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이 앞을 흐르는 남한강 상류의 푸른 물, 그리고 그 안에 냇돌을 지나 만나게 되는 소나무 숲. 우리가 흔히 ‘청령포’라고 하는 곳이다. 청령포는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단종의 유배지로, 1971년에 강원도 기념물 제5호로 지정이 되었다. 숙부에게 자리를 내주고, 스스로 상왕이 되었던 어린 조카 단종.

조선조 제6대 임금인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했다. 물론 기록에는 양위라고 되어있겠지만 말이다. 그 후 1446년 성삼문, 하위지 등 사육신의 단종복위 움직임이 사전에 발각되자, 단종은 노산군으로 격하되어 배를 타고 남한강을 따라 상류로 오르다가 이포에서 배를 내린다. 그리고 육로로 여주의 어수정에서 목을 축인 후, 고달사지를 지나 문막, 주천을 거쳐 이곳 청령포에 유배가 되었다.

오직 뱃길만이 접근이 가능한 ‘청령포’와 ‘관음송’

청령포는 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들어갈 수가 없는 곳이다. 삼면이 남한강 물줄기가 휘돌아드는 곳이며 물살이 거센 곳이다.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어 접근을 할 수도 없다, 그 어느 곳으로도 밖으로 출입을 할 수가 없는 곳이다. 마치 섬과 같은 이곳 청령포에는 단종의 슬픈 역사를 지켜 본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어수정'은 현재 골프장 안에 있다. 이 어수정은 단종이 유배를 가다가 목을 축였다는 곳이다


관음송(觀音松), 이 나무는 그저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듯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흔히 보아오던 그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와는 많이 다르다. 수령이 600여년이나 되었다는 이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30m, 가슴높이 둘레가 5.2m 정도에, 가지 길이는 동·서쪽이 22m, 남·북쪽이 19.5m 정도이다.

단종은 어수정에서 목을 축인 후 이 고달사지를 지나 여주군 북내면으로 들어선다. 이곳에는 노산군으로 강등이 되어 유배길에 오른 단종이 쉬어갔다는 바위와 '노림'이라고 부르는 숲이 있다. 일설에는 단종이 흥원창까지 갔다고도 하나, 여주지역의 많은 지명에서 여주를 거쳐 갔음을 알 수 있다 

 

지상에서 1.6m 정도 되는 곳에서 두 갈래로 갈라진 이 소나무는, 단종이 유배시절 이 갈라진 곳에 앉아 소일을 했다는 것이다. 관음이라는 말도 단종과 연관이 있다. 즉 단종의 '슬픈 유배생활을 보았으며(=觀), 이야기 소리를 들었다(=音)'는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소리를 들은 것일까? 아니다, 그 구슬픈 소리는 이야기가 아닌 단종의 슬픈 울음이었을 것이다.

단종 임금은 유배생활을 하면서 이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무엇을 했을까? 때로는 서북의 한양을 바라보고 그리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짓기도 했을 테고, 때로는 동쪽의 흐르는 강물을 바라다보면서 이 좁은 곳에서 나가고도 싶었을 것이다. 어린 단종임금은 아마 어디를 보나 자신의 처지가 슬퍼 울음으로 날을 보냈을 것이다. 그 슬픔을 묵묵히 바라다보며 함께 한 소나무는 그 후 나라에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껍질이 검게 변했다고 한다. 그리움에 속이 타버린 단종의 마음이 전해져 나라걱정을 하는가 보다.

단종이 이 갈라진 소나무에 앉아 슬피 울었다고. 이 나무는 단종의 이야기 소리를 보고 들었다고 하여 관음송이라고 하지만, 이야기가 아닌 울음소리 였을 것이다.


임은 떠나고 세월만 남아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관음송을 보기 위해, 청령포를 찾아 영월 땅에 들어설 때마다 비가 내렸다. 세 번이나 찾았지만 그 때마다 쏟아지는 비로 인해 청령포를 들어가질 못했다. 아마 영월이라는 곳이 단종임금의 슬픈 사연이 많은 곳이다 보니, 갈 때마다 눈물이 되었는가 보다.

네 번째 찾았을 때 비로소 관음송을 볼 수 있었다. 주변에 나무들보다 유난히 높게 자란 관음송. 가지는 마치 춤을 추는 듯하다. 갈라진 나무줄기 위에 잔가지들은 이리저리 어지럽게 굴곡이 졌다. 마치 단종임금을 위로하기 위해, 나무가 스스로 춤을 추는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떨어져 이곳 고도와 같은 청령포에서 날마다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단종을 위해 관음송 스스로 춤을 추지는 않았을까?



그 슬픈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들은 연신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세월이 흐르면 사람들은 저렇게 모든 것을 다 잊고 살아가는데. 관음송 한 그루만이 그 슬픈 역사를 기억하는 것인지. 단종을 위로하느라 추던 춤을, 오늘도 멈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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