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뒤뜰에는 상사화가 피곤했지.

여인네 입가

감추어진 미소처럼

늘어섰던 찔레나무들 사이에서.

 

그 날

달빛은 죽음과 흡사했지

덧문을 열고 내다보던 그의 얼굴위로

하얗게 드리워지던 달빛

장독대 뚜껑 위에 몰래 올라앉은 거미줄조차

필사적으로 헐떡였지

 

이제는

허물어져 가는 무덤 위

나비만 가끔 기웃거리는

그 집

 

 

최자영시인(, 51. 정자동 거주)의 시 나비의 흔적이다. 214일 수원시청 옆 작은 커피숍에서 만난 최자영시인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동안이다. 그리고 아직도 호기심 많은 소녀와 같은 시인이다.

 

어려서부터 써 온 일기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어요. 그리고 늘 일기를 써 왔죠. 젊어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20대에는 시를 써 노트 한 권을 꽉 채웠는데 그것을 잃었어요. 그 노트가 있었다면 꽤 많은 시를 갖고 있을 텐데요

 

최자영시인은 지금도 갖고 있는 시로, 한 권에 70편 정도의 시가 필요하다면 두 권 정도의 시집을 낼 수 있다고 한다. 2004년에 한국문인회에서 신인상을 받으면서 등단을 했으니, 올 해로 10년이 되었다. 시의 소재를 어떻게 찾느냐고 물었더니, 세상의 모든 사물이 보고 느끼는 것이 소재가 된다고 한다.

 

저는 남의 손을 보기를 참 좋아해요. 이야기를 할 때 상대방의 손을 보고 있노라면 그 안에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 있거든요. 보고 느끼는 것, 사물을 바라보다가 순간적으로 오는 느낌, 그리고 길을 가다가 만나게 되는 그림자 등 모든 것이 시의 소재가 될 수 있어요. 순간의 어떤 영감에 의해서 글을 쓰게 되죠.”

 

나를 위해 시를 쓰지만 독자의 느낌은 달라

 

최자영시인은 본인을 위해서 시를 쓴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을 보는 독자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기도 한다는 것. 그렇게 전혀 다른 느낌을 이야기하면, 그것이 오히려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시를 썼는데, 그 시를 읽는 독자는 슬프다고 할 때도 있죠. 아마 시라는 것의 양면성일 수도 있는 듯해요. 그렇게 독자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할 때면,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시를 계속 쓸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까요? 결국 나의 내적 사고를 갖고 시를 쓰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독자의 몫인 것 같아요. 사람마다 느낌은 다른 것이니까요

 

밖은 안개가 그득하다.

안개 주의보가 부슬부슬 내린다.

 

안개를 조심할 것

안개를 뛰어 넘어 다닐 것

절대로 헤매지 말 것

헤매다가 멈추지 말고

멈추어서 서성거리지 말 것

서성이다가 부딪혀도 아는 척 말 것

혹시라도 그저 지나치기

눈물겹게 쓸쓸해도

그리워하지 말 것

 

안개 주의보.

 

안개 속에서라는 최자영시인의 시이다. 조금은 슬픈 듯한 느낌이다. 그저 안개를 보고 지은 시 하나가 괜히 사람을 시큰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제 시가 조금은 슬프다고 해요. 아마 제가 안고 있는 슬픔 때문인가 봐요.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어요. 어느 분이 찾아왔는데, 제 시를 읽고 고마워서 인사를 하러 왔다고 해요. 제 시를 읽으면서 부모님을 잃은 슬픔이 복받쳤는데, 나중에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이 조금 수그러들었데요. 그래서 고맙다고요. 시도 슬픔을 치유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죠.”

 

자신은 슬픔을 표현했는데, 어느 독자는 그 시에서 깊은 사랑을 느꼈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단다. 그래서 시를 쓰는 것이 즐겁기도 하지만, 함부로 쓸 수는 없다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행복해

 

현재 최자영시인은 수원시인협회 사무국장의 소임을 맡아보고 있다. 그동안 그런 직책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그저 시만 썼지 그런 소임을 맡아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소임을 맡고 보니까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런 가운데서 제 나름대로 더 많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낯 선 사람들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재미있거든요.”

 

대화를 하면서도 연신 질문을 한다. 질문에 대답을 하다가보면 주객이 전도가 된 느낌이다. 그런 것을 재미있어 하는 최자영시인. 심성이 맑기 때문이란 생각을 한다. 앞으로도 좋은 시를 많이 써 달라고 부탁을 한다. 올 해는 시집 한 권을 내고 싶다는 최자영시인. 남들에게 많이 읽히는 시집이기를 바란다는 말에 기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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