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평읍에서 청원군 초정 방면으로 가다가 보면, 남하2리 둔덕마을이나 조금 더 지나 남하1리 솔모루 마을에서 미륵마을로 접어드는 길이 있다. 이곳은 증평에서 유명한 두레마을이 조성되어 있는 곳이며, 매년 두레에 관한 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증평군 증평읍 남하리 133 - 5에 해당하는 이곳에는 세구의 석불입상이 서 있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인 석조미륵보살입상

 

이 중에서 가장 큰 석불입상은 미륵보살입상으로 현재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8호로 지정이 되어 있으며, 그 옆에는 작은 석불 2기가 나란히 서 있다. 이곳을 미륵당이라고 부르는데, 예전에는 이곳이 절터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 구의 석불은 모두 마을 쪽을 바라보고 서 있으며, 석불입상을 바라보고 왼쪽에는 미륵보살입상이 서 있고, 중간과 좌측에는 작은 석불입상이 두 기가 서 있다.

 

 

보살입상은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아랫부분은 아직도 땅 밑에 파묻혀 있어서 정확한 크기를 알 수가 없다. 다만 땅 위로 솟은 부분은 3,5m 정도로 석불입상치고는 큰 편에 속한다. 이 석불입상은 일석으로 조성을 했으며, 머리에는 높은 보관을 쓰고 있다. 충청지역에서 보이는 거대석불의 일종으로 보인다.

 

팔찌를 끼고 있는 특별한 석불입상

 

이 미륵보살입상은 얼굴 전체에 가득 미소를 띠고 있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며 이마에는 백호가 양각이 되어 있다. 이 미륵입상은 양쪽의 팔목에 팔찌를 끼고 있어 특이하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펴 배위에 붙이고, 왼손은 연꽃을 들고 가슴까지 끌어 올리고 있다. 법의는 통견으로 두 팔로 흘러내림 표현을 했고, 배 아래에는 활모양의 주름이 조각되어 있다.

 

 

법의나 기타 여러 가지 모습의 형태로 보아 10세기인 고려 초기에 조성한 석불로 보인다. 아마 이곳에 있었던 절터에 모셔 놓았던 석조보살입상으로 보이는데, 눈과 코 입 등이 아직도 원형보존이 잘 되어 있어, 선명하게 얼굴 표현을 알 수 있다. 안면에 비해서는 어깨 폭이 좁은 편인 이 석조보살입상은 전체적으로 보아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부처님도 양약수술 하셨나요?

 

석조보살입상을 바라보면서 그 우측으로는 두 기의 석불이 서 있다. 높이는 각각 1.3~1.5m의 석불들로, 이 석불입상도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두 기의 석불이 제작연대가 다르고, 그 위치도 이곳에서 조성된 것은 아닌 듯하다. 아마 딴 곳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온 듯한데, 그 원래의 자리를 알 수가 없다.

 

 

 

 

이 두기의 작은 석불은 한 마디로 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맨 우측에 있는 석불의 얼굴은 시멘트로 얼굴과 팔을 발라놓았다. 얼굴은 눈과 코, 입을 조성했는데 우스꽝스럽다. 팔도 시멘트로 발라 놓았는데, 그 역시 조악하기가 이를 데 없다.

 

시멘트 칠이 오히려 원형을 훼손해

 

중앙에 있는 작은 석불은 안면과 목 부위를 시멘트로 발라놓았다. 얼굴의 안면이 훼손이 된 것을 보수를 한 것인 듯도 하다. 그런데 눈을 너무 밑으로 처지게 그려 놓은 모습이, 자칫 원형을 훼손하지나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코는 주먹코로 갖다가 붙이고 입 역시 조그맣게 선을 그어놓았다.

 

 

 

 

증평읍 남하리 두레마을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석존입상들. 작은 두 기의 석불은 언제 이곳으로 옮겨졌는지 모르지만, 자칫 보수를 한다고 해 놓은 것이 오히려 더 훼손을 시킨 결과가 되었다. 함께 답사를 한 분이 하는 이야기. "부처님이 언제 저렇게 성형을 하셨는지. 돌팔이 의사가 마구잡이도 고치셨네."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만 더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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