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시작 5분 전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공연장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주변 비를 피할 만한 곳으로 달려간다. 그래도 사람들은 공연장을 떠나지 않았다. 우비를 한 장 씩 받아든 사람들은, 다시 젖은 공연장으로 모여들었다. 아마도 공연장에 덩그렇게 놓인 채 비를 맞고 있는 뒤주가 마음에 걸리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좁디좁은 뒤주 안에 갇힌 사도세자의 몸부림은 사람들의 한숨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 좁은 통 속에서 몸조차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벽을 긁어대는 모습이 유리로 된 벽을 통해 그대로 사람들에게 보인다. 객석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아마도 200여 년 전 뒤주 속에 갇혀 숨을 거둔 사도세자도 저리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행위예술가 김석환과 부토무용가 서승아가 마련한 '사도세자의 환생'. 수원화성국제연극제의 일환으로 열리는 마당극의 대미를 장식하는 퍼포먼스 공연이다

 

 부토춤의 일인자인 서승아가 뒤주 안에 들어가 사도세자의 고통을 몸짓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도세자의 몸부림을 그대로 형상화한 부토무용

 

사람들에게 약간은 생소하기도 한 ‘부토[舞踏]’란 1960년대에 시작된 일본 현대무용의 하나이다. 부토무용에서는 배우의 몸과 표현이 분리되지 않는다. 평론가 심정민은 「부토는 ‘일어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시체다’라는 히지카타의 말이 대변하듯. 뒤틀리고 오그라들고 깡마르고 약하고 병들고 늙은, 그러므로 아름답기는커녕 건강해 보이지도 않는 몸을 표현한다.」고 했다.

 

한국 최초의 부토무용가이자 부토극단 천공요람의 대표인 서승아(여, 48세)와 서울국제행위예술제 운영위원인 김석환(남, 54세)이 수원화성국제연극제의 마당극 부분의 대미를 장식하는 퍼포먼스인 ‘사도세자의 환생’을 마련했다.

 

행위예술가 김석환은 커다란 비닐자루 안에 들어가 연희를 한다. 그 옆에 뒤주가 보인다

 

 비가 쏟아진 뒤에 관객들은 우의를 입고 관람을 하고 있다

 

김석환과 서승아는 때로는 둘이 되고, 때로는 하나가 된다. 두 사람은 영혼과 영혼이 만나 사도세자의 환생을 돕는다. 연꽃 한 송이는 사도세자의 환생을 상징한다. 그리고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향의 연기 속에서 사도세자는 다시 살아나 걸어 나온다. 200년 전에 뒤주에서 처참한 생을 마감한 사도세자의 영혼을 불러내어, 그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하자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공연이다.

 

오히려 관객들까지 고통스러워

 

40분 간의 공연을 보면서 관객들은 스스로가 뒤주 속에 갇힌 사도세자가 되었다. 그리고 환생을 한 사도세자를 공연마당에서 만나게 되면서 다시 깊은 고통 속에 빠져든다. 부토무용, 그것은 춤이 아니라 인간의 육신을 이용한 대단한 몸짓이었다. 그야말로 ‘일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시체’라는 표현이 적합할 듯하다.

 

행위예술가 김석환이 뒤주 속의 사도세자를 불러내는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뒤주 안에서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한 사도세자가 뒤주를 나왔다. 환생을 의미한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쏟아진 비로 공연장은 온통 물바다였다

 

환생을 한 사도세자의 몸은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뒤주 안에서 움츠려진 채로 생을 마감했으니, 뒤주 밖으로 나왔다고 해서 펄펄 날수는 없었을 것. 오히려 그런 서승아의 부토무용이 사도세자의 환생을 표현하는 데는 제격이었다. 몸을 사리지 않는 서승아의 몸짓은 관객들과 하나가 되었다. 그녀의 몸짓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도세자의 고통을 함께 느꼈기 때문이다.

 

부토무용의 대가 서승아에게 빙의 된 사도세자의 고통

 

마당공연장의 바닥은 빗물에 젖어있다. 그러나 그 빗물 속에서도 서승아는 몸을 사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빗물을 이용해 극을 더 윤택하게 만들었다. 그런가하면 휠체어를 타고 있던 어르신에게 다가가, 공연장으로 끌고 들어오면서 그 분의 다리가 되어드렸다. 관람객조차 그대로 공연의 배우가 되는 순간이다.

 

휠체어를 타고 있던 할머니를 모시고 나온 서승아. 행위예술에는 관객들도 곧잘 배우가 된다

 

 부토무용의 일인자라는 서승아가 사도세자의 고통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게 장안공원에 되살아난 사도세자는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는 뒤편에 있는 노대 형상물 꼭대기에서 날개를 달고 훨훨 날고 있었다. 그런 구조물까지도 이들에게는 훌륭한 무대장치가 된 것이다. 이런 모든 돌발적인 행동은 각본에 있던 것이 아니라, 즉흥적인 생각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행위예술을 마친 부토무용가 서승아. 온 몸으로 표현을 한 사도세자의 아픔으로 인해 그녀의 무릎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블록이 깔린 마당공연장에서 뒹굴다 보니 생긴 상처였다. 그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옷 밖으로 벌겋게 배어나왔지만, 그녀의 몸짓은 오히려 강해지고 있었다. 그녀의 일그러진 몸에서 자유를 찾은 사도세자는 그렇게 훨훨 날아가 버렸다.

 

공연장 뒤편에 설치된 노대의 모조형상물 위에서 서승아는 날개를 얻었다. 200년만에 환생한 사도세자는 그렇게 자유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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