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 돌아서 바쁜 숨을 헐떡이며 오른 적상산(1,034m). 덕유산 국립공원 내 소백산맥에 있는 적상산은, 한국 백경 중 하나로 손꼽힌다. 상산(裳山) 혹은 상성산(裳城山)이라고도 불리는 적상산은 사방이 깎아지른 듯한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을이 되면 온 산이 빨간 치마를 입은 듯 하다고 하여 적상산이라고 했다는 이 산 정상 밑에 적상산성이 자리 잡고 있다. 10월 중순 답사일정의 끝 날에 찾아간 적상산성은 붉은 나뭇잎이 떨어져 성곽주변을 온통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적상산성은 붉은 나뭇잎이 떨어져 성곽주변을 온통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성곽 안편의 높이는 현재는 1m 남짓하고, 넓이도 1m정도 되게 쌓여있다.


사적 제146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적상산성은 언제 축성이 되었는지는 확실치가 않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이용해 축성을 한 산성은 보기에도 천연의 요새다. 성곽의 높이는 현재는 1m~1m 50cm 남짓하고, 넓이도 1m정도 되게 쌓여있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험한 지세로 인해 성의 구실을 충분히 할 것 같다.

 

총 길이 8,143m에 이르는 적상산성은 본래 동서남북에 4개의 성문이 있었고, 성문에는 2층으로 된 문루가 있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그 터만 남아있다. 안국사 주차장 밑에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적상산성 호국사비가 남아있어, 이곳 산성 안에 사고를 짓고 사고를 지키는 승군을 모집하던 호국사가 있었음을 알려준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적상산성 호국사비가 남아있다.

  
가울이 되면 온통 붉은 치마를 펼친듯 하다는 적상산. 성곽 주변도 온통 붉은색으로 닾였다.


적상산성은 고려시대 거란의 침입이 있었을 때는 마을 주민들이 산성으로 피난을 하였으며, 고려 공민왕 23년인 1374년에는 최영 장군이 탐라를 토벌한 후 귀경길에 이곳을 지나다가 산의 형세가 요새로서 적당하다고 하여, 왕에게 축성을 건의하기도 했다. 그 후 여러 차례 이곳에 산성을 축성할 것을 건의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 산성의 형태로 보아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아마 그 후 이 산성의 중요성을 느껴 증축하기를 건의했을 것이다.

 

  
적상산성은 고려시대 거란의 침입이 있었을 때는 마을의 주민들이 산성으로 피난을 하였을 정도로 난공불락이다

  
낙엽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적상산성

 

산성을 따라 거닐어본다. 저 밑에 가물거리는 곳에 마을이 보인다. 그 위로는 깎아지른 절벽이 있어, 이곳을 적이 기어오르기란 수월하지가 않을 것 같다. 설령 이곳을 오른다고 해도 성벽 자체를 허물어 버린다면, 오르기도 전에 다 돌에 묻힐 것만 같은 형국이다. 축성을 한 돌은 이리저리 모서리가 날카롭다. 그런 자연스런 돌들을 다듬지도 않고 쌓아올렸다. 성곽 주변은 온통 붉다. 성벽에 난 작은 배수구에도 붉은 단풍이 쌓여, 또 다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적상산성에서 내려다 본 마을. 저 밑에 가물거리는 마을이 있다. 저곳에서 적들이 기어오를 수가 있었을까?

  
성에 나있는 배수구에도 온통 붉은색으로 도배를 하였다.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오랜 세월 이 산을 지키고 있었을 적상산성. 가을이 깊어 그 마지막 불을 태우고 있을 때 찾아간 산성이다. 일요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안국사를 찾아든다. 적상산 정상을 밟아보기 위해서다. 산성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보니, 이 높지 않은 성곽이 얼마나 자연과 동화가 되어 있는지를 깨닫는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축성. 우리 선조들의 자연과 하나 됨이 참으로 놀랍다. 늦가을, 붉은 칠을 한 적상산성은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오랜 세월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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