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저 무료할 때면 찾아가는 길이 있다. 농촌진흥청 여기산을 찾아갔다가 만났던 길인데, 진흥청 정문에서 길을 건너면 서둔동 주민센터가 있다. 그곳에서 도로를 따라 앙카라학교공원 방향으로 내려가다가 보면, 세상에 이런 도로가 다 있구나 싶다. 우거진 나무들은 물론이고 뒤편으로 흐르는 서호천이 운치를 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요일 오후 날이 무덥다. 수원천을 걸을까 하다가 한참이나 들려보지 못한 이 길을 걷기위해 서둔동으로 향했다. 주민센터 뒤편을 잠시 들러본 후 천천히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건물들이 좌우에 있어 처음에는 조금 삭막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그도 잠시, 서호경로당 앞에서 안을 들여다보면 커다란 노송 한 그루가 반긴다.

 

이 길은 차가 다니는 도로변치고는 유난히 숲이 우거진 곳이다. 아마 건너편에 옛 서울농대가 있어서인지 모르겠다. 옛 서울농대 안에는 엄청난 굵기를 자랑하는 나무들이 들어찬 원시림이 자리하고 있다. 서둔동 일대에서 만날 수 있는 나무들도 그에 못지않다. 그저 길만 걸어도 숲 향을 그대로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길 전체가 쉼터인 이 도로 참 정겹다.

 

서호경로당을 지나면 바로 쉼터가 나온다. 등나무 아래 의자가 놓여있고 연세가 드신 분이 한담을 나누고 계시다. 등나무 밑을 지나 서호천을 바라다본다. 그동안 얼마나 가물었으면 서호천의 물색이 짙은 초록색이다. 비가 내려야하는데 걱정이다. 온 나라가 물 걱정으로 한숨소리만 난다니 말이다.

 

이 길은 참 희한하다. 조금만 걸어도 쉼터가 보인다. 커다란 나무 주변에는 반드시 긴 벤치가 놓여 사람들이 피곤한 다리를 쉴 수 있도록 하였다. 수원 어느 길을 걸어도 이곳보다 벤치가 많은 곳은 보질 못한 듯하다. 공원도 아닌 곳에 이렇게 많은 벤치를 놓은 것은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도로변에 있는 길이면서도 흡사 어느 숲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나는 이길. 이런 길이 있다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쉬엄쉬엄 길을 걸어 농대교 삼거리에 걸린 농대교 위에 오르면 서호천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이곳은 7월이 되면 하천 옆으로 난 산책로에 금계국이 흐드러지게 피는 곳이다.

 

 

 

 

서호천을 따라 걷다. 초록색 불빛에 마음이 아프다.

 

서호에서 물길을 따라 흐르는 서호천. 자연하천으로 꾸며진 서호천 양편으로는 산책로가 나 있다. 그 산책로 중간에는 시민들이 운동을 할 수 있는 운동기구들이 널려있다. 날이 더워서인가 산책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힘들다. 그보다는 비가 오지 않아 서호천의 물이 온통 초록색을 띠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올해 너무 가물어서 서호천 물이 초록색이 되었구먼. 남들이 보면 녹조현상이 일어났다고 할 것만 같네. 하지만 저건 녹조현상하고는 거리가 멀어. 비가 오질 않아 흐르는 물 양이 적다보면 저렇게 물색이 짙어 보이는 것이지.”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의자에 앉아 쉬고 계시던 어르신 한 분이 말씀을 하신다. 아마 서호천을 찍기 위해 온 갓으로 아셨나보다. 길이 좋아 그냥 걷고 싶어 왔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예전에 이 도로에 차들이 미어지게 다녔다고 하신다.

 

 

 

 

예전 서울대학이 이곳에 있을 때는 이 도로가 좁았지. 차들이 이곳으로 미어지게 다녔는데 지금은 이렇게 조용해졌어. 오늘은 유난히 차들이 다니질 않네. 이 곳이 길이 나기 전에는 여기도 모두 숲이었어. 아름드리나무들이 우거진 숲이었지. 그 나무들이 지금도 여기저기 서 있는 것이고.”

 

힘들여 일어서서 걸음을 옮기시는 어르신은 젊을 때부터 이곳에 사신 듯하다. 마을에 도로가 나기 전부터 이곳을 알고 계신 것을 보면. 세월은 주변에 많은 것들을 변화시킨다고 한다. 나도 이곳이 더 변하기 전에 자주 찾아와야겠다. 아름다운 길을 기억에서 잊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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