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3일. 토요일이라 모처럼 시간을 내어 남한강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리라고 마음을 먹고, 길을 나섰다. 날이 많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겨울 날씨인지라 꽤 쌀쌀하다. 남한강 주변의 길을 걷고 있노라면, 답답하던 가슴이 시원해지고 머리가 맑아짐을 느낀다. 강 길을 걷는 즐거움은, 그 길을 걸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앞 강길을 걷다보면, 멀리 보이는 산들과 조화를 이루는 남한강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쌓아올린 모래더미가 산이 되어가고

 

그런데 앞을 보니 남한강 세 곳의 보 중 한곳인 여주보가, 바로 왕대리 앞에 만들어지고 있었다. 한쪽 옆으로는 모래와 자갈을 파다가 쌓아올린 퇴적물이 점차 산이 되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저렇게 많은 모래와 자갈을 퍼다 쌓아올리면, 강바닥은 자정능력을 잃게 된다. 그런데도 수질이 좋아진다는 말에는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다.

 

여주보를 바라보고 있는데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시는 분이 계시다. 여주보를 만드는 것을 보는데 답답하다고 대답을 했더니, 마음 아프게 그런 것은 무엇 때문에 보느냐고 하신다. 왕터에 사시는 이 어르신은 몇 년째 이 강 길을 갈으셨다고 하신다.

 

"마음이 아프세요?"

"그럼 저렇게 강바닥을 파헤치면 어떻게 해. 물고기가 씨가 마르는데."

"물고기가 씨가 마르다뇨?"

"저렇게 모래자갈을 바닥을 파서 퍼 가면, 그 모래자갈만 파 올리겠어. 치어나 물고기 알은 다 괜찮겠느냐 이거지. 아마 씨도 안 남을 거야. 그리고 이곳은 여울목인데, 여울목을 저렇게 파헤치면 물고기들이 어떻게 살아."    

 

  
▲ 모래더미 강바닥을 파 채취한 모래와 자갈이 산을 이루고 있다
ⓒ 하주성
여주보

 

나는 환경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러나 저렇게 강바닥의 모래자갈을 다 파내면, 수질이 나빠진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어르신의 말씀은 기분을 더 우울하게 만든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남한강가에는 소문난 매운탕집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집들이 이제 다 문을 닫을 지경이란다.

 

철새도래지에 철새는 없고

 

남한강은 겨울철이 되면 수많은 철새들이 날아드는 곳이다. 그만큼 철새들이 이곳에서 먹을 것을 구하기가 쉬웠다는 이야기가 된다. 왕대리에서 이포 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능서면 내양리가 있다. 앞으로는 양화천이 흐르고, 마을 뒤로는 남한강이 흐른다. 그래서 이곳은 겨울이 되면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곳이다.

 

내양리에는 지금도 민물고기 매운탕을 파는 집들이 있다. 하기야 고기를 잡을 수 없으니, 이제 이 집들도 양식 민물고기를 딴 곳에서 사다가 장사를 해야 할 판이다. 내양리 남한강가에는 철새도래지임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있다. 하지만 철새 한 마리 찾아볼 수가 없다. 돌아 나오는 길에 백석리 마을회관 앞에 계신 마을 분들에게 물어보니, 공사를 시작하고 철새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듣고, 보는 것마다 답답함 뿐이다.

 

  
▲ 모래더미 모래더미 위로 쉴새없이 덤프트럭들이 모래 자갈을 파다가 쌓는다
ⓒ 하주성
여주보

  
▲ 모래더미 모래더미 위로 쉴새없이 덤프트럭들이 모래 자갈을 파다가 쌓는다
ⓒ 하주성
여주보 현장

강 속 깊이 박히는 철재구조물들

 

여주보 현장을 바라보는데 한숨만 나온다. 보를 막는다고 철재 구조물을 강바닥에 엄청나게 박아놓았다. 저 구조물로 인한 피해는 또 없을 것인가? 날이 추운데도 굉음을 내면서 공사를 하는 모습들. 아마 약속한 공기 내에 마치겠다고 저 난리들을 피우는 것인지. 저렇게 급하게 하는 공사가 과연 제대로는 될지 모르겠다. '급히 먹는 밥은 체한다'고 했거늘. 그저 저 철제구조물로 또 강물은 얼마나 오염이 될 것인지.

 

  
▲ 철재구조물 강바닥에 깊이 박히는 철재구조물과 수위표시
ⓒ 하주성
여주보

공사를 하고 있는 강변 모래밭에 박힌 수위표가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밑에 보이는 '관리수위'는 평상시의 물의 높이일 테고, 위에 보이는 '계획 홍수위'는 보의 높이를 말하는 것일 텐데. 그 계획홍수위가 현재의 둑보다 낮지가 않다. 만일 국지성 호우라도 상류 쪽에 쏟아진다면, 그리고 상류의 댐을 열어젖힌다면, 저 물은 다 어디로 갈까?  

 

공사가 한창인 여주보 인근 모래밭가에 배 몇 척이 보인다. 저 배들은 무엇을 하는 배였을까? 저렇게 쓸쓸하게 보이는 몇 척의 배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 아름다운 강을 생활의 터전으로 삼아 물고기를 잡던 사람들의 모습도 이젠 더 이상을 볼 수 없는 것인지.

 

  
▲ 배 남한강가에 모여있는 배들. 무엇에 사용하던 배일까?
ⓒ 하주성
여주보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아름다움을 노래하던 남한강. 그리고 억새와 갈대가 하늘거리던 강 길.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물 위에 솟구치던 물고기들. 이런 모든 것이 꿈속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공룡과 같은 모습으로 굉음을 내며 강바닥을 파헤치는 중장비와, 연신 모래와 자갈을 날라다가 모래산을 쌓고 있는 덤프트럭들의 소리만 요란하다. 그 소리에 묻힌 깊은 한숨 소리가 저들에게는 들릴 리 없으니, 더욱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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