, 네 마리의 사자가 길쭉하고 네모난 돌을 이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형태를 사찰에서는 '노주'라고 부르는데, 무엇으로 사용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일설에는 불사리를 모셔놓은 것이라 하기도 하고, 불가의 공양대로 쓰였을 것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기단은 이층으로 꾸며졌으며, 위층 기단을 네 마리의 사자가 머리에 받침돌을 이고 그 위에 비를 받치고 있다. 그 모습은 각황전 뒤 효대에 있는 국보 제35호인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을 모방했으니, 조각수법 등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조성시기도 사사자삼층석탑보다 뒤인 9세기경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비의 형태로 만들어진 탑이 독특해

탑을 받치는 역할을 하는 기단은 2단이다. 아래층 기단은 문양이 없는 단순한 석재를 이용해 꾸며 놓았다. 소박하면서도 꾸밈이 없는 모습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로 넘어갈 당시의 석조물인 듯 하다. 이 탑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인 위층 기단의 각 모서리에 사자상을 놓은 모습이다. 사자들은 비스듬히 밖을 바라다보고 있으며, 그 표정이 각각 다르다.

네 마리의 사자들은 연꽃받침 위에 앉아, 연꽃이 조각된 돌을 머리에 이고 있다. 아마 불교적인 형태를 강조하기 위한 조각품으로 보인다. 이런 조각을 보아 이 사자탑ㅁ이 사리탑이었을 것이란 조심스런 추정을 해본다. 네 마리의 사자가 몸돌의 받침돌을 이고 있는데, 탑신에는 직육면체 모양의 몸돌이 있다. 몸돌의 각 면에는 직사각형의 테두리를 둘렀으며, 그 안에 신장상을 조각하였다. 몸돌 위에는 1장의 판돌이 있는데, 밑면에는 연꽃이 새겨져 있고 윗면에는 반구형의 돌이 솟아 있다.



몸돌에는 네모나게 판 후 그 안에 신장상을 조각하였다.

무엇에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화엄사 사자탑. 아마 당시에는 소중한 절의 기물로 여겼을 것이란 생각이다. 수많은 불교 유물이 전하지만, 아직은 지식이 모두에 미치지 못함이 안타깝다. 사자탑을 돌아보면서도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지만, 짧기만한 지식을 어찌하랴. 해가 떨어지는 시간에 더 지체를 못하고, 아쉬움으로 뒤만 연신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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