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사는 수려한 불광산 도시자연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장안사 대웅전은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7호로서 신라 문무왕 13년인 673년에 원효대사가 척판암과 함께 창건하여 쌍계사라 했는데, 신라 애장왕 때인 809년에 장안사라 고쳤다 한다.

           

임진왜란 때인 1592년에 병화로 모두 소실되었다가, 인조 8년인 1631년에 의월대사가 다시 중창하였고 1941년 각현스님이 중수하였다. 1987년 종각을 새로 세우고 요사를 중창하고 단장하였다. 사천왕이 버티고 있는 대문을 지나, 정면에 석가여래삼존불과 후불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는 대웅전이 있고 왼쪽에는 응진전, 오른쪽에 명부전이 자리 잡고 있다.

 


대웅전 바로 앞에는 인도 등지에서 3차례에 걸쳐 들여온 석가모니의 진신사리 7기를 모시고 있는 3층 석탑과, 뒤편으로는 대나무 숲으로 둘러싼 산신각이 있다.


눈을 부라린 사천왕이 객을 맞이해


장안사 입구에 차를 대고 안으로 들어간다. 절문 앞에는 각종 석불들이 즐비하다.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달마대사를 커다랗게 조성을 해 놓은 것이다. 불광산 장안사라 쓴 현판이 걸린 문루 아래에는 사천왕이 양각이 되어 눈을 부라리고 있다. 사악한 잡귀들을 물리친다니 저런 표정이 딱 어울릴듯하다.

 

 


안으로 들어가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는 석탑과 그 뒤로 대웅전이 보인다. 절집 안은 오밀조밀하니 좁은 공간에 누각들이 정리가 되어 있다. 대웅전 좌편 명부전 뒤에는 극락전이 있는데 극락전 안에는 와불이 모셔져 있고. 이 와불 역시 부처님의 사라가 복장이 되어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장전이나 명부전, 혹은 극락전에 주불이 지장보살님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와불은 부처님의 열반 당시 모습이라고 하여 일부 국가에서는 와불을 모신 곳이 바로 명부전이 되기도 한단다.

 

 


척판구중의 전설은 곳곳에 전해

 

장안사를 돌아보고 나서 좀 더 위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가면 척판암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척판암은 원효사대가 수도생활 도중 천안통으로 중국 종남산 운제사 대웅전이 무너지는 것을 알고, 소반을 던져 대웅전에 있던 1천 여 명의 중국승려를 구했다는 전설에서 척판암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냥 소반을 던진 것일까? 어릴 적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에 들렸을 때 스님 한분이 들려주신 이야기가 바로 척판암에 계시던 원효대사의 이야기라는 것을 이번 만행 길에 깨달았으니 벌써 40년이 훌쩍 지난 뒤라 감개가 무량하다.


스님의 말씀은 원효대사가 천안통을 열어보니 운제사 대웅전이 곧 무너질 것 같은데 아무도 그것을 모르는 지라, 얼른 널판 하나를 주워 그곳에 「척판구중(擲板求衆)」이라고 적어 던졌는데 종남산 운제사 스님이 하늘을 보니 커다란 널판 하나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지라 그것을 보고 나서 스님들에게 얼른 나와서 저것 좀 보라고 소리를 쳤단다.

 

 


대웅전에 있던 스님들이 모두 달려나와 그 판자를 보는 순간 대웅전이 무너지고, 그 판자도 땅에 떨어졌는데 판자에는 척판구중이라 쓰여 있었다는 것이다. 즉 ‘판자를 던져 무리를 구한다.’라는·말이다.


이번 만행 길은 동해안의 정자 탐방을 우선으로 했기 때문에 결국은 척판암을 눈앞에 두고도 오르지를 못했다. 언제가 그곳을 올라 원효스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얻어가기를 바랄 수밖에. 그것이 바람따라 길을 걷는 나그네의 발길이라면, 언젠가는 꼭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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