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요상해서인가? 아니면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 세상이라, 더 이상은 말이 필요하지 않아서인가? 이천 대포동의 석불은 아예 입 부분이 없어져 버렸다. 이천 단월동에서 행죽 방향으로 가다가 보면 길 가에 석조여래입상 한 기가 서 있다. 정확한 소재지는 이천시 대포동 산123 - 1번지이다. 현재 이천시 향토유적 제11호로 지정이 된 이 석불은, 고려중기의 거대석불의 한 유형으로 보인다.

지난 해 5월에야 제 모습을 드러내다

이 석조여래입상은 올 5월까지만 해도 하반신이 땅 속에 묻혀 있어, 정확한 크기를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2009년 5월 하반신을 드러낸 석불입상은, 높이가 3.6m의 거대석불로 어깨 폭이 96cm 정도이다. 이 석불입상의 이마에는 큼직한 백호공이 있어 보주를 박았던 흔적이 있다. 두 귀는 떨어져 나갔으며, 코 밑으로 입과 턱 부분은 심하게 파손을 입고 있다.

이 석불입상이 서 있는 곳의 뒤편을 '미륵골'이라 하고, 앞으로 펼쳐진 벌판을 '미륵댕이들'이라 이름을 붙인 것도, 이 석불입상과 관계가 지어지는 것은 아닌가 한다. 이 마을을 대포동이라 부르는 것으로 보아, 예전에 이곳이 물이 있었던 곳으로 보인다. 석조여래입상이 서 있는 곳에서 가깝게 원두천과 자월천이 흐르고 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과거에 이곳이 큰 내가 형성이 되어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요대와 손의 모양이 눈길을 끌어

얼굴 등 상반신이 심하게 파손이 된 것에 비해, 땅 속에 묻혀있던 하반신은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허리 부위에 두른 요대는 그 복판을 묶은 결대로 조각을 했다. 수인은 오른손을 가슴에 들어 손바닥을 밖으로 향했다. 엄지와 검지를 마주 대하고 있는데, 손바닥에는 손금까지 새겨 놓았다.




하반신의 밑은 법의가 발목까지 덮고 있으며, 맨발을 벗은 발가락이 뚜렷하다. 상체에 비해서 하체가 짧은 형태로 구성이 되어있어, 조금은 균형이 맞지 않은 듯하다. 이 지역에서 나타나는 고려불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석조여래입상. 그동안 땅 속에 묻힌 부분을 놓고 분분한 의견들이 많았지만, 완전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날 수가 있어 다행이란 생각을 한다.


심하게 파손이 된 얼굴, 왜일까?

대포동 석조여래입상의 얼굴부분을 보면 그 어느 곳 보다도 심하게 훼손이 되어있음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얼굴이 심하게 훼손이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주술적인 사고에 의해서다.
과거에는 성기석이나 석불의 코 등을 갈아내어 그것을 이용해 득남을 할 수 있다는 주술적인 사고가 있었다. 그런 이유로 많은 석조물들이 피해를 입었다.
둘째는 억불정책에 의한 훼손이다.
조선조에 들어와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해 불상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생겼다고 본다. 많은 불상들이 이 때 파괴 및 훼손을 당했다는 것이다.
셋째는 자연적인 파손이다.
석조물을 조각할 때 두상과 몸 부분을 이어주는 목 부분이 얇게 만들어지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금이 가고 파손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자연적인 훼손도 간과할 수가 없다.
넷째는 일제에 의해서 많은 문화재들이 수난을 당했다.
일제는 우리 문화재를 수 없이 찬탈을 해가면서, 지역에 있는 석조물 등을 훼손했다. 특히 마을에서 영험하다고 소문이 난 석조물들은 더 많은 피해를 당했다고 한다. 가져갈 수가 없는 것들에 대한 훼손일 경우도 있다.
다섯째는 타종교에 의한 훼손이다.
타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 의한 무분별한 훼손도 적지 않다. 전국에 있는 장승이나 단군상 등을 훼손한 사람들의 몰지각한 행동과 같이 석불도 이들로 인한 훼손을 당헸다.



이천 대포동의 석조여래입상이 어느 시기에 어떻게 훼손이 되었는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얼굴의 전부분이 심하게 훼손이 되고, 어깨와 목 부분에 집중적으로 훼손을 가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대개 인위적인 훼손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이유야 어떻든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더 이상의 훼손만은 방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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