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저무는 12월 22일은 일 년 중 해가 가장 짧다는 ‘동지(冬至)’이다. 동지에는 붉은 팥죽을 쑤어 집의 여기저기에다가 뿌린다. 한 마디로 모든 잡귀들이 얼씬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잡귀들은 붉은색을 싫어하기 때문에, 예전부터 이런 풍습이 전해진다. 아마 팥죽을 한 그릇 먹는 것도, 알고 보면 내 몸 자체를 잡귀에게서 보호하려는 뜻이었을 것이다.

아침에 아우한테 가니 동짓날 팥죽 쑬 것을 미리 준비를 한다고 장을 보러 나간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이 집에 찾아오니, 적잖이 팥죽을 끓여대야 할 것이다. TV를 보고 앉아 있다가 갑자기 ‘꾼’이란 단어 생각이 난다. 어째 갑자기 ‘꾼’이란 말이 생각이 날까. 아마도 TV 화면을 통해 보이는 정치인들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국어사전에서 ‘꾼’이란 말을 찾아보았다.


‘꾼’은 나름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

<꾼>이란 [명사] ‘즐기는 방면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즐기는 방면의 일에 능숙한 사람이라. 그래서 인터넷을 하는 사람들을 ’누리꾼‘이라고 하는 것인지. 그런데 그냥 하는 것이 아니고, 즐기면서 하는 사람이란 뜻이란다. 누리꾼이란 결국 ’누리‘와 ’꾼‘의 복합어인 듯. 그 뜻이 인터넷 안에서 못 갈 곳이 없으니 ’온누리‘를 다닌다는 것인지, 아니면 즐긴다는 것을 ’누린다‘로 바꾼 것인지는 모르겠다. 워낙 어휘력도 부족한 내가, 국문에도 문외한이니 말이다.

기실 과거부터 많은 ‘꾼’이란 밀을 사용했다. ‘꾼’이란 자신이 즐기면서도 남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고 함께 공유한다는 뜻으로 많이 쓰였다고 늘 생각을 한다. 즐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그 즐거움을 남들과 공유를 하고, 나름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 꾼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많은 꾼들은 나름대로 사회의 일원으로 생활을 하면서, 남에게 이런저런 즐거움을 주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란 생각이다.

○ 농사꾼 /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 꾼들은 농사를 지어 나만 배불리 먹는 것이 아니다. 예전 농사를 지으면서 부르는 농사소리에 보면 ‘이 농사를 얼른 지어 나라님께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선영봉제 마친 후에 처자권속 배불리세’라는 사설이 있다. 즉 농사꾼이란 단순히 나만 잘 먹는 것이 아니고, 나와 이웃, 그리고 나라까지 걱정을 했다.

○ 장사꾼 / 장사를 한다는 것은 이문을 남기기 위해 한다. 하지만 그 이문을 그냥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도 이문을 남겨 생활에 보탬을 주지만 필요한 물건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날라다 주고 그 대가를 받는 것이니 서로 상부상조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 풍물꾼 / 풍장을 치는 사람을 이야기한다. 전문적인 기예를 펼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들도 자신의 기예를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함께 즐김이라는 것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자신이 노력을 하여 갖게 된 예인으로서의 능력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줌으로써 함께 공유를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춤꾼, 소리꾼 등 다양한 예능의 전문가 집단이 있다고 하겠다.

○ 상여꾼 / 출상을 할 때 상여를 메는 사람들을 말한다. 예전에는 영구차로 씽~ 하고 장지로 가는 것이 아니고, 꽃상여를 만들어 여러 사람이 상여를 메고 상엿소리에 발을 맞추어 장지로 향하고는 했다. 이 안에 발을 못 맞추는 짝발이라도 있으면 곤란을 당한다. 이렇게 마음을 합하여 상여를 메는 사람들을 상여꾼이라 한다. 그리고 그 앞에서 선소리를 하는 사람을 ‘향두꾼’이라 한다. 이 향두꾼은 한 마디로 상여꾼을 인솔하는 지도자인 셈이다.


그러고 보면 꾼이란 참 많은 노력을 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말이다 여기서 정말 알 수 없는 한 가지가 자꾸만 날 괴롭힌다. 꾼이란 다 좋은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꾼도 있기 때문이다. 사기꾼도 있고 훼방꾼도 노름꾼도 있기 때문이다.

꾼에도 종류가 있어

‘사기꾼’을 찾아보니 [명사] ‘사기를 일삼는 사람. 사기사(詐欺師). 사기한(詐欺漢)’이라고 되어 있다. 물론 사기란 남을 속여 자신의 이익을 채우는 사람이란 뜻이다. ‘훼방꾼’이란 남의 일에 훼방을 놓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니 좋은 꾼이 아님은 자명한 일이다. ‘노름꾼’이야 노름에 미쳐 가정을 돌보지 않는 사람이니 오죽하리오.

그러고 보면 ‘누리꾼’ 중에도 같은 이름을 갖고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다. 남에게 좋은 정보를 주고 즐거움을 주며, 양식이 될 만한 글을 쓰는 사람은 <좋은 누리꾼>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유 없이 남을 비방하고 폄하하면서, ‘카더라’ 식의 글을 적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나쁜 누리꾼>에 속할 것이다. 좋고 나쁜 것은 스스로가 판단하길 바란다.

그런데 이런 같은 이름을 가진 ‘꾼’이 또 하나가 있다. 바로 ‘정치꾼’이다. 정치꾼이란 그야말로 정치를 하는 사람이다. 흔히 ‘정치인’ 혹은 ‘정치가’라고 표현을 하지만, 이들이 좀 더 전문적인 집단으로 승화를 하기 위해서는 ‘인(人)’보다는 ‘꾼’이 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 꾼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니, 낮추어 부르는 말이라고 표현을 한다. 예를 들어 사전에서 농사꾼을 찾으면 ‘농사짓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표현을 하기 때문이다.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꾼’이 필요해

이 ‘정치꾼’은 사전에 ‘정치가를 낮추어 이르는 말, 정치에 관계되는 일에 빠지지 아니하고 꼭 참여하는 사람’.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내가 생각할 때는 정치꾼이란 ‘정치를 해서 국민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국민들의 권익보호와 복지를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그런 전문가’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요즈음은 아무리 보아도 이 정치꾼들이 국민을 위해 노력을 하면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저 혼자 잘 먹고 아전인수 격인 주장만 하면서 국민들을 내동댕이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요즘 가만히 보면 무엇인가 심상치가 않은데, 그런 내용을 속속들이 모르니 더욱 답답한 일이다.

내년에 총선이 있다. 여야가 모두 새판 짜기를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정작 국민들은 등을 돌린 지가 오래이다. 이젠 지금까지의 그런 구태한 모습들을 보여서는 국민들의 눈길을 받기가 쉽지가 않다. 이제는 정말로 국민들을 위한 그런 전문적인 ‘꾼’이 필요할 때이다. ‘싸움꾼’이나 ‘난동꾼’이 아닌, 국민을 위하는 그런 듬직한 즐거움을 주는 ‘꾼’ 말이다. 동지 팥죽 생각을 하다가말고, 별 생각을 다 한다. 아마도 동지팥죽을 들고 꼭 가고 싶은 곳이 있기 때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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