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경기전 앞에 가면 성당이 있다. 전동성당이라 부르는 이 성당은 1908년에 불란서 보두네 신부가 성당 건립에 착수를 하여, 1914년에 완공했다. 벌써 역사가 100년이나 된 이 성당은, 중국에서 건너 온 100여명의 벽돌공들이 직접 벽돌을 구워 건축을 했다. 이 성당으로 인해 근처에는 중국인 거리가 생겨나기도 했다.

전동성당은 현재 국가 사적 제288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전동 성당을 세운 자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지이기 때문에 의미가 더 크다고 하겠다. 조선조 정조 15년인 1791년 12월 8일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바오로, 당시 32세)과 권상연(야고보, 당시 41세), 그리고 순조 원년인 1801년 10월 24일에는 호남의 첫 사도인 유항검(아우구스티노, 당시 45세)과 윤지헌(프란치스코, 당시 37세) 등이 이곳에서 순교를 했다.



믿음의 순교지에 세운 성당

우리나라 첫 순교지인 이곳에 세운 성당은 웅장하고 화려한 로마네스크 복고양식으로, 인접한 풍남문과 경기전 등과 함께 전통과 서양문화의 조화를 선보이고 있다. 첫 순교자인 윤지중은 현 충남 금산에서 명문가의 후손으로, 1791년 모친상을 당하였다. 그는 모친상을 당하면서 당시 유교식의 절차를 따르지 아니하고, 천주교의 제례절차에 따라 장례를 모셨다.

나라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천주교식의 장례절차를 따랐다고 하여, 외종사촌 권상연과 함께 1791년 12월 8일 오후 3시에 이 자리에서 참수를 당했다. 시체는 당시 국법에 따라 9일간이나 효시가 되었다.





피로 얼룩진 풍남문의 돌로 주추를 삼다

1801년 10월 24일, 사도 유항검과 윤지충의 동생인 운지헌은 대역모반죄라는 억울한 죄명을 쓰고 능지처참 형을 당했다. 그리고 호남의 첫 사도인 유항검의 목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풍남문의 누각에 매달려졌다고 한다. 그로부터 90년 정도가 지난 1889년 봄에 전동성당의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한 프랑스 보두네(한국명 윤사물) 신부에 의해서, 1908년에 착공이 되었다.

이 건물은 비잔틴풍의 건물로 지어졌으며, 설계는 프와넬 신부가 담당을 하여 1914년에 완공을 하였다. 당시 이 건물을 지을 때 주춧돌은 풍남문의 성벽을 이용했다고 한다. 사도 유항검의 피로 얼룩진 돌을 이용해 의미를 더하고 있다. 최초로 주임신부로 부임한 보두네 신부는 1859년 9월 25일 프랑스 아베롱 지방에서 태어났다. 1884년 9월 20일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1885년 10월 28일 한국으로 입국했다.




1889년 5월 전주본당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26년간 재직을 하였으며, 1915년 5월 27일 선종에 들었다. 보두네 신부는 본당과 사제관을 신축하였으며, 이 두 건물이 사적으로 지정이 되었다. 전동성당은 호남 최초의 서구식 건물이다.

한국 최초의 순교지 위에 세워진 전동성당. 입구는 마치 우리나라의 솟을대문을 연상케 한다. 중앙을 높이 두고 양편을 낮게 조성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외국 영화에서 나오는 고성을 연상케 하는 앞면과 측면은 볼수록 웅장하다. 안으로 들어가면 촘촘히 놓인 기둥 위에 나란히 보이는 창문들이 이채롭다. 연인들 두어 쌍이 앉아서 밀담을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다.




사제관 앞에는 배롱나무의 꽃이 지기 시작한다. 나무 밑에는 젊은 연인들이 다정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흡사 서구 어느 한가한 공원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저 젊은 연인들은 이곳이 피의 역사로 얼룩진 곳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는 것일까? 초가을 오후의 전동성당은 그렇게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하기만 하다.

  1. 이전 댓글 더보기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