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애진(여, 54세)씨. 일본 동경 신주꾸애서 정애진 한국무용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춤꿈이다. 7살부터 춤을 배우기 시작해 오로지 춤을 추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런 진득함 때문인지 2009년에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모공연에서‘엇중모리 신칼대신무’라고 하는 영혼을 극락 왕생시키는 춤으로 그 실력을 한국에서 인정받았다.

 

“저는 안양이 고향입니다. 어려서부터 유성옥 선생님께 한국무용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곳에 선배 언니가 한 분 계셨는데 선생님께서 학원을 그 선배언니에게 넘겨주었죠. 그때가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그때부터 학원에서 선배와 함께 학생들을 지도 했어요”

 

오롯이 춤으로 살아 온 인생

 

54년을 사면서 춤을 추어 온 시간이 47년이다. 그리고 그 47년 동안 단 2년만 사회생활을 하느라고 춤을 떠나 있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45년을 춤과 함께 살아왔다. 그녀의 활동을 보면 정말 놀라울 정도이다. 경기도무형문화재 제8호인 승무. 살풀이 이수자이기도 한 정애진씨는 세계문화예술대회 대상을 수상했으며, 전국무용경연대회 군무대상을 받기도 했다.

 

10년전 일본인과 결혼하여 일본으로 건너간 정애진씨는 화성재인청보존회 동경지부 지부장,정민류 교방춤 보존회 동경지부 지부장, 영남 교방청보존회 동경지부 지부장 등을 역임하고 있다. 춤 욕심이 워낙 많아 모든 종류의 춤을 섭렵하고 있다. 동경에서도 정애진 한국무용학원 원장을 비롯해 부인회동경본부 국제전통문화교실 강사와 오오이즈미컬쳐 강사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고 이방자 여사 추모제에서 ‘신칼대신무’ 출 것

 

“일본에서 세 번째로 큰 절이 있는데 5월 11일에 고 이방자 여사 추모제가 열려요. 그런데 그곳에서 신칼대신무를 추기로 예정되어 있어요. 많은 공연을 하다보니 이렇게 초대도 받게 되네요. 영혼을 추모하는 행사니만큼 그곳에서 화성 재인청 춤인 신칼대신무를 추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선생님께 춤을 다듬으려고 내한했어요. 신칼대신무를 출 때 머리에 꽂는 넋전도 선생님께 받아가려고요,”

 

신칼대신무란 경기 무속 장단 중에 엇중모리 장단에 맞춘 춤이라 하여 ‘엇중모리 신칼대신무’라고도 한다. 신칼이란 무속에서 사용하는 신장대를 의미하는데, 긴 대의 양면에 한지를 늘어뜨린 것이다. 발탈의 보유자였던 고 이동안 선생의 전하는 말에 의하면 옛날 어떤 임금의 세상을 더날 때, 한 공주가 부친의 저승길에 잡귀 침범을 막고 그 길을 닦아 명복을 빌어준 데서 연유한 것이라고 한다. 춤을 충 때 신칼을 등에 업고 춤을 추는 것은 망자의 영혼을 등에 업고 저승으로 가는 형상이라는 것.

 

 

남편의 도움이 있어 춤을 출 수 있었다.

 

정애진의 일본에서의 활동은 전적으로 남편의 도움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회사에 출근을 하다가도 공연이 있다고 하면 열일 젖히고 달려와 사진을 찍어주고는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2012년도에 공연을 한 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활동을 하는가를 알 수 있다.

 

제4회 한일축제마당 신오오꾸보공연, 내리마구 민속무용제 참가 공연, 내리마구 오오이즈미홀 문화제 공연, 10월8일 동북미야기겡 지진피해지역 위문공연, 한국전통 歌・無・楽 요쯔야 구민홀 공연, 11월15일 제1회 정애진일한문화예술교류 무용발표회, 신주쿠4죠메 쯔노하즈 구민회관 공연, 11월18일 일한우호교류부인회35년 기념공연, 이케부크로 메트로폴리탄 호텔공연 등을 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2013년 7월 28일에는 정애진 한국무용연구소 제1회 발표회를 갖기도 했다. ‘춤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춤은 바로 나입니다’라고 대답을 하는 정애진씨. 자신은 춤과 자신을 한 번도 떼어놓고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녀는 춤을 출 때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춤을 알아갈수록, 그리고 더 오랜 사간을 출수록 점점 더 어려워져요. 어떤 때는 내가 무대에 올라 과연 춤을 출 수 있을 정도로 춤을 추기는 하는 것인가?라고 자문을 하기도 해요. 그래서 요즈음은 제자들에게 ‘춤은 너희들이 내 몫까지 추어라. 나는 그저 지도자로 남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도 하죠.”

 

일본에서 한국무용연구소를 연지 올해로 만 3년째란다. 그동안 매달 150만원 정도의 적자를 보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남편이 하는 말이 ‘모든 일은 3년을 해보아야 한다. 그래야 잘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라면서 적극적인 지원을 했다는 것. 이렇게 뒷받침을 해주는 남편이 있어 올해는 더 많은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

 

“한극에 와서 춤을 추고 싶어요. 좋은 공연이 있을 때 불러주세요. 일본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와서 공연을 했으면 좋겠어요.” 연습을 마치고 고성주 선생에게 하는 말이다. 올해는 한국 무대에서 정애진의 춤을 볼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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