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를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린 공주 계룡산 갑사. 대전에 거주할 때부터 수도 없이 들렸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에 들릴 때마다 이상하게 촉박한 시간이었던 터라, 경내조차 제대로 감상을 할 수 없었던 것이 늘 마음에 걸리고는 했다. 그래서인가 이번에는 곳곳을 돌아보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갑사 일주문을 지나 이로 오르다가 보니 안내판 하나가 보인다. 갑사구곡(甲寺九曲)이 있다는 것이다. 갑사구곡은 일제 강점기 때 윤덕영이라는 사람이 계룡산으로 들어와, 간성장이라는 별장을 짓고 계곡을 따라 올라가며 절경을 이루는 곳마다 구곡의 경물을 큰 바위에 새겼다는 것이다.

 

 

안내판에 적힌 절경 갑사구곡

 

갑사 구곡은 계룡산의 이름에 맞게 닭과 용을 주제로 장소의 정체성을 부각시켰다고 한다. 주역의 이치에 맞게 아름다운 곳을 선정했다고 하는 갑사구곡은 다음과 같다.

 

1곡 용유소 - 용이 노니는 소

2곡 이일천 - 수정봉과 연천봉에서 발원한 물이 합수되는 곳

3곡 백룡강 - 우기에 물보라가 마치 흰 용이 꿈틀대는 것과 같은 모습

4곡 달문택 - 연못으로 배를 띄워놓고 풍류를 즐긴 곳

5곡 금계암 - 금계포란 또는 천조인 닭으로 새벽을 알림

6곡 명월담 - 달 밝은 밤 잔잔한 물 위에 비치는 달빛이 마치 하늘이 물속에 잠긴 듯함

7곡 계명암 - 계룡산이 처음 열릴 때 산속에서 닭이 날개짓을 하면 울었다는 곳

8곡 용문폭 - 자연 폭포인 높이 10m 정도의 폭포가 낙수치는 절경

9곡 수정봉 - 산봉우리가 수정처럼 맑고 깨끗한 백색을 띤 암석으로 된 바위산

 

 

계곡을 따라 오르다

 

이런 내용을 보면 은근히 회가 동한다. 아직까지 계곡 쪽으로는 한 번도 내려가 보질 못했다. 모처럼 계곡 안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걸어본다. 흙길이라 그런지 발밑에 밟히는 감촉이 그만이다. 가끔은 돌부리에 걸리기도 하지만, 설령 넘어져 무릎이 까인들 무엇이 대수랴. 길을 따라 갑사 쪽으로 걷다가 보니 옛날에 지은 건물이 보이고 계곡 위로 다리가 걸려있다.

 

걷기 시작하면서 바위만 열심히 찾아본다. 혹여 어느 바위에 갑사구곡을 적어 놓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리 위에서 위아래를 살펴보니 저만큼 아래 글자가 보인다. 이일천(二一川), 두 곳에서 내려오던 물이 합수가 되는 곳이다. 그곳에서 자연산책로를 따라 위로 오르면 보물인 철 당간을 만나게 된다.

 

 

갑사 대적광전 앞에 서있는 보물 갑사승탑을 둘러보고 난 뒤, 계룡산 등산로를 따라 가면 우측에 갑사를 지을 때 짐을 나르느라 희생이 된 소들을 위하는 승우탑이 서 있다. 그 앞쪽에 제5곡인 금계암이 보인다. 그리고 계곡을 따라 위로 오르니 수월암이라고 바위에 각자를 한 글씨가 보인다.

 

누군가도 이 경치에 반했다

 

아마도 윤덕영이라는 인물 말고도 이곳의 아름다운 절경에 반해 많은 사람들이 글씨를 새겨 넣은 듯하다. 수월암에서 위로 조금 오르니 간성장이라고 음각해 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은계(銀溪)라고 파 놓았다. 그리고 보니 처음 계곡을 시작하는 곳에도 똑 같이 간성장이라는 글씨가 있었다. 아마도 그 처음의 자리가 윤덕영이 정자를 지었던 자리가 아니었을까? 암반 위를 구르는 계곡물이 마치 은처럼 맑아 보인다.

 

 

금계암을 벗어나 갑사 쪽으로 걷다가 등산로를 따라 용문폭포로 올라가는 길 우측 아래편 계곡 옆에 약사여래불입상이 서 있다. 그 계곡 위편 바위에 제6곡인 명월담이 새겨져 있다. 비록 9경중에서 찾아 낸 절경은 3경이지만, 이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 또한 행복이 아닐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시간을 내어 등산준비를 단단히 하고, 갑사구곡을 한 번 찾아보리라 마음을 먹는다. 문화재답사를 갔다가 만난 갑사계곡의 절경. 맑은 물이 흐르는 그 계곡에 단풍이 드는 계절에 다시 한 번 찾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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