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에 직접 그린 엽서 한 장이면 족해

 

취재를 하면서 작가들을 만나면 분위기가 늘 굳어있다. 물론 미술에 대해서 문외한인 내 탓도 있지만, 작가들 대부분이 경직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항상 하는 인터뷰 취재지만 늘 긴장을 하는 것은, 혹시라도 질문에 부담감을 갖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16일 오후에 만난 임정민(, 46. 수원 정자동 거주) 작가. 지금까지 수많은 작가들을 취재하면서 가장 편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다.

 

난 초등학교 아이들을 15년 넘게 그림을 가르쳤어요. 그러면서 늘 아이들에게 너희들의 꿈이 바로 내 꿈이다라고 말을 하죠. 그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 그리고 생활을 하는 모습 등을 보면서 그 아이들의 꿈을 바라보고는 해요. 제 초기작품이 아이들과 관련된 그림이 많은 것도 다 그런 이유죠.”

 

수원시 팔달구 영동시장 2층 작가들의 공방인 아트포라 작업실에서 만난 임정민 작가는 처음부터 사람을 참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구태여 물을 것도 없이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과 오래도록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 마음 어딘가 동심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아직도 대학원에서 그림공부에 열중 해

 

임정민 작가는 어려서부터 그림이 좋았다고 한다. 그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림은 기억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대답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 수원대학교 미술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있다는 임정민 작가는 수원에 정착한지 20년이 되었다고 한다.

 

눈앞에 보이는 것을 그리기보다는 그 사물이 갖고 있는 자연적인 것을 그리려고 하죠.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자신이 느낀 감정을 그대로 그림으로 표현하고, 내가 직접 느낀 것을 직간접적인 경험들을 토대로 진실 된 흥분을 느껴보자는 것이죠.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영역이 존재하며, 혹은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차마 전달할 수 없었던 마음도 있을 수 있잖아요. 저는 예술의 본질은 치유하는 것이다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화면을 채워가려고 노력합니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연신 물감을 섞고 캔버스에 칠을 한다. 그 자리에서 작가는 작가대로, 나는 나대로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연관을 지으려고도 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일을 하면서도 용케 하나의 접점을 찾아낸다.

 

 

 

 

관객과 한 잔의 차를 마시고 싶다

 

제 그림은 Fall in memory(가을의 메모리)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침묵과 고독의 시간을 컵에 채우고 비우며 끝내는 것이죠. 사랑과 용기, 희망을 내 기억에서 나와 관객이 서로 공감을 하는 것입니다. 메모리 속의 컵은 세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컵을 통해 기억을 나누기도 하고, 기억을 잊기도 합니다.”

 

쉬지 않고 물감을 칠하면서도 이야기는 끊이지 않는다. 사진을 찍을 때 저는 얼짱 각도로 잘 찍어요. 그렇게 포즈를 취할까요?“라는 말에 웃고 만다. 심각하게 묻고 대답하던 그동안의 일들이 그야말로 작가의 말처럼 다 지워지는 듯하다.

 

저는 명함에 서양화가라고 되어있어요. 그런데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많은 그림을 그리진 않았어요. 적어도 그런 호칭으로 불리려면 그만한 노력을 해야 하잖아요. 저는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해요. 그림만 그리고 싶은데 가끔은 체력이 따라주지 못할 때도 있어요. 그런 때가 가장 아쉽죠.”

 

 

 

 

그림은 자신이 그린 엽서 한 장이면 족하다

 

한 가지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아이들은 초등학생 때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꿈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그런 꿈이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사그라졌다가, , 장년이 되면 다시 그 꿈이 되살아난다고 한다. 그래서 작가 자신은 아이들을 가르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이다.

 

어릴 때 아이들이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꼭 화가가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미술교사가 되는 것도 아니고요. 난 그 아이들이 그림을 배워서 이 다음에 나이를 먹어 여행하면서 자신이 직접 엽서에 그린 그림 한 장을 집이나 친지들에게 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자신이 그림을 계속하기 위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는 임정민 작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작업시간을 너무 뺏는 것 같아 일어서려고 하니, 뒤 따라 나오면서 한 마디 한다. “제 기사 제일 잘 써주셔야 해요.” 그 소리에 그만 참았던 웃음이 터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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