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군 기산면 신산리 120에 소재한 이하복 가옥은 중요민속자료 제197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이하복 가옥은 한산이씨 중시조인 목은 이색선생의 18대손인 이병식(중추원의관)이 조선조 말인 19세기말에 안채 3칸을 짓고, 그 후 대를 이어 20세기 초에 사랑채와 행랑채, 아래채 등을 새로 지었다.

이하복 가옥은 안마당을 중심으로 ㄱ자형의 안채와 그 앞쪽으로 一자형의 사랑채, 안채의 앞 우측으로 광채가 있어 튼 ㅁ자형 배치를 하였다. 또한 안채를 드나드는 중문 밖으로는 사랑채와 대문으로 연결이 된 행랑채와 그 뒤편에 아래채가 자리하고 있다. 중부지방의 전통적인 농가로 안채의 앞쪽지붕이 뒤쪽보다 길게 처리가 되어있으며, 중문 밖으로 며느리의 독립적인 공간을 마련해 준 것이 특이하다.



주인의 설명을 받아 돌아 본 옛집

이하복 가옥을 찾아갔을 때는 대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인기척에 사랑채에 거주하시던 어르신이 몸소 나오시어 대문을 열어준다. 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우측으로 사랑채와 연결이 된 행랑채가 - 자형으로 배치가 되어있고, 그 맞은편에는 아래채가 자리하고 있다. 특이한 집 구조이다.

“이 아래채는 나중에 지은 것인데, 집에서 며느리를 들이면 이곳에서 생활을 하게 했던 곳입니다”

어르신의 설명이다. 중문을 지나 안채로 들어갔다. 안채는 원래 부엌과 방 2개로 구성된 3칸 집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왼쪽의 부엌을 늘리고 오른쪽으로 대청과 방, 그리고·부엌 겸 헛간으로 사용하는 헛청을 덧달았다. 사랑채는 왼쪽에 대문을 내고, 부엌과 사랑방으로 구성되었다. 사랑채의 우측 부엌에는 작은 쪽문을 내어 밖으로 출입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사진 위로부터 대문, 중문, 안채, 아래채

전체적인 구성은 길게 - 자 형의 두 줄로 나열된 집이지만, 공간 구성이 특이하고 살아가는데 있어 불편함을 주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한 것이다. 아마 새로 시집을 온 며느리가 생활을 하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마음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집안에 사용하던 가재도구가 그대로 박물관

대문 입구에는 ‘재단법인 청암문화재단’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안으로 들어가 집안을 돌아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한다. 수많은 책들과 많은 농기구들. 그리고 광채에 놓여진 그릇들이며 각종 집기들. 도대체 이 많은 것들이 왜 이 고택에 있는 것일까?





위로부터 안 광채, 아래 광채 그리고 전시가 되어있는 각종 기물

“이것들은 모두 어디서 구해오셨어요”
“예전부터 집에서 사용하던 것인데 물량이 너무 많다보니 이렇게 정리를 했어요.”
“이것만 해도 말할 수 없을 만큼의 가치가 있을 듯합니다”
“사람들은 옛 것이라고 자꾸만 버리지만, 그것이 우리의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죠.”

할 말이 없다. 이렇게 하나하나 정리를 하고 진열을 해 놓으면 훌륭한 교육자료가 된다. 역사 속에서 우리네와 함께 생활을 해온, 손때가 묻은 것들이다. 몇 번이고 주변을 돌아보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이리 방대한 자료를 본 적이 없다. 고택기행을 하면서 이하복 가옥의 남다른 점이 바로 이렇게 많은 생활도구 때문이다.

“정말 좋은 구경을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날은 덥고 땀은 흐르지만, 이보다 더 값진 선물은 없을 듯하다.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고 길을 떠나면서 ‘고맙습니다’를 속으로 되뇐다.




중문으로 내다 본 아래채와 장독, 그리고 안채 굴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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