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한 통 받았다. 평소 착하기로 둘째가라고 하면 서러워 할 녀석이다. 그런 착한 녀석이 울먹이며 말을 제대로 못하니 마음이 찡하다. 말을 들어보니 아무리 참고 살려고 해도 시누이들 꼴이 보기 싫어 못 살겠다는 소리다. 일만 벌어지면 시누이들이 찾아와 난리를 피운다고 한다. 남편까지 덩달아 맞장구를 치는 바람에 혼자만 애를 태우고 있다니. 녀석은 왜 자신은 매번 이렇게 모진 일을 당하고 살아야하는지 모르겠다고 울먹인다. 그동안 시집과의 불편한 관계로, 적지 않은 고통을 받은 녀석이다. 언젠가는 이혼을 하겠다는 녀석을 진정 시키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이제 겨우 한 숨 돌리고 살만하다고 하더니, 또 무슨 일이 벌어졌나보다, 무엇이라고 위로를 해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녀석이야 워낙 천성이 착한 놈이라 무엇이라고 위로라도 좀 해주었으면 좋겠지만, 그저 단순히 위로를 한다고 해서 녀석의 마음이 쉽게 편안해지지는 않을 듯하다. 워낙 말도 없이 혼자 고통을 감내하는 편이라, 딱히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조심스럽다. 그저 마음 단단히 먹고, 늘 나만 고통스런 것이 아니란 생각을 갖고 살라고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옛날 할머니들의 시집살이 이야기가 생각난다. 방송 일을 하면서 우리소리를 들려주는 프로그램이 있어, 늘 현장을 다니면서 채록을 하고 소리를 하신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녹음을 해 들려주고는 하던 프로그램이다. 그 프로그램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할머니가 한 분 계셨다. 부여에 사시는 분인데 당시 연세가 79세라고 하셨으니, 이제 살아 계시다고 하면 100수를 바라보는 분이다. 소리를 하시고 나서 한탄스런 시집살이에 대해 말씀을 하시는데, 듣고 있는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혔던 기억이 난다.

 

형님형님 사촌형님 시집살이 어쩝디까?

동생동생 말도마라 시집살이 개집살이

고초당초 맵다한들 시집보다 더매우랴

시집살이 삼년만에 이내손은 두껍잔등

삼단같은 머리채는 짚덤불이 되었구나

 

 

그 시집살이 노래의 일부다. 이 도입부만 들어도 시집살이가 어떤지 짐작이 간다. 요즈음 사람들이야 이런 시집살이를 해보질 않았을 테니 이해도 안 될 테지만 말이다. 오죽하면 시집살이를 개집살이라고 표현 했을까? 고초당초란 아마 그 당시에는 매운 것을 통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집살이가 맵다는 말은 자주 쓰는 말이다. 얼마나 힘든 시집살이였는지 벙어리 3, 장님 3, 귀머거리 3도합 9년이 지나야 시집살이를 안다고 했을까?

 

부여에서 만났던 할머니의 말씀을 들어보면 가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시집이라고 오니 때거리도 변변찮아. 그래도 밤이면 길쌈하고, 낮에는 밭에 나가 밭 매고, 그 때는 전깃불도 없었지. 호롱불 밑에서 졸다가 넘어져 불을 낼 뻔 하기도 했어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새벽부터 일어나 소 여물 끓여놓고, 밭에 나가 밭을 매다가 들어와, 참이며 점심 차려 들로 내가야 하고, 하루 종일 그렇게 들락거리면서 일을 하다가, 밤이 되면 또 길쌈을 해야만 했단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날이면 날마다 바뀔 것도 없다. 거기다가 겨울이면 먹는 것도 시원치 않아서 아이들에게 젖을 물려도 나오지가 않아당시야 분유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을 때란 생각이다. 더구나 있었다고 해도, 그런 것을 사 먹일 수 있는 형편이었을 테지만. 그런 세월을 살아오셨단다.

 

 

할머니를 만났던 세월이 벌써 20년이 훌쩍 지났으니, 벌써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을 것이다. 아마 지금은 이때보다 더 편한 생활들을 하고 있을 주부들이다. “그래도 아이들 키우고 서방 뒷바라지를 하면서 시부모까지 잘 섬겼지. 소리 한 번 크게 내지 못하고 살았으니시집살이의 고통이 무엇인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그동안 세월은 참 많이도 변했다. 요즈음에야 누가 그렇게 살 것인가? 그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가버리거나 헤어지기 일쑤다. 아마 이런 시집살이를 하라고 하면, 단 하루도 버티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남자들이 여자들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하는 세상이라고 하니 말이다.

 

그저 아침에 받은 전화 한 통 때문이다. 요즘 여성답지 않게 숨죽이고 살아 온 녀석의 푸념이라, 하루 종일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어쩌겠니. 할 말은 없지만 예전에는 이렇게 고생을 하면서 다 살았단다. 늘 블로그를 찾아오는 녀석이니 오늘도 이 글을 볼 것이다. 그 녀석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따로 없다. 그저 옛날보다는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니, 조금만 참고 살아보라는 말 밖에는. 오죽하면 개집살이란 표현까지 한 말이 시집살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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