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 눈이 쌓였을 때 답사는 예측을 하기가 어렵다. 단순히 눈이 쌓인 것이 아니고 그 눈 속에 돌도 있고, 물도 흐르기 때문이다. 하기에 겨울철 답사는 늘 여기저기 멍이 들고 깨어지기가 십상이다. 그래도 겨울철에 답사를 나가는 것은 딴 계절과 또 다른 경치 속에 있는 문화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리 488번지에 자리하고 있는 명주사.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신흥사의 말사이다. 만월산에 자리하고 있는 명주사는 고려 목종 12년인 1009년에 혜명과 대주스님이 창건하여 비로자나불을 모신 화엄종 계통의 사찰이다. 명주사라는 사명도 혜명과 대주스님의 법호에서 기인했다고 한다.

 

 

몇 차례의 화재로 아픔을 겪은 명주사

 

명주사는 지금처럼 작은 사찰이 아니었다. 고려 인종 1년인 1123년에는 청련암과 운문암이, 그리고 조선조 숙종 2년인 1673년에는 향로암이 부속암자로 창건되었다. 정조 20년인 1781년에는 명주사 츨신의 고승인 인파스님이 원통암을 창건하였다. 그 후 헌존 15년인 1849년과 철종 4년인 1853년에 원통암이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중건하였다.

 

명주사는 철종 11년인 1860년 명주사가 있는 산 전체를 화재가 뒤덮여 명주사와 인근 암자들이 전소가 되었던 것을, 월허스님이 명주사를 1861년에는 인허스님이 운문암과 향로암을 중건하였다. 1864년에는 학운스님이 원통암을 중건하였다. 그러나 고종 15년인 1878년 다시 명부사가 소실되었고, 그 뒤 중건하였으나 대한 광무 원년인 1987년에 다시 소실이 되는 화마의 아픔을 겪은 절이다.

 

 

조선 후기의 뛰어난 부도군

 

명주사를 들어가기 전에 만날 수 있는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리 산58에 소재하고 있는 명주사 부도군.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16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이 부도군은 모두 12기의 부도를 한꺼번에 아울러 문화재자료로 지정을 하였다. 부도란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며,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두는 곳이다. 명주사에 마련된 이 부도 밭에는 모두 12기의 부도가 자리하고 있으며, 4기의 비석도 함께 남아있다.

 

양양 명주사를 찾아간 날은 눈이 쌓여있던 날이다. 길은 말끔하게 눈이 치워져 있었지만 부도 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길에서 치워놓은 눈으로 인해 무릎까지 눈이 빠진다. 걸음을 옮기기조차 쉽지가 않지만 그래도 답사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눈밭을 겨우 들어가는데 미끄러지고 말았다. 다행히 눈이 많이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하필 그 눈 속에 돌이 있을 줄이야. 정말 눈물이 찔끔난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보는 사람은 없지만 왜 그리 창피하던지.

 

 

명주사 부도군에 있는 12기의 부도 중에서 7기는 3단을 이루는 기단 위로 탑 몸돌 및 지붕돌을 갖추었는데, 사각의 바닥돌과 둥근 탑 몸돌을 제외한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다. 나머지 5기는 받침돌 위로 종 모양의 탑 몸돌을 올린 모습으로, 꼭대기에는 꽃봉오리 모양의 큼지막한 머리장식을 두었다. 5기의 비는 낮은 사각받침위로 비의 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갖춘 구조이다.

 

원래 이 명주사 부도들은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는데, 1994년 지금의 자리로 모두 모아 놓았다고 한다. 명주사 부도군은 역대 명주사에서 입적을 한 고승들의 부도로, 조선 후기 강원도 내의 부도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조각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원당형이 7기 석종형 5기와 비석 4기가 전해진다.

 

 

이 중 연파당 부도는 짝을 이루고 있는 탑비에 기록된 내용으로 보아 조선 순조 18년인 1818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함께 서 있는 4기의 비석은 순조 12년인 1812년에서 고종 20년인 1883년 사이에 세워진 것이다. 눈이 쌓인 날 찾아간 명주사 부도군. 눈이 쌓여 기단을 볼 수가 없어 아쉬웠지만, 또 다시 찾아가리라 마음을 먹는다. 문화재란 늘 찾아보고 보듬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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