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1시가 조금 지나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수원천 위에 걸린 매향교로 파발마들이 달려왔다. 정조대왕이 화성 행궁으로 납신다는 파발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세 필의 말은 그렇게 대로를 달려 행궁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뒤이어 많은 무리들이 행궁을 향해 열을 지어 행진을 했다.

 

218년 전 정조대왕은 개혁정신과 당대 과학의 힘을 집대성하여, 자연과 가장 잘 어울리는 화성이라는 아름다운 성을 축조했다. 이 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었으며, 사적 제3호로 지정이 되었다. 화성은 정조대왕의 지극한 효심과 개혁사상의 산물이다. 강한 국권을 지향하던 정조대왕은, 가장 강한 군대인 장용외영의 무사들을 훈련시켜 이 화성을 지키게 만들었다.

 

 

수시로 화성 행궁으로 행행을 한 정조

 

조선조 제22대 임금인 정조대왕은 재위 24년간 총 66회의 행행을 하였다. 이는 1년 평균 약 3회 정도를 행행을 하였다는 것이다. 정조대왕의 행행은 아버지인 장헌세자의 묘소 참배가 그 절반을 차지하였다. 1789년에 아버지인 장헌세자(=사도세자)의 묘를 양주 배봉산에서 화산으로 이장하여 현륭원(顯隆園)’이라 칭하고, 해마다 1월 혹은 2월에 신하들을 거느리고 원을 참배하였다.

 

<원행정례>에 의하면 정조대왕이 현릉원으로 원행을 할 때는 창덕궁 돈화문을 나서 수원 현릉원의 원소재실까지의 지명과 행궁, 교량 등을 순서대로 나열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그 밑에 2행으로 지역 경계나 지역 간의 거리를 기록해 놓았다. 이 원행정례에 의하면 시흥로의 경우 전 노정의 길이는 83, 교량 24곳이라고 밝히고 있다.

 

 

행궁 앞 상설 한마당 개막

 

5일 수원 화성 행궁일대는 일대 장관이 펼쳐졌다. 바로 능행차반차도에 기록된 8일간의 화산릉 행차가 재현이 된 것이다. 수원 화성 행궁 앞에서 1년 동안 펼쳐지는 화성행궁 상설한마당이 시작되는 날에 이루어지는 어가행렬로 인해, 주변은 사람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룬다.

 

능행차반차도는 정조대왕이 어머니인 경의왕후(=혜경궁홍씨)의 환갑을 기념하여 아버지 장헌세자가 묻힌 화성 현릉원을 행차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능행차반차도는 정조대왕화성행행반차도또는 화성행차도라고도 한다. 반차도란 궁중의 각종 의례장면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1795년 음력 윤 29일부터 16일까지 8일간 이루어진 정조대왕의 화성 행차에는 어머니인 경의왕후를 비롯하여 두 누이인 청연군주와 청선군주가 동행하였다. 그 외에 우의정인 채제공을 비롯하여 문무백관과 나인, 호위군사 등 6천명이 동원되었다. 정조대왕의 능행차반차도에는 이들 가운데 1,779명의 사람과 말 779필의 모습을 세밀하게 표현하였다.

 

파발 뒤에 이루어진 어가행렬

 

5일 이루어진 어가행렬은 연무대에서 화성 행궁까지의 길지 않은 거리에서 이루어졌다. 행렬 또한 약식으로 나타나기는 했지만, 그 장엄함은 그 적은 인원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당시의 모습을 기억해내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먼저 말 3필이 정조대왕이 화성 행궁에 행차함을 알리는 파발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뒤이어 경기감사, 훈련대장 등 말을 탄 정조대왕 당시의 인물들이 지나고, 뒤편에는 말을 탄 정조대왕과 어머니인 가마에 오른 혜경궁 홍씨가 이어졌다. 주변에 구경꾼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행궁을 행해 가는 정조대왕과 혜경궁 홍씨의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외국의 방송사들까지 촬영에 열심이다.

 

정말 멋있습니다. 이런 행렬은 수원이 아니면 어디서 볼 수 있겠습니까? 제가 수원시민이라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만 합니다. 정말 행복하네요.”

 

길에게 어가행렬을 구경하고 있던 한 시민의 말이다. 이렇듯 행궁 앞 상설한마당의 개막일에 만난 정조대왕. 20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대왕의 백성사랑과 그 품위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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