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벽화골목 하면 누구나 다 ‘지동 벽화골목’을 먼저 떠올린다. 모두 5개년 계획으로 장장 3km가 넘는 벽화골목을 조성하는 지동은, 이미 많은 지자체들이 벤치마킹을 하러 몰려 올 정도로 나름 유명해졌다. 아마도 제일교회 종탑에 그려지고 있는 ‘축성도’까지 완성된다고 하면, 전국 어디서도 따라올 수 없는 벽화길이 조성될 듯하다.

 

하지만 벽화골목이 지동에만 있을까? 그렇지가 않다. 수원에는 각 주민센터와 마을만들기 센터들이 주축이 되어서 ‘마을르네상스’ 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벽화골목 등을 조성하고 있다. 지동의 벽화길과 화성, 노을빛 전망대가 유명 하듯, 서둔동의 앙카라 벽화 길과 앙카라 공원, 행궁동의 벽화골목과 수원천 등도 빼 놓을 수가 없다.

 

 

보완되어 가고 있는 행궁동 벽화

 

‘생태교통 수원2013’은 화성을 안과 밖으로 끼고 있는 행궁동과 지동 등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직접 시범지역과 맞물려 있는 행궁동 벽화 길은 요즈음, 눈에 띠지는 않아도 하나 둘씩 달라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늦은 소걸음처럼 하나씩 탈바꿈을 하고 있는 중이다.

 

3일(토) 행궁동으로 들어섰다. 행궁동은 수원천을 끼고 과거 우시장과 청과물시장이 있던 곳이다. 당시의 아픈 기억들이 아직도 수원천 한 편에 오밀조밀하니 집들이 몰려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좁은 골목에서는 금방이라도 구부정한 할머니가 지팡이를 손이 들고 나설 것만 같은 그런 골목이다.

 

 

그 주변에 문구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과거 팔부자들이 모여 있던 곳이기도 하다. 화성 축성을 마친 정조대왕은 ‘호호부실(戶戶富實) 인인화락(人人和樂)’이라고 했다. 즉 집집마다 부자가 되게 하고, 사람마다 즐겁게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마을에 팔부자를 불러들여 살게 하였다.

 

이곳에 모인 팔부자들은 정조대왕의 배려로 인해, 인삼과 갓을 만드는 말총 등에 대한 전매권을 갖게 되었다. 이 팔부자 거리에 모인 사람들은 대개 장사치가 아닌 유생들이었으며, 그 중 윤선도의 후손들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이곳을 ‘보시동’이라 명칭을 붙인 것도 정조대왕의 배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나름 독창적인 벽화를 조성해

 

지동의 벽화가 테마를 주제로 조성을 했다고 하면, 행궁동의 벽화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짧은 거리에 조성이 되었다. 지동은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모든 단계를 체계적으로 조성을 했다. 그리고 수많은 자원봉사자들과 골목에서 생활을 하는 주민들이 하나가 되어 공동작업을 했다.

 

하지만 행궁동은 지역의 특성상 그렇게 작업을 할 수가 없는 곳이다. ‘대안공간 눈’이 위주가 되어 그저 골목을 조금 더 아름답게 꾸미고자 노력을 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와 또 달라진 모습들이 보인다. 좁은 골목에 칠을 새로 했는가 하면, 골목 안담에 문이 하나 생기고 그곳에서 커피를 판다고 써 놓았다.

 

 

담장이가 타고 오르는 벽 한편에는 사랑의 잠을 통을 걸 수 있게 해 놓았다. 크게 변한 것은 없지만 변화고 있는 것이다. 행궁동만의 벽화 골목을 조성하기 위해 나름 애를 쓴 흔적이 보인다. 큰 변화는 없지만 조금씩 변화를 해가고 있는 행궁동 벽화 길. 그래도 주말이 되면 이곳을 둘러보기 위해 길을 묻는 관광객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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